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은설의 예상대로 월요일 아침 교무부는 난리가 나 있었다. 병원에 들렀다 오느라 서둘러 오지 못한 은설에게 김 선생이 어제 은설이 메일로 보내었던 수업교환계획의 수정본을 내밀었다.
“류 부장님 오늘 결근.”
“네? 왜요?”
“아프셔”
“그리고······.”
“그리고 또 있어요?”
“강 선생님 오늘 오후에 출장.”
“오 마이 갓. 수업 교환 안 되어 있었는데?”
“깜박했대. 오전에 제출하고 갈 생각이었대.”
“일찍 왔었어야 하는데 미안해요, 샘.”
강단 있는 목소리로 김 선생이 말했다.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에 사과하고 그러는 거 안 좋은 선례로 남을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야. 절대 하지 마. 사실 나도 10분 전에 왔어. 대체 교사 찾는 것도 별로 안 어려웠어.”
김 선생이 나름의 소신을 밝히며 은설의 사과를 거절했고, 은설은 그런 김 선생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나치게 미안한 것이 많은 자신의 마인드와 말투에 대해서도 반성을 했다.
‘나도 저렇게 나이를 먹어야 하는데.’
언젠가는 김 선생처럼 난임치료에 성공해 아기도 한 둘쯤 낳고, 후배에게 멋진 조언도 해줄 수 있는 선배가 되어있을 미래를 짧게나마 상상하며 은설이 기분 좋게 자리에 앉았다.
“샘, 최 부장님 하고 백샘한테는 제가 교환수업 해달라고 연락할게요.”
“오케바리.”
교장, 교감과 회의를 하고 온 교무부장이 수첩을 책상 위로 던지듯 내려놓으며 짜증을 내었다.
“하참, 바꾸는 것도 적당히지. 죄다 교환수업으로 바꿔 버리라는 게 말이 되냐고. 그러면 온 교사 시간표가 다 꼬여버리는 데. 그리고 사흘 안에 기간제교사를 어떻게 구하냐고.”
“공고 기간 5일 이상 올리는 게 규정 아니에요?”
“그건 그거고. 어느 정도는 내정을 해 두라는 거지. 누구 아는 기간제 체육 선생님 있어요?”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교사가 구해질 때까지 모두 교환수업으로 바꾸어 버리면 그것만으로도 힘든 자리가 될 게 뻔한데, 그런 자리에 아는 이를 추천할 수는 없었다.
“일단 오면 출산휴가에 육아휴직까지 쭉 계약 이어질 수 있는 자린데 주변에 추천 좀 해봐요.”
교무부장이 계약 연장을 보장해 주겠단 투로 선생님들을 회유했다.
“근데 그 자리 체육부 온갖 일 다 맞는 자리 아니에요?”
김 선생이 핵심을 찔렀다.
“나누겠지, 설마.”
“놔두세요. 급하면 체육부에서 구하겠죠. 아는 인맥이야 거기가 더 많을 텐데.”
“나도 그 생각에 체육과에서 보강 들어가는 걸로 하자고, 응? ‘보강 들어가기 힘들면 지들이 빨리 사람 구하겠지’하고 보강 쪽으로 강력히 밀어붙이려고 했는데. 아, 교장선생님이 안 된대잖아.”
교무부장과 체육부장은 서로 각을 세우는 사이였다. 교장과 체육부장 사이의 오래된 친분 때문에, 교무부장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일등수’를 받지 못할까 봐 부장은 늘 불안해했다.
오전 내내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서야 교무부는 일상 수준의 업무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교무실 분위기에 여유가 좀 생기니 공강이 같은 선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티타임을 가졌다. 오전 내내 고생이 많았던 김 선생과 은설이 위로의 주인공이었고, 수다가 진행되면서 나이가 좀 지긋한 선생들이 자연스럽게 지난주 보았던 문 선생의 뒤태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어쩐지 걸어가는데 보니 다리가 벌어졌더라고.”
“7개월밖에 안 됐는데 벌써 벌어졌네 했어, 나도.”
“7개월에는 걸을 때 다리가 벌어지면 안 되는 거예요?”
은설이 몰랐던 상식에 대해 물었다.
“다리는 만삭 때 벌어지지, 보통은. 애가 골반 밑으로 내려와서 벌어지게 되는 거니까.”
“아. 그렇구나. 저는 문샘 전공이 발레라 그렇게 걷는 건 줄 알았어요.”
“조금 틀리지. 막달에 다리 벌어지는 건 뒤뚱뒤뚱한다고, 걸을 때. 팔자걸음으로 사뿐사뿐 걷는 게 아니고.”
“아, 그렇겠네요.”
“에휴, 그나저나 석 달 열흘을 누워있어야 한다니 문샘 어쩌냐.”
자신도 첫째를 그렇게 낳았다며 송 선생이 걱정하는 말을 했다.
“말은 안 했지만 문 쌤 걷는 거 보고 그럴 거라 생각했어. 불안하드라고. 가만 누워 지내는 거 편한 거 같지? 되게 힘들어 그거. 좀이 쑤셔 죽겠는데 움직이면 안 되는 게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줄 알아?"
아직 아기를 낳지 않은 몇몇이 눈이 동그래지며 송 선생의 얘기에 귀를 쫑긋 세웠다.
"어머. 그렇겠네요."
"진짜. 아우 난 상상만 해도 끔찍해."
탄력을 받은 송 선생이 신이 살짝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말도 마. 큰 일 보다가 애 나올까 봐 배에 힘도 못줘. 근데 또 변비면 힘을 많이 줘야 하니까 내가 일부러 우유를 먹었다니까. 차라리 설사를 하려고.”
“차라리 배탈 나는 걸 선택하시다니.”
“애미가 되려니 그런 선택을 했지. 그 길이 그런 길이네. 똥 싸는 것만 문제가 아니야. 밥을 누워서 먹으니까 소화가 안 돼. 소화가 안 돼서 많이 못 먹어. 못 먹으니까 애가 안 커. 애가 쑥쑥 커줘야 좀 일찍 나와도 안심할 텐데 안 크니까 아주 환장을 해.”
“엄마가 못 먹어도 애는 크는 거 아녔어요? 입덧 때도 뱃속에 애기는 쑥쑥 크잖아요.”
은설이 알고 있던 사실과 다른 송 선생의 이야기에 놀란 체를 했다.
“엄마가 정상적으로 생활을 하는 중이면 그럴 텐데, 가만 누워서 온갖 걱정을 하고 있으니까 엄청난 스트레스 상황 속에서 버티고 있는 거라 그런가 애가 안 크더라고.”
“어머, 저 문샘한테 전화해서 그래도 일 안 하고 쉬니 좋게 생각하라고 위로하려고 그랬는데.”
“하지 마. 욕먹어. 큰 일 나. 친하게 지내는 사이에 의만 상해.”
은설의 계획을 들은 송 선생이 은설을 뜯어말리는 말을 했다.
이야기는 곧바로 송 선생 아들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에휴, 내가 그렇게 힘들게 낳아 놨는데. 이눔시키 요즘 말을 아주 드럽게 안 들어요.”
“송 쌤 애가 몇 살이지?”
대화하는 무리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연구부 성 부장이 물었다.
“중2요.”
“에휴. 제일 착할 때구만, 뭘.”
“왜요? 부장님 따님도 엄친딸로 유명하잖아요.”
“아휴, 내가 미쳐. 우리 딸 다음 달에 결혼해. 웨딩드레스 가슴아래부터 플레어 들어갈 거야. 결혼식 때 와서 보고 놀라지 말라고 미리 말하는 거야.”
“어머!”
“어머! 부장님 외할머니 되시는 거예요?”
“이 나이에 할머니라니, 참.”
“일하는 할머니시네요. 멋있다.”
“멋있긴. 내년에 명퇴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 중인데.”
“왜요?”
“우리 딸 복직하려면 애를 봐줘야 할 거 아냐. 나도 내내 우리 엄마 손 빌려가며 일하고 살았는데.”
“부장님도 일하는 거 좋아하시잖아요. 따님 일은 따님이 알아서 하겠죠.”
“아이고. 누가 안 도와주면 애 키우면서 일 못해.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아는데 어떻게 모른 척 해. 남도 아니고 딸인데.”
“그건 그렇긴 하지만 너무 아까워요.”
“더 한다고 교감 교장 되는 것도 아니고. 애들하고 세대차이 너무 나서 이제 수업 들어가는 것도 좀 지치고. 암튼 생각이 많아. 수업만 안 하면 정년까지 계속하고 싶은데 말이야. 깔깔깔.”
성 부장이 특유의 유쾌함으로 배가 불러 식을 올리는 딸 이야기부터 자신의 명예퇴직 계획까지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내내 자식을 낳고 기르는 이야기로 가득한 티타임이었고, 송 선생이 은설에게도 그것과 관련된 안부를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