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 입덧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쌍둥이를 임신하면 임신수치가 다른 사람들 보다 두 배 더 높아서 입덧도 두 배로 괴롭고 길게 한대요. 그래서 벌써 토덧을 시작한 건가 봐.”

“원래 5주 차에는 입덧 안 해?”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은설에게 먹일 쌀국수를 끓이면서, 준수가 열심히 은설의 말에도 대꾸를 해주었다.

“사람마다 다르대. 보통은 8, 9주 때부터 심해지다가 12, 13주쯤 되면 가라앉는대. 쌍둥이 임신하면 20주 전까지 하고 그러기도 한대."

"20주? 그렇게나 길게?"

"난 쌍둥이 아니었어도 입덧 심했을 거야, 아마. 울 언니가 9개월까지 토했거든요.”

“처형도 고생이 많으셨구나.”

“그땐 옆에서 보면서도 언니가 이렇게까지 힘들었는지 몰랐어요. 오히려 토하고 돌아서서 뭘 또 먹는 거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었지. 오늘부터 언니를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은설 씨도 토하고 나면 뭐 먹고 싶어져서?”

“응. 뭘 먹어야 속이 좀 나아질 거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 하나도 논리적이지 않은 거 아는데 진짜 그런 생각이 팍팍 들어요.”

“입덧은 그냥 토하는 거하고 다르니까 은설 씨 몸 입장에서는 먹는 게 더 논리적인 걸 수도 있지.”

“그런가······.”




식탁에 반쯤 엎드려 누운 자세로 은설이 기다리기 지루한 티를 냈다.

“일어나 봐요. 이제 수저 놓게.”

“다 끓었어?”

“1분만 더 끓으면? 국물이 아주 죽여줘요. 고수만 있으면 딱 파는 쌀국수 맛 날 거 같아. 은설 씨 이거 어디 꺼 산 거야?”

“오똑.”

준수가 고수까지 사서 한번 더 제대로 끓여 볼 생각이라면서 쌀국수가 담겨 있는 그릇을 호기롭게 은설 앞에 내려놓았다.

“흐음~ 냄새 합격!”

1차적인 은설의 반응이 나쁘지 않자, 준수의 표정이 한층 더 고무되었다.

“국물 한 번 떠먹어 봐요.”

준수의 재촉에 후루룩 국물을 떠넘긴 은설이 뜨거웠는지 눈을 한번 질끈 감았다가 천천히 실눈을 뜨며 준수를 바라봤다.

“국물도 합격. 칼칼한 게 속이 풀리는 거 같아요.”

“그치? 이거 국물 진짜 괜찮다니까.”

은설의 반응이 기대했던 것보다 좋았는지 준수가 아주 신이 난 목소리로 자신이 어떻게 국수를 튜닝했는지를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은설은 준수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국수를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냥 수프만 넣었을 땐 맛이 좀 약한 거야. 그래서 내가 액젓을 쪼끔. 아주 쪼끔만. 한 티스푼 정도 되게? 그 정도만 더 넣었거든. 그랬더니 맛이 확 살아나는 거야.”

“그래서 맛있구나. 이거 먹으니까 울렁거리는 게 가라앉는 거 같아요.”

“그치? 이거 개운하지?”

“응. 진짜 맛있네. 우웨에엑~!!!”




맛있다는 말과 거의 동시에 은설의 입에서 방금 전까지 삼켰던 국수가 쏟아져 나왔다.

“괘······괜찮아?”

“아씨, 어떻게 해.”

자신의 발 위로 먹은 것을 몽땅 게워 낸 은설이 울상이 되어선 옷을 더럽힌 아이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서 있었다.

“잠깐만 내가 닦을 거 가지고 올게!”

준수가 급한 대로 키친타월을 두루룩 풀어 난리가 난 은설의 발과 식탁 아래를 닦았다.

“미안요. 아우, 더러워서 어떡해.”

“괜찮아. 대학 때 엠티 가서 맨날 했어."

"그래도..."

"내가 술이 쎄니까 막판까지 살아남아서 뻗은 애들 챙겨주고 그러다 보니까. 이 정도는 뭐. 응? 토한 것도 아니야. 먹고 바로 나와서 더럽지도 않아. 냄새도 안 난다.”

바닥을 치우는 것과 동시에 무안해하는 은설도 달래줘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탄 준수가 별별말을 다 쏟아내 가며 아무렇지 않다는 내색을 했다.

“냄새나는데······.”

방금 전에 자기가 저질러 버린 일인 줄은 알지만 은설은 부쩍 예민해진 코를 막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정도면 안 나는 거지, 이 사람아. 그래도 뱃속에 한번 들어갔다 나온 건데. 난 그냥 쌀국수 국물 냄새만 느껴지는 데?”

준수가 확인해 보겠다는 듯 킁킁거렸다.

“그래도 일부러는 맡지 마요. 창피해.”

“창피할 것도 많다. 은설 씨 방귀보다 안 독해요. 안 창피해도 돼.”

준수가 히죽이며 쓸데없는 농담을 던졌고, 방귀 냄새를 떠올린 은설은 화장실로 달려가 다시 한번 더 웩웩거리기 시작했다.




수지의 메신저 프로필 옆에 빨간 동그라미가 떴다.

“애기사진 올렸나 보네.”

은설이 오밀조밀한 장식이 귀여워 보이는 프로필 사진을 클릭했다.

역시나 귀여운 장식 가운데에 아기가 누워있는 본아트 사진이었다.

“에구, 귀여워라.”

은설은 사진 크기를 늘렸다 줄였다를 반복하며 부뜰이의 얼굴을 보고 또 보았다.

“어쩜 이렇게 아빠랑 엄마를 딱 반반씩 섞어 놓을 수가 있지?”

간간히 흘러나오는 갈색혈이 여전하였으므로 은설은 집에 머무는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보내고 있었다.

종일 침대에서 뒤척이기만 해야 하는 은설의 지루함을 달래주는 것 중 하나가 수시로 바뀌는 친구들의 프로필 사진이었다.

은설의 주변에는 이미 프로필을 온통 아이 사진으로 도배하는 지인들이 많았다.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은설은 왠지 화면 너머로부터 오는 좋은 기운이 자신에게 힘을 주는 것만 같았다.


[쑤지~ 잘 지내고 있어? 부뜰이 진짜 이쁘다. 한 달 된 애기가 이렇게 이쁠 수가 있는 거야?]


심심한 은설의 손가락이 재빠르게 수지에게 보낼 메시지를 입력했다.

······.

부뜰이가 태어난 이후 수지의 답신은 쉽사리 도착하질 않았다.

“애기 쭈쭈 먹이나?”

한두 시간, 혹은 반나절쯤 기다리는 것은 예사가 되었으므로 은설은 느긋하게 마음을 먹었다.

은설이 메시지를 보냈던 것을 까맣게 잊고 있을 때쯤, 수지의 답신이 도착했다.




[한 달 된 아가도 이쁠 수, 또 미울 수 있어.]

[왜? 왜 미워?]

[엄마 잠을 안 재워 줘서. 조리원에서 나온 이후로 2시간 이상 연속으로 자본 적이 없어.]


수지가 눈물을 펑펑 쏟고 있는 이모티콘들을 폭탄처럼 투척했다.


[형석이는?]

[같이 못 자지. 어딜 감히 혼자 잠을 퍼 자냐.]


수지가 날카롭게 반응했다.


[워워 진정해. 그래도 함께 하는 동지네. 일 해야 한다고 와이프한테 몽땅 다 맞기는 사람도 많다는데.]

[그러지는 않아. 도움이 별로 안 되어서 그렇지. 애 깰 때마다 같이 일어나서 망부석처럼 앉아 쳐다만 본다.]

[애를 아빠 품에다가 안겨 놔. 남편들도 계속 연습을 시켜야 한대.]

[형석이는 젖이 안 나와서 아직 밤엔 그럴 수가 없어. 수유 때문에 못 자는 거라.]

[2시간에 한 번씩 직수로 먹이는 거야? 유축해 두면 아빠가 대신 먹여줄 수 있잖아.]

[아직 30일 밖에 안된 애미라······. 내 의욕이 과한 것도 좀 있는 듯.]

[애기는 지금 자는 거야?]

[응. 한숨 돌릴만해서 폰 들었더니 니 메시지 와있어서 너무 행복했어. 수다를 떨 수 있어서.]

[전화할 게. 너 손가락 아플 거 같아.]


은설이 재빠르게 통화하기 버튼을 눌렀다.




[손목도 아파.]

[뭐야, 그럼 다시 메신저로 해?]

[아니. 니 목소리 들으니 좋아. 위로가 돼.]

[벌써 손목이 나간 거야?]

[나도 내 손목이 30일 만에 이렇게 될 줄 몰랐다. 4.5킬로 밖에 안 나가는 애긴데······.]

[이렇게 비유하는 거는 좀 그렇지만, 설탕봉지 4개를 종일 안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니 니가 참 힘들겠다 싶네.]

[‘애미가 되어 가지고 약한 소리 한다.’ 안 해줘서 땡큐.]

[누가 너한테 그런 소릴 했어?]

[울 엄마가. 이 말 때문에 어제 대판 싸웠어. 그래서 오늘 엄마가 없어.]

[아······. 오늘 특히 더 힘들고 슬프겠네, 울 수지.]

[응. 그래도 우리 서우 얼굴 보고 있으면 이뻐서 또 웃음이 난다. 나 산후우울증은 없나 봐.]

[다행이네. 부뜰이 이름이 서우야? 이쁘다. 누가 지었어?]

[형석이랑 내가. 중성적인 느낌 들게 지어주고 싶었어.]

[응. 세련된 느낌이야.]

[서우야, 이모도 니 이름 이쁘대.]


곧이어 수지가 아기를 달래는 소리가 감이 멀게 들려왔다.


[애기 깼어?]

[깰락 말락. 뒤척이네. 눈은 아직 감고 있어.]

[너랑 몇 시간씩 통화하던 날들은 이제 안녕일 듯하구나.]

[아쉬워 마. 너도 곧 이쪽 세계로 합류할 테니.]


은설이 고민이 되는 듯 약간 뜸을 들이다가 수지에게 고백을 했다.




[나 얼마 전에 마지막 배아이식 했어, 수지야.]

[어머, 언제?]

[한 달 전쯤]

[그래? 아······. 나 결과 물어봐도 돼? ]

[쌍둥이래. 엊그제 난황까지 확인하고 왔어.]

[어머! 웬일이니! 축하해!!!]

[아직 한 고비 더 남았어. 담주에 심장소리 들어야 해.]

[느낌이 좋아. 담주에 엄청 큰 심장소리 두 번 들을 거라고 미리 확신한다, 나는.]

[고마워. 담주에 심장소리 우렁차게 잘 들으면 연락 또 할게. 울 수지 궁금할 테니.]

[그럼, 그럼. 궁금하지. 육아동지가 생기는데. 우리 서우 진짜 친구 생기겠네. 예정일이 언제야?]

[11월 초쯤이야. 근데 쌍둥이라 한 달쯤 일찍 낳을 수도 있을 거 같아.]

[오, 그럼 덥지도 춥지도 않을 때 나오겠네. 딱 좋다.]

[고마워. 좋은 얘기만 해줘서.]

[뭘. 난 지금 서우 유치원 보낼 거, 초등학교 보낼 거 너랑 같이 고민할 수 있어서 너무 든든해.]

[나나 잘 부탁한다. 나중에 애기 키우는 법 좀 나한테 잘 알려줘.]

[내가 생각보다 내 앞가림을 잘하게 되면 그리 함세.]

[수지 파이팅!]

[너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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