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문화정보도서관 4월 주제 : 용서
산에 갈래? 바다에 갈래? 하고 물으면 언제나 나는 산보다는 바다가 가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서울에 살았고 집 근처에 관악산이 있었다. 산은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곳이었지만, 극기훈련장이 되었던 적이 많았다. 얼른 올라가라고 재촉하는 뒷사람과 먼저 사라지는 앞사람을 쫓아 숨이 턱에 차도록 올라갔다. 정상으로 갈수록 깎아지른 돌벽에 줄을 붙잡고 다리가 저절로 후들거리면 바짝 엎드려 기어올랐다. 그때마다 발 밑의 아찔한 경사를 힐끗 보며 눈을 질끈 감으며 다신 올라오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에 비해 바다에 가면 나는 저절로 우아해졌다. 바다 근처 주차장에서 내리면 너른 바다가 팔을 펴고 있다. 나는 그 안으로 모래사장을 지나 성큼성큼 들어가기만 한다. 모래사장에 앉아서 그저 바다를 보고 또 보는 것이다. 가로로 탁 트인 바다는 그 자체로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눈이 오면 서늘한 그림자를, 비가 오는 축축한 선을 그리며 특유의 서정적인 것이 멜랑꼴리 한 기분을 좋아하는 내 감수성에 딱 맞았다. 해풍의 냄새는 비릿하고 꼬릿 한 해산물의 냄새가 났고, 한참 바람을 맞으면 머리카락이 눅눅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셔주면 짠 바람과, 씁쓸한 커피의 맛이 조합되어 그럴싸한 운치가 생겼다. 그렇게 10분이라도 바다의 바람을 맞다 보면 그간 생활하면서 쌓였던 사소한 불만 같은 것은 흔적 없이 스스륵 녹아버리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실제로 과학적으로도 물가에 가면 내 몸 안의 성분을 눈에 보이지 않는 바다의 성분이 화학작용해서 없애는 것은 아닐까.
바다에게 내가 몰래 중얼거렸던 말들을 바다는 들었을까? 아무도 못 들었지만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모두 그렇게 흘러가버리도록 두었다. 그 감정을 움켜쥐고 가장 힘든 것이 나였으므로. 나는 오래도록 내가 사랑한 사람들만 깊이 미워했었던 것 같다. 그 사람들이 내게 원하는 만큼 사랑을 주지 않아서, 내가 애쓴 것을 알아주지 않아서 불안했다. 그 사람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를 계속 확인하고 증명을 받는 것만이 내 삶의 전부였던 것 같다. 사랑을 받고 싶었던 작은 소녀는 이제 조용히 기도를 멈추고 다른 페이지로 간 것 같다. 나는 이제 소녀라기보다는 엄마가 된 것 같다. 아이들이 무서운 악몽을 꾸면 언제든 일어나 안아줄 수 있는 사람. 내가 받았던 사랑에 대해서 인정하고, 이제는 내 엄마처럼, 내 할머니처럼, 바다 같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퐁당퐁당 들어주고 싶다.
도봉여성센터에서 5월 8일부터 수업합니다.
인원 충원이 되어 개강을 앞두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www.dobongwoman.or.kr/lecture/lecture.php?lecture_code=7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