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는 거지(2)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윤호 나한테 오려나? 나 거의 다 먹었는데. 참, 이 감자튀김 혹시 애기도 좀 먹을까 싶어서 소금 안 뿌려왔는데. 이런 거 아직 못 먹니?”

제법 무게가 나가는 아이를 안고 힘들어하는 선혜를 보며 은설은 어쩔 줄을 몰라했다.

“괜찮아. 아직 잠이 덜 깨서 니가 안으면 아마 울 거야.”

그 사이 음료수까지 허겁지겁 들이마신 선혜의 남편이 손을 털며 선혜에게서 빼앗듯 아이를 넘겨받아 안았다.

“너무 급하게 드신 거 아녜요?”

은설이 걱정하듯 선혜의 남편에게 물었다.

“제가 오늘 아침을 못 먹어서. 너무 맛있게 먹어서 그래요.”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보이며 선혜의 남편이 은설을 안심시켰다.

그제야 손이 좀 자유로워진 선혜가 감자튀김 몇 개를 깨작였다.

끝내 실패로 돌아간 인공수정 이야기를 꺼낼까 하다가 은설은 음식 먹는 중인 선혜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 준수가 사준 태블릿을 꺼내었다.

“나 자랑할 거 있어. 이거 우리 남편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줬다아. 이걸로 2년 치 선물 퉁친다고 하긴 했지만. 아무튼 좋은 거 받았다아.”

은설이 장난스레 대놓고 자랑을 해대었고, 선혜와 선혜의 남편이 맞장구치듯이 ‘우와’를 외쳐주며 은설과 장단을 맞추었다.

“좀 만져봐도 돼요?”

새로 나온 기기들에 한창 관심이 많을 나이인 선혜의 남편이 눈을 반짝이며 은설에게 물었다.

“네. 어차피 저 이거 인터넷 검색하는 거 말곤 잘 쓸 줄도 몰라요. 저 여기 있는 동안 계속 가지고 노셔도 돼요.”

신경 써서 사준 남편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개발의 편자 같은 선물이라 고마운 일인데도 고마운 줄을 모르겠다며 은설이 선혜에게 우스갯소리를 해댔다.

눈으로는 연신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선혜의 입매에선 계속 쓴 침을 삼키고 있는 사람 같은 괴로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얼굴빛도 그다지 좋지 않은 선혜를 상태를 보며 은설은 어쩐지 자신의 예상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은설에게 확신을 준 건은 선혜의 남편이었다.




햄버거를 깨작이다가 도로 내려놓는 선혜를 보며 선혜의 남편이 어쩔 줄을 몰라하며 말했다.

“좀 먹겠어? 못 먹겠어? 속 괜찮아?”

남편의 무릎을 툭툭 치며 조심시키는 선혜에게 은설이 물었다.

“혹시, 둘째?”

귀신같이 눈치를 챈 은설에게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선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 축하해. 몇 주?”

“7주쯤 됐어. 나도 지난주에 알았어. 임신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와, 둘째라니. 오선혜는 이제 인생에 걸친 숙제를 다 했네.”

“음. 이게 과연 끝일까. 시작일까······.”

“부럽다. 벌써 둘째라니. 에잇, 이까짓 태블릿 새 거면 뭐 해!”

은설이 태블릿을 툭하고 방석 위로 던지며 장난반 진심반의 부러움을 표현했다.

“아우, 나 인공수정 세 번째도 꽝 됐는데. 여기 온 김에 오선혜한테 임신 기운이나 받아가야겠다. 내 쪽으로 기를 팍팍 쏴 줘. 나 집에 갈 때까지. 계속!”

“하하, 알겠어.”

은설은 선혜가 불필요하게 눈치를 보거나 미안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농담의 이유는 그것뿐이었다.

자연스레 은설에게 임신 사실을 밝히게 된 선혜도 마음이 좀 놓였는지 조금 전보다는 입덧이 덜 한 모양이었다.

깨작대던 햄버거를 다시 들어 반 개나 먹은 선혜가 나머지 반을 남편에게 건네고는 귤을 잔뜩 꺼내 왔다.

“며칠 음식을 못해서 집에 먹을 게 귤이랑 애기 반찬 밖에 없어.”

“이거면 됐지. 신경 쓰지 마. 평소에 너네 집 올 때마다 푸짐하게 얻어먹고 가서 오늘은 안 먹고 가도 돼. 미리 많이 먹었어. 하하.”




선혜의 남편이 마트에 다녀오겠다며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널브러져 있는 아이의 장난감들을 한편으로 몰아 놓고 거실 바닥에 누운 은설과 선혜가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대출이야기며, 계속 실패하는 인공수정 이야기, 만만찮은 난임시술 비용과 더 만만치 않은 육아비용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은설의 휴대전화가 호들갑스럽게 벨을 울렸다.

“누구지? 준수씬가?”

시어머니였다.

“엥? 웬일로 어머니가 먼저 전화를 하셨지?”

은설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어머님. 안녕히 잘 지내셨어요? 이따 저녁때 제가 걸려고 했는데, 어쩐 일이세요?]

[으응. 다른 기 아이고. 느그 동서가 지금 아를 낳아서어. 이따가는 통화를 못할끄 같아서 미리 걸읏따.]

[어머, 동서 오늘 아기 낳았어요? 안 그래도 애기 나올 때가 된 거 같은데 소식이 없어서 궁금해하고 있었어요.]

[으이. 조산할까 봐 음청 조심을 해서 그른가 아가 예정일을 일주일이나 넘가도 나올 생각을 안 해서 오늘 유도분만 했다.]

[아유, 동서 고생했겠네요. 아기랑 동서는 다 건강하지요?]

[괘안타, 마. 걱정 안 해도 되긋다.]

[아들이에요, 딸이에요? 초음파 볼 때마다 계속 바뀌어서 동서가 무슨 색깔 옷을 사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딸이다. 아가 즈그 아빠를 쏙 닮았는데 아주 이쁘게 닮았디. 느그 동서가 아마 내일은 힘들어서 뭐 연락도 몬하고 그럴끼다. 오늘이나 모레나 느그 시간 날 때 즌화나 한 통 해줘라.]

[네 어머님. 동서 힘들 테니 서방님 번호로 걸어서 축하인사 할게요.]

[오야, 그래라. 이만 끊자.]


시어머니와의 통화를 마친 은설은 잠시동안 말이 없었다.

“너네 동서 애기 낳았대?”

“응.”

“그렇구나.”

선혜도 별로 해줄 말이 없는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이연타네. 나랑 너네 동서랑. 미안.”

“아니야.”

“그래도 왠지 미안해.”

“아니 그게 아니고. 이 연타가 아니라고. 삼연 타야.”

“응?”

은설이 시어머니와의 통화 중에 들어온 친정어머니의 메시지를 선혜에게 보여주었다.

[친조카 생겼다. 니 새언니도 애 많이 쓰다가 이번에 생겼어. 이따 전화해서 축하해 줘.]

“속상해도 도리는 하라는 울 엄마 명령이 하달되었어.”

“어머.”

매도 한꺼번에 맞고 끝내는 편이 깔끔하다며 은설이 곧바로 새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언니? 저 은설이요.]

[어머, 아가씨!]

[좋은 소식 있으시다고 엄마가 얘기해 주셨어요. 축하해요, 언니.]

[고마워요 아가씨.]

[몇 주예요? 입덧은 괜찮아요?]

[5주라 그런가 아직 입덧은 본격적으로 시작 안 했어요. 그냥 다 맛없는 정도?]

[입덧 안 심하게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맛있는 거 많이 드실 수 있게.]

[임신 준비하느라 이미 살 많이 쪄서 맛있는 거는 많이 못 먹어요.]

[그럼 구하기 어려운 특별한 메뉴로 골라 드세요. 울 오빠 좀 많이 많이 고생시켜 주세요. 하하.]

[하하. 그럴게요. 아가씨도 곧 좋은 소식 있을 거예요. 우리 같이 아기 키워요.]

[넵! 저도 열심히 노력해서 곧! 좋은 소식 만들어 볼게요.]





한껏 톤업이 된 목소리로 통화를 했던 은설이 전화를 끊자마자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빼내었다.

“괜찮아?”

선혜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은설에게 물었다.

“아, 삼연타는 데미지가 좀 세다. 그래도 니 탓은 아니니까 괜히 미안해하고 그러지 마라, 오선혜.”

“안 미안해. 됐지? 그냥 내 친구 멘탈이 좀 걱정이 될 뿐이야.”

“응. 됐어. 내 멘탈은 일단 지금은 괜찮아.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뭐. 집에는 갈 수 있을 거 같아."

"다행이네."

"근데 나중에는 내 멘탈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오늘은 이만 가련다, 친구야.”

“벌써? 윤호 아빠가 너 준다고 조각케이크 사러 갔는데. 동네에 맛있는 집 있거든.”

“아냐, 오늘은 이만 가볼래. 가보는 게 나을 거 같아. 너도 이참에 혼자 조용히 푹 좀 쉬어. 혼자 있는 시간 그리워했잖아.”

웃음 띤 얼굴로 단호히 말하는 은설을 선혜도 더는 붙잡지 못했다.

“집에 도착하면 꼭 연락해.”

“왜? 중간에 한강으로 샐까 봐?”

“몰라. 그냥 걱정되니까 메시지라도 보내.”

“알았어. 언니 같은 기즈배야. 너도 몸조리 잘하고. 푹 쉬어.”

천근만근 같은 몸을 이끌고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온 선혜의 배웅을 받으며, 은설이 마지막까지 유쾌하게 인사를 했다.

오래 기다렸다가 탄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층을 두세 개쯤 내려왔을 때, 긴장이 풀린 은설의 눈물샘이 급작스레 눈물의 쏟아내었다.

“기지배. 그냥 집에 있지. 눈물이 쏟아질라고 그러는데 눈치 없게. 왜 따라······나오고······.”

낙숫물처럼 하염없이 떨어지는 눈물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느라 은설은 한 시간도 더 넘게 선혜네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 머물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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