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모전을 한 번씩 블로그(https://m.blog.naver.com/show_show) 에 정리해서 올리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제가 보기에 해볼 만한 공모전을 올립니다. 물론 정말 내가 해야 할 것 같은 공모전이거나, 개인적인 정보는 비공개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 글쓰기 공모전을 잡고 혼자 습작을 하는 버릇이 있어요. 그건 문예창작학과에 다니고 나서 생긴 버릇입니다. 이 버릇을 만들어준 것은 고등학교 문예반에서 학생들의 습작은 매번 뽑아서 각종 공모전에 내주던 선생님 덕분이었습니다.
"너희들은 3년 안에 적어도... 졸업 전에 내가 상 하나씩은 타게 해 줄게"
선생님은, 동아리에 처음 가입한 우리들에게 그렇게 호언장담했습니다. 우리 고등학교의 문예부는 동아리에 들어가려면 희망자들의 한해서 한 반에 모여 다 같이 백일장처럼 시제를 받아, 그 시험을 통과한 아이들만 문예부에 들어와서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그 문예부 시험을 보러 가던 날, 친구들이 말했어요.
"이 동아리에 들어가면 대학 잘 간데...."
'그렇다면 시험 봐야지.'
덩달아 저도 가서 한 반을 가득 채운 친구들 사이에서 글을 썼습니다. 시제는 '하루'로 저는 피아노 학원에서 보낸 연습시간이 잘 가지 않던 이야기를 썼습니다. 재미있는 시간을 빨리 가는데, 도무지 그 시간만큼은 동그라미를 하나하나 색칠하기까지 어찌나 시간이 가지 않던지요. 그 이야기로 문예부 동아리 시험에 통과해 가입했습니다.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찾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내 인생의 은사라고 생각한 선생님은 기독교 인이었습니다. 그 학교는 미션스쿨이었고요. 그래서 대학에 와서 만난 남자 친구도 기독교인이었고 그렇게 결혼을 해서, 지금까지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심어준 '기독교'인에 대한 호의가 저를 여기로 이끌었던 것 같아요. 반대로 저희 부모님 두 분은 어린 시절 교회를 다니다가 작은 상처를 입고 교회를 나왔습니다. 아버지는 운동화를 교인 중 한 명이 훔쳐갔고, 어머니는 전도대회 상을 목사님 딸에게 뺏겼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제가 교회 다니는 걸 탐탁지 않아하십니다.
기억이란 참 그래서 힘이 센 것 같아요.
고등학교 시절에 받은 작은 문학상들... 선생님이 나를 올려준 그 사다리를 타고 나는 학교 강당을 가로질러 박수를 받으며 상장을 탔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이후 인생은 계속된 공모전 낙방. 변명을 하자면 상 타는 것은 점점 어려웠습니다. 고등학생보다 대학생은 좀 더 어렵고, 대학생보다 일반부로 가면 훨씬 상을 타기 어렵습니다.
왜냐고요?
연령대로 보면 고등학생은 17-19세끼리의 싸움
대학생은 20-29세 정도의 싸움이라면.
일반부는 전연령입니다.
지금까지는 공모전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적당히 상처받지 않을 만큼 열심히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공모전을 정리하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드네요. 언제까지 라는 질문이 싹트는 거예요.
언제까지? 에 대한 답은 계속, 끝없이입니다.
누가 뭐라든 상관없어요. 글을 쓴다고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읽어주는 사람은 언제나 고마울 뿐이니까요.
늦은 밤 잠이 오지 않으면 과거의 생각에 골몰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문득 나의 은사, 선생님 한 분이 요즘 계속 떠오릅니다. 졸업한 다음 해에 내가 찾아가자 나를 까맣게 잊으셨습니다. 마치 화분에 본인이 뿌린 수많은 씨앗을 잊은 듯이 새로운 학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매진하고 계셨습니다. 그것이 못내 서운하고 슬펐지만 선생님 답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첫째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고, 다시 교사와 접하게 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선생님이 아이러니하게도 그리워졌습니다. 예전에 내가 만난 좋은 선생님들은 기억 속에서 별처럼 있어서인지 살짝 비교가 됩니다. 물론 그 선생님이 특별히 나를 위했다기보다, 자신이 세운 학생들에 대한 원칙을 지켜나가던 분들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고요.
좋은 어른이라는 말이 한참 유행이어서 저도 생각해보았어요. 나는 어떤 어른 이어야 할까? 저는 어른이 아니라 그냥 아이와 비슷한 시선으로 지내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경험치가 많은 만큼 나서고, 보호해줘야 한다고만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어떠해야 할까. 적어도 본인이 가르치는 혹은 인연이 닿은 학생들에게 작은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으면 얼마나 귀할까 싶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선생님의 한 마디, 작은 인정이 곧 성취감이 되니까요. 좋은 선생님을 만난 적이 없다는 남편의 말을 들으며 내 머릿속에 좋은 선생님들의 얼굴이... 하나씩 스쳤습니다. 그저 따뜻하게 웃어주시고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진솔하신 걸로 충분했습니다.
오늘 교회에서 언제나 그리스도 인이라는 걸 잊지 말라는 설교를 들었는데... 글쎄요. 저는 제가 그리스도 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교회에 나가고 있기는 하지만요. 모태신앙도 아니고 헷갈려요. 그저 약자에게 도움을 주는 교회라는 공동체가 좋아서 나가고 있습니다. 그저 나에게 그리스도인이란, 바로 그 선생님과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에... 저는 지금도 교회를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선생님을 만난 이전과 이후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으니까요.
선생님은 늘 말하셨죠.
"문학의 끈을 놓지 마라."
그렇게 버틴다면 분명 성과가 있을 거라고요. 아주 아주 작은 결실을 쥘 때마다 저는 선생님을 위해 기도하고 싶습니다.
교회를 가는 이유에 대해서 내 식으로 지금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는 교회가 좋습니다. 왜냐면... 자본주의를 벗어난 인간에 대한 최소한 선의가 아직 교회만큼은 남아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선의와 사랑을 접할 때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그 호의에서 그 어떤 의도도 없는 따뜻한 포옹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잘 계시죠. 언제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