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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찬수 Apr 11. 2016

MCN과 롱테일 그리고 블록버스터


MCN 사업은 인터넷 세상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롱테일(long tail) 법칙을 활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롱테일 법칙은 특정 상품을 많이 팔린 순서대로 가로축에 늘어놓고, 각각의 판매량을 세로축에 표시하여 선으로 연결하면 많이 팔린 상품들을 연결한 부분은 급경사를 이루며 짧게 이어지지만, 적게 팔린 상품들을 연결한 선은 마치 공룡의 '긴 꼬리(long tail)'처럼 낮지만 길게 이어지는데, 이 꼬리 부분에 해당하는 상품들의 총 판매량이 많이 팔리는 인기 상품의 총 판매량을 압도한다는 것인데, 1인 크리에이터들이 제작한 대량의 영상 콘텐츠들이 하나하나의 소비량에서는 기존의 TV나 영화 콘텐츠에 비해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콘텐츠의 양이 워낙 많기 때문에 제작비 투자 대비 수익 면에서 의미 있는 사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상에서는 기존의 TV나 영화가 가진 시간이나 공간적인 제약을 거의 받지 않고 이론적으로는 무한대에 가까운 영상 콘텐츠를 서비스 할 수가 있다. 이에 따라 제작비용이나 저장비용 등이 매우 저렴해져 콘텐츠 유통구조가 혁신되었고, 소비자들이 검색을 통하여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언제든 쉽게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다른 콘텐츠 소비자들과 SNS를 통해 소통을 하며 기존의 미디어 플랫폼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콘텐츠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됨으로써 소비자 선택의 폭이 크게 확대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혁신적인 변화로 인해 기존에는 소비자의 눈에 띌 기회조차 갖지 못하였던, 외면당하던 B급, C급 콘텐츠들이 블록버스터 콘텐츠를 압도하는 결과도 낳을 수 있다고 보고 MCN이라고 하는 새로운 사업 모델이 탄생을 한 것이다. 이런 인터넷 환경의 변화와 새로운 영상 문법에 열광하는 신세대의 결합으로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MCN 열풍은 나타났다. MCN은 새로운 것을 열망하는 10대들을 기반으로 자생적인 시장을 만들어냈고 아프리카TV나 유튜브 등을 플랫폼으로 기존에 없던 내용과 스타일의 콘텐츠를 대량으로 생산해내고 있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고 받아들이는 시대적 분위기에 힘입어 이제는 더 큰 시장, 즉 기존에 레거시 미디어 그룹들의 영역으로까지 진출을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콘텐츠 산업에는 ‘블록버스터의 법칙’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애니타 앨버스(Anita Elberse)가 저술한 <블록버스터 법칙>에서는 대규모의 자본을 투자한 콘텐츠인 블록버스터가 시장에서 성공 확률이 높다고 주장을 하면서 영화, 음악 등 콘텐츠 전 분야에 걸쳐 실증적인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대규모 제작비가 들어가는 대박 가능성이 높은 소수의 블록버스터에 집중하고 저예산 작품은 다양성을 확보하는 정도로 투자를 하는 것이 콘텐츠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100억의 투자비가 들어간 콘텐츠가 성공할 확률이 1억짜리 콘텐츠 100개를 만들어 성공할 확률을 합친 것보다 월등하게 높기 때문에 규모가 큰 콘텐츠 회사는 블록버스터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경쟁력을 유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셈이다. 최근에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태양의 후예>의 예를 보더라도 블록버스터의 위력은 실감할 수가 있다. 여기에 콘텐츠의 양이 너무나 폭발적으로 증가를 하면서 마케팅이나 홍보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를 하고 있다는 점 또한 블록버스터 콘텐츠의 성공 가능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어 롱테일 법칙을 기반으로 사업을 하던 MCN 업계가 기존의 레거시 미디어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이 쉽지 않은 도전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초창기 MCN은 1인 크리에이터를 매니지먼트하는 회사들을 총칭하는 것이었다. 롱테일 콘텐츠를 제작하는 다수의 1인 크리에이터를 관리하는 이 사업이 미디어 변혁기의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타면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고 젊은층을 열광시킨 것이다. 긴 기간 꾸준하게 SNS를 활용하면서 자신들의 콘텐츠를 좋아해주고 열광하는 팬들을 창조해내던 롱테일 콘텐츠 1인 제작자들 중 일부는 이제 유튜브 스타가 되었다. 그러자 스타가 된 소수의 1인 제작자들은 MCN 회사에 영입이 되면서 자신들의 콘텐츠 제작에 기존보다 더 많은 리소스를 투자하기 시작했다. 1인 크리에이터의 콘텐츠들이 질적으로 좋아지기 시작하는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이런 선순환은 유튜브 스타들을 좋아하는 저변을 더 확대시키며 새로운 디지털 콘텐츠 시장의 규모를 더욱 팽창시켰고, MCN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콘텐츠 시장의 규모가 가까운 미래에 크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이 되자, 기존에 레거시 미디어 영상 제작을 주업으로 했던 업체들도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들은 매니지먼트보다는 제작 기능을 앞세워 MCN 사업을 진행하는 움직임을 나타냈고 이러한 경향은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이다. 이미 인기가 있거나 가능성이 있는 1인 크리에이터가 먼저 사업을 시작한 MCN 업체에 의해 선점이 된 상태에서, 새로운 유망주를 찾아서 사업을 키워가는 것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MCN 사업의 후발주자인 영상 제작 기반 회사들은 인터넷 동영상 시장에 뛰어들면서 자신들의 장점을 새로운 시장에서도 활용하고자 제작 부문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업들의 MCN 사업 참여로 인해 기존의 BJ 출신들처럼 인터넷 방송 제작 경험이 있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파워블로거나 특수한 직업을 가진 전문가 집단이 새로운 예비 스타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출연자(진행자)와 제작자가 분리된 분업 형태의 제작을 앞세운 이러한 프로덕션 중심의 MCN 형태는 1인 크리에이터가 제작 전반의 모든 일을 혼자서 해내는 방식이 아닌 기존의 방송 제작과 유사한 제작 형태를 보여 주고 있다. 1인 크리에이터들의 개인적인 독창성에 바탕을 두던 인터넷 동영상들이 점차 대형화하고 자본화되면서 좀 더 분업화된 형태로 진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일찌감치 MCN 시장을 선점한 선두 업체들도 프로덕션 기능을 최근 강조하고 있는 모습이 감지되고 있는데, 이러한 움직임은 1인 창작자에게서 발생되는 수익 이외에 회사 차원에서 새로운 수익원을 개척해야만 하는 필요성이 회사를 압박하고 있기 때문으로 판단이 된다. 이처럼 진행자에 가까운 인터넷 방송인(제작자가 아닌)들과 제작자들의 분화가 MCN 영상 콘텐츠를 보다 고급화하고 다양화하는 긍정적인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1인 창작자 콘텐츠의 독창성을 그대로 살리면서 분업화된 제작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우려를 자아내게도 한다. 그리고 콘텐츠 산업의 속성 상 블록버스터 콘텐츠가 아닌 어중간한 투자로 만들어진 상품들은 시장에 임팩트를 전혀 주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제 MCN은 더 이상 1인 창작자들의 롱테일 콘텐츠를 기반으로 하는 사업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게 되었다. 이미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한 스타급 1인 창작자들은 더 넓은 시장으로 나아가기를 갈망하고 있으며, MCN의 미래를 믿고 돈을 지불한 투자자들은 MCN이 기존의 레거시 미디어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 세력으로 성장할 것을 강력하게 주문하고 있다. 일정 규모의 시장을 만들어내서 작지만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한 것에 머물지 않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기존 레거시 미디어 영역으로까지 진출을 시도해야하는 것은 이제 MCN 업계에게는 어쩔 수 없는 숙명이 되었다. 아마존이 롱테일 법칙을 바탕으로 성장하여 기존의 유통 업계 거물들을 밀어내고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 것처럼, MCN 회사 중에도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는 곳이 등장할 수 있을까? 롱테일을 바탕으로 성장한 MCN 업계가 과연 블록버스터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스타를 배출해 낼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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