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호르몬제의 용량이 늘어난 만큼 은설도 몇 배씩 더 힘들어졌다.
없던 복통이 생겼고, 부푼 듯 빵빵한 복부 때문에 갑갑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하는 기분 때문에 은설은 컨디션을 고르게 유지하는 일이 가장 버거웠다.
학생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박해진 은설의 인내심을 테스트했다.
평소라면 주의를 주고 넘어갔을 일에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것이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은설은 이런 자신의 상태가 몸을 잔뜩 부풀린 가시복어처럼 느껴졌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호르몬제에 의한 감정의 기복은 조절할 수 있는 스트레스가 아니라는 생각이 짙게 들었다.
[이걸 출근하면서 진행을 하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어. 자꾸.]
[다들 그렇게 시술 진행하면서 지내. 약한 소리 하지 마. 기지배야.]
[너는 학교에서 일을 안 해봐서 그래. 아주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애들이 만만해서 성질도 편하게 내는 건 아니고?]
수화기를 통해 넘어온 수지의 목소리가 은설의 자존심을 찔렀다.
[교직을 만만하게 보지 마. 요즘이 어떤 세상이고, 요즘 애들이 어떤 애들인데.]
[그럼 애들한테 화낸 얘기 말고, 동료 교사들한테도 성질낸 얘기를 좀 해보든가.]
자존심이 상했지만, 수지의 말이 마냥 틀린 것은 아니었다.
괴짜 교사들의 어이없는 요구나 말은 아직까진 잘 참아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난임휴직을 하는 게 낫겠어.]
[그런 걸 쓸 수 있는 거면 쓰는 게 낫지.]
[방금 전엔 다들 직장 다니면서 시술한다고 타박해 놓고선, 왜?]
[니 스트레스 땜에. 성질이 나면 나나 보다 하지, 그냥. 성질부린 걸 또 곱씹으며 스트레스를 자체적으로 만들고 있잖아, 너.]
[그르네. 내가 그러고 있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듯 은설이 수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꾸역꾸역 떠오르는 생각을 없앨 방도는 없으니 차라리 상황을 모면하고 피하는 게 나을 거야. 당장 할 수 있는 거야?]
[그런 건 아냐.]
수지가 적극적으로 휴직을 권하자 은설이 슬쩍 한 발을 뺐다.
[왜 안 돼?]
[갑작스럽게 아파서 하는 휴직도 아니고. 학기가 아직 남았잖아. 더군다나 담임이고. 아예 안 되는 건 아니겠지만 된다고 지금 하는 건 나도 마음이 불편하지.]
[그건 그렇네. 곧 연말인데.]
[그러게. 곧 연말이네. 날짜 세기가 무섭다.]
[나 보면서 힘내라. 난 벌써 10년 차다.]
[어때? 아기 없이 보낸 십 년은?]
[워낙 어릴 때 결혼해서 사실 뭐 초반 몇 년은 아무 생각 없이 놀기 바빴지. 잠깐 병원 다니다가 난 또 태국으로 넘어왔잖아.]
[그래도 애기 가지려는 노력은 쭉 했잖아.]
[그거야 뭐 그렇지만. 암튼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둘이서만 지낸다고 해서 어른들이 하는 말처럼 큰일이 나는 건 아니라는 거야.]
그래 보였다.
멀리서나마 지켜보는 수지의 일상은 스펙터클한 굴곡 없이 평화롭고 아늑하게 흘러갔다.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며 지내는 일상은 안정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난임'이라는 과제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것만 제외하면 은설도 그랬다.
[나도 너처럼 그냥 시술하지 말고 지낼까? 그럼 인생이 다시 평화로워지겠지?]
[아서. 그러지 말고 하던 거 마저 그냥 계속해.]
[왜? 넌 안 하면서?]
[한국 돌아가면 나도 다시 할지 몰라.]
[그럼 그때 같이 병원 다닐래?]
[난 류현준한테 진료받기 싫어. 너나 거기 다녀. 그리고 어차피 할 거면 뭐 하러 나 기다리면서 몇 년씩 시간을 죽이냐? 노산이 코 앞인데.]
[나도 기복 없이 평화로운 일상을 회복하고 싶어.]
[회복 안 돼. 니가 아기 갖는 걸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이상은. 나도 아직 너처럼 그렇다는 말이야, 기지배야.]
[정말?]
[할 만큼 다 해본 게 아니잖아, 나도. 멈춘 거지 끝난 게 아니니까 불쑥불쑥 불안하고 처절해지고 우울해지는 건 너랑 똑같아.]
[아, 그렇구나.]
[태국에 나온 지가 몇 년인데 아직까지도 그래. 내가 노는 게 노는 게 아니네, 이 사람아.]
[우리 수지 마음이 아직 그렇게 힘든 줄 몰랐네. 미안해. 나 속상한 것만 투덜거리기 바빴어.]
수지가 자기도 속내를 좀 털어놓으니 후련해지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며 은설을 다독였다.
기왕 다시 시작하기로 거니 마음 조절 잘해가며 시술을 잘 받아 보겠다는 은설의 다짐으로 수지와의 통화가 마무리 됐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시작!
“아악!”
두 번째 인공수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은설이 오른쪽 허리춤을 붙잡으며 주저앉았다.
“왜 그래?”
당황한 준수가 은설을 부축해 일으켜 세우면서도, 혹시나 자신이 실수라도 하여 은설을 더 아프게 하는 건 아닌지 안절부절못했다.
“배란통인 거 같아.”
“배란통?”
“1차 땐 모르고 지나갔는데. 이번엔 난포도 두 개나 더 적었는데 왜 이러지?”
“배란통이 뭔데?”
“난자가 난소에서 나올 때 배가 아프기도 해.”
“그래?”
“보통은 1개씩만 나오는데, 인공수정하면 과배란 시켜서 한꺼번에 몇 개씩 나오니까. 배란통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더라고.”
“많이 나올수록 많이 아픈 거야?”
“잘 모르겠어. 1차 때는 난포가 7개나 자랐다고 했는데도 배란통 같은 거 모르고 지나갔는데, 이번엔 5개인데도 '헉'할 정도의 통증이 오네.”
“지금 혹시 5개가 한꺼번에 다 터진 거 아냐?”
“글쎄. 그런 건가. 아악!”
몇 걸음을 옮기다가 은설이 한 번 더 배를 움켜쥐었다.
“이거 괜찮은 거 맞아?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냐?”
당황한 준수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야. 괜찮아. 원래 이렇기도 하고 그런 거랬어.”
은설을 거실 소파로 옮겨주고 준수는 한참이나 옆에서 자리를 지켰다.
준수의 반차가 끝이 나 가고 있었다.
더 이상은 부릴 여유가 없는 시각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준수가 출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눈은 거실바닥 한편에 쓰러진 듯 누워있는 은설에게서 떠날 줄을 몰랐다.
“언제 바닥으로 내려왔어? 그러고 있으면 안 힘들어? 괜찮아?”
“방금 전에. 안 힘들어. 괜찮아. 평평한 곳에서 좀 눕고 싶어서 그래.”
“침대에 눕지, 왜······.”
“귀찮아요. 거기까지 가기. 그리고 여기가 더 따뜻해. 보일러 배관 지나가는 자리라.”
“퇴근하면 바로 온수매트 깔아 줄게.”
“땡큐”
준수가 나서려던 발걸음을 주방으로 돌려 냉장고와 찬장을 뒤져 이것저것 먹을 것들을 챙겼다.
“시리얼이랑 두유랑 사과랑 식탁 위에 꺼내 둘 테니까 귀찮다고 나 올 때까지 굶고 있지 말고.”
“점심에 추어탕 많이 먹어서 저녁밥이 들어가려나 모르겠네.”
은설이 힘이 폭삭 빠져버린 목소리로 혼잣말 같은 대꾸를 했다.
“들어오는 길에 추어탕 더 사 올까?”
“응. 그냥 며칠 대놓고 먹게 많이 사 와요.”
“얼마나?”
“혼자 들고 올 수 있는 만큼.”
“그렇게 먹으면 안 질리겠어?”
“좋대잖아. 도움이 된다는데 질리고 말고 가 어딨어. 그냥 먹는 거지.”
준수가 집을 나서는 순간에도 은설은 거실 바닥에 등을 붙인 채 일어나지 않았다.
“알죠? 이거 절대로 게으름 나서 신랑 배웅도 안 해주고 그러는 거 아녜요. 너무 힘들어서 이러는 거야.”
“알아. 아프지만 마.”
“그랬으면 좋겠네.”
폭풍처럼 배란통이 지나가고 은설은 다시 평온한 상태를 되찾은 듯했다.
그만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으로 몸을 틀어 상체를 일으키는 순간 허리 쪽에서 다시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일었다.
“아흑!”
통증보다 몇 배 더한 서러움이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