<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검색어를 입력하고 엔터키를 누르니, 예전에도 훑어본 적이 있는 블로그 글들이 주르륵 이어져 나왔다.
“기억이 잘 안 나네.”
은설은 분명히 별다른 문제가 없는 몸이었다.
당연히 시험관 시술까지 자신의 일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시험관 시술에 관한 글들은 대부분 흘려 읽었다.
읽었던 기억만 나고 내용은 자세히 생각나지 않는 글들이 이제야 제대로 눈에 들어와 박혔다.
은설은 맨 위에서 세 번째쯤 있는 블로그의 글을 클릭했다.
세 번째 난자 채취 후 얻은 세 개의 수정란을 해동시켜 이식했다는 여자가 오랜만이라며 올리는 글이었다.
글에는 그간의 고생담이 담겨 있었다.
은설의 인공수정 시술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고용량의 호르몬제를 맞았던 여자는 과배란 증후군으로 생사를 오가는 기분을 느꼈다 했다.
그것이 진정되기를 두 달이나 기다렸다가 석 달만에 이식한 냉동배아는 해동과정에서 하나가 도태되었다고 한다.
남은 두 개의 배아를 이식한 직후였던 여자는 자신에게 다음 시술은 없을 것임을 밝히고 있었다.
글에선 해볼 만큼 다 해본 사람의 담담함이 묻어났다.
은설은 어쩌면 이것이 앞으로 일 이년 후 자신의 모습일 것만 같아 두려웠다.
한편으론 차라리 이런 날이 자신에게도 어서 다가오기를 바랐다.
적어도 블로그의 주인 여자는 가장 어둡고 긴 터널의 마지막을 통과하고 있었고, 은설은 그것이 한없이 부러웠다.
여자의 글에 마음이 더 싱숭생숭해진 은설이 태블릿의 케이스 뚜껑을 덮어버렸다.
약속이 있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지만 은설은 이른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어디 가?”
거실 화장실에서 씻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는지, 은설의 화를 피해 침실로 대피를 했던 준수가 방문을 빼꼼히 열며 물었다.
“선혜네 집. 놀러 가기로 약속했었어.”
“치, 점심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그러려고 했더니.”
밥의 힘을 빌어 은설과 화해를 시도하려던 계획이 틀어져선지 준수가 아쉬운 소리를 해댔다.
준수가 그러거나 말거나 은설은 무표정을 일관하며 외출준비에만 몰두했다.
자신이 준수에게 괜한 화를 너무 오래도록 내고 있는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은설은 좀처럼 심통 난 아이 같은 행동을 멈출 수가 없었다.
침대 한편에 웅크리고 앉아 휴대전화 게임을 시작한 준수에게 은설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소리 좀 끄고 하면 안 돼? 그 뿅뿅거리는 소리 때문에 정신이 나갈 거 같다고.”
졸지에 화받이가 된 준수가 은설의 외출준비 동선을 피해 거실로 나왔다.
준수를 방에서 내쫓아 놓고는 또 급히 미안해진 은설이 화장대 의자에서 엉덩이를 반쯤 들었다가 도로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준수를 달래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럴 여력이 없었다.
지금은 은설도 위로가 필요한 때였다.
“저녁 먹기 전에 올 거야. 7시쯤. 점심은 냉동실에 있는 만두 구워 먹고 때워요. 저녁에 외식하러 나가게.”
현관 쪽으로 걸어가며 은설이 무심하게 말을 흘렸다.
준수의 대답이 들리지 않아 흘끔 고개를 들어 보니, 준수가 이미 현관 앞에 와 있었다. 준수는 손에 카드 한 장을 쥐고 있었다.
“이걸로 오선혜 씨랑 맛있는 거 사 먹고 와요.”
그제야 정신이 좀 돌아온 은설이 미안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준수에게 말했다.
“집으로 가는데. 선혜 애기 아직 어려서 외식하러 못 나갈걸. 가는 길에 햄버거를 사갈까? 고마워요, 잘 먹을 게요.”
“가서 신랑 욕도 많이 하고, 스트레스 풀고 와.”
“누가 들으면 내가 맨날 남편 욕만 하고 다니는 줄 알겠네.”
“하도 구박을 해서 요즘 맨날 내 욕 하고 다니는 줄 알았지.”
준수가 장난스레 하고 싶던 말을 뱉으며 은설을 배웅했다.
“206동. 206동······. 아, 저리로 갔었지, 참.”
은설이 오래된 아파트 단지 안의 꼬불거리는 길을 따라 천천히 운전을 하며 선혜의 집을 찾았다.
나이 차가 꽤 나는 연하의 남편과 결혼을 한 선혜는 변두리 작은 아파트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그리고 결혼을 하자마자 바로 아기가 생겨 한창 아이를 키우고 있는 중이었다.
은설은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은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대출을 더 알아봐야 할 것 같다며 이런저런 넋두리를 하던 선혜를 떠올렸다.
아마도 오늘의 주된 화젯거리는 은설의 세 번째 시술 실패와 선혜의 녹록지 않은 추가 대출 이야기가 될 것이 분명했다.
주말에 오래된 아파트단지 내 주차장에서 빈자리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선혜의 집과 한참 떨어진 곳에 겨우 자리를 찾은 은설이 옆차와의 간격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조심스럽게 후면주차를 했다.
“경차라서 다행이네. 주차 못해서 도로 집에 갈 뻔했잖아.”
은설이 자신의 손으로 차와 차 사이를 가로막으며 몸을 구겨 운전석에서 빠져나왔다.
은설의 몸보다 유연하지 못한 햄버거 종이백이 우왁스런 소리를 내며 구겨졌다.
“엄마야.”
은설이 황급히 쇼핑백 안을 살폈다.
집에 있을지도 모를 선혜의 남편 것까지 해서 햄버거 세트를 세 개나 포장해 왔더니 은설의 예상보다 쇼핑백의 부피가 제법 컸던 모양이었다.
문을 빠져나오면서 충격을 받은 음료수 컵에서 콜라가 조금 새어 나온 것 말고는 다행히 큰 이상은 없어 보였다.
햄버거가 더 식기 전에 도착하고 싶었던 은설이 가볍게 뜀을 뛰며 선혜의 집으로 향했다.
“아.”
벨을 누르려다 말고 은설이 가볍게 선혜네 집 아파트 현관문을 두드렸다.
[아기가 자고 있어요.]
초인종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메시지판을 보고도 벨을 누르는 몰지각한 행동은 하지 말아야 했다.
“선혜야. 나 왔어. 나 은설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소리로 선혜를 부르는 중에 찰카당하며 조심스레 현관문이 열렸다.
“어?!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윤호아빠.”
은설이 밝게 웃으며 문을 열어준 아이아빠에게 인사를 건넸다.
“선혜는요?”
“윤호가 자다 깨서 울어가지고. 안아 달래고 있어요.”
“어머, 혹시 저 땜에?”
“아이구, 아녜요. 아까부터 그랬어요.”
현관을 들어서니 지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의 선혜가 아이를 마주 안고 앉아 있었다.
“밥 아직 안 먹었지?”
은설이 대뜸 선혜의 밥부터 물었다.
“응. 아직이지.”
“그럴 줄 알고 햄버거 사 왔어.”
은설이 햄버거 보따리를 풀어놓자, 선혜의 남편이 활짝 웃는 얼굴로 반색을 하며 소반을 꺼내왔다.
“햄버거 좋아하신 대서 골라봤어요. 이거 새로 나온 맛이라던데.”
“아. 이거 먹어보고 싶었어요. 그쪽으로 갈 기회가 없어서 여태 못 먹고 있었는데.”
선혜의 남편이 햄버거 하나를 뚝딱하고 맛있게 먹어 치우는 동안 선혜는 햄버거에 몇 입 대지도 못한 채 계속 아이만 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