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메타버스 서비스로 알려져 있는 세컨드라이프(Second Life)는 적극적인 사용자인 프리미엄 회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가상 세계였습니다. 월 8달러를 내는 프리미엄 회원들은 이 서비스를 이용만 하는 손님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가상 세계의 주인으로 세컨드라이프라는 메타버스를 함께 만들어가는 주체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세컨드라이프를 만든 CEO 필립 로즈데일이 했다는 “나는 게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국가를 만든 것입니다. (I’m not building a game, I’m building a new country.)” 라는 말처럼 세컨드라이프의 이용자들은 함께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가는 주인공들이었죠. 독립된 경제체제와 가상 화폐를 가지고 있었던 세컨드라이프는 자체 화폐인 ‘린든 달러(Linden Dollar / L$)’에 ‘LindeX’라는 화폐 거래소까지 만들어 미국 달러 및 기타 현지 통화를 사용하여 ‘린든 달러’로 환전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었는데요. 세컨드라이프는 월 8달러의 회비를 내는 프리미엄 회원에게 가상세계의 땅과 집 그리고 월급으로 300린든달러를 주었습니다.
이렇게 메타버스 내의 가상 자산을 소유하게 된 프리미엄 회원들은 개척되지 않은 신대륙에 먼저 도착한 탐험대처럼 가상공간인 세컨드라이프 메타버스의 개발을 자발적으로 추진해 나갔습니다. 메타버스 내에 콘텐츠 생성 도구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이용자들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었습니다. 받은 땅 위에 건물을 지을 수도 있었고, 집 안에 필요한 가구나 전기제품 그리고 아바타가 입을 옷들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콘텐츠 생성 도구를 사용할 줄 모르는 회원들은 다른 회원이 만든 창작물을 월급으로 지급받은 린든달러로 구매하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마치 현실 세계에서처럼 또 하나의 경제 체제가 가상 세계인 메타버스에서도 만들어져 가상경제 시스템이 작동을 했었거든요.
초창기 몇몇의 메타버스 신봉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가던 가상 세계 ‘세컨드라이프’는 그런데 갑자기 엄청난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가상세계 서비스에 대한 호기심으로 조금씩 늘어가던 서비스 이용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 것입니다. 가상 환경에서도 경제 활동이 가능하고, 그곳에서 거액의 돈을 벌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많은 사람들이 세컨드라이프에 열광적으로 참여했습니다. 특히 세컨드라이프에 불어 닥친 가상 부동산 열풍은 백만장자 아바타까지 탄생시키는 기현상을 만들어냈습니다.
세컨드라이프라는 가상공간의 땅은 초창기 참여한 프리미엄 회원들에게 일부가 주어졌고, 나머지 땅은 린든달러를 지불하면 누구나 게임 안에서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세컨드라이프 각각의 땅에는 통행량이라고 부르는 수치가 있었는데, 더 많은 이용자가 오랜 시간 머무를수록 이 수치가 올라가고 같은 검색어를 넣더라도 상위에 표시되도록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가상세계 땅에도 등급이 있고 가격이 달랐던 것이죠. 참여자들이 많아지면서 한정된 자원인 가치가 높은 땅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기 시작했고, 가상세계인 세컨드라이프 땅이 투기의 대상이 되어갔습니다. 통행량이 낮은 토지를 저렴하게 구매한 뒤 어떤 식으로든 수치를 높여서 비싸게 임대를 주거나 되파는 방식으로 큰 돈을 버는 부동산 사업이 세컨드라이프에서 호황을 누렸구요. 상황이 이렇게 되자, 수익 모델의 일환으로 세컨드라이프에서 직접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던 땅을 경매하기도 했습니다. 세컨드라이프에서 얻은 수익이 실제로 현실 세계의 돈으로 환전 가능했기 때문에, 가상공간의 부동산 열풍은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을 더욱 폭발시켰습니다.
가상세계의 부동산 투기 현상이 처음은 아니었지만(‘울티마 온라인’이라는 게임에서부터 ‘부동산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세컨드라이프의 특이한 점은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가상 세계인 메타버스에 대한 호기심을 폭발시킨 것입니다. 가상 세계의 경제 활동으로 번 돈을 현실 세계의 돈으로 환전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세속적인 욕망의 불이 당겨버린 것입니다. 마치 서부의 금을 캐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듯이, 가상 세계의 황금인 메타버스 부동산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것입니다. 가상세계와 현실세계가 돈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 투자자들을 열광시켰고 돈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물론 그 환상이 깨어지는 것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고, 열기가 식어버리자 몰려들었던 사람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간 이후 관심을 아예 꺼버렸죠.
그럼에도 메타버스 부동산 광풍의 여운은 강렬했나 봅니다. 10년이 넘도록 불씨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가, 이제 서서히 다시 타오르려고 하니까요. 최근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면서 메타버스의 부동산 사업들이 여러 가지 형태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던 프로젝트는 바로 ‘디센트럴랜드(Decentraland)’입니다. 대체불가토큰(NFT; Non-fungible Token)을 활용하여 ‘디센트럴랜드’의 가상토지인 LAND를 고유한 디지털 자산으로 소유 및 거래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는데, 메타버스와 블록체인을 결합하여 투자자들이 열광적으로 참여할만한 새로운 상품을 개발한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2018년 실시한 ICO에서 35초 만에 만 명의 투자자로부터 목표금액인 270억 원을 모으며 관심을 받았고, NFT가 적용된 디센트럴랜드 땅을 1차와 2차에 걸쳐 경매하기도 했습니다. 자체 통화인 ‘MANA 코인’이 최근의 NFT 열풍에 크게 가치 상승하기도 했구요.
지금의 메타버스 열기 속에는 이상 사회를 향한 열정과 새로운 금광을 찾는 탐욕이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블록체인 기반의 NFT가 디지털 자산과 결합되면서 가상세계 자산의 가치를 신뢰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메타버스가 인류의 미래에 가치를 만들어내는 의미있는 공간으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현실 세계의 부동산처럼 메타버스의 부동산도 가치가 폭락하는 순간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세컨드라이프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