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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과 구상 사이에서

by 심가연

내가 그리는 그림 사이에도 간극이 있다.

보고 그리는 그림과 툭하고 메시지 중심으로 그려지는 그림사이에서 발생한다. 형태적인 완성도 측면에서도 편차가 생기는데, 보고 그리는 그림이 좀 더 안정적이고 누가 보아도 지적을 덜 받도록 안정감이 생긴다. 하지만 그 그림 안에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나 감정이 덜 묻어난다. 아무것도 보고 그리지 않으면 마음의 상이 담기는데 그것은 추상적이고, 무의식을 반영한 이야기를 담긴다. 나는 그런 스타일이 좋지만. 사람들에게 잘 공감이나 이해가 안 된다. 그 간극을 아직 좁힐 만큼 실력이 있지도 않고 그 사이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업할지 아직 종잡지 못하고 있다.


세밀화는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비슷하게 그리는 사람이 많고, 그 안에서 차별화를 하는 것이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다. 추상적인 그림으로 무의식적인 이야기를 잘 담아 형태가 무너지지 않으면서 담을 수는 없을까. 아직 걸음마도 안된, 구상을 제대로 못하는 상황에서 이런 고민을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방법이 있기는 하다. 추상적으로 떠오른 마음의 상을 스케치를 많이 해서 뽑아낸 다음 구상화를 그릴 수 있는 참고하는 컷을 넣어 어느 부분은 힘을 주고 어느 부분은 힘을 빼서 공을 들여 편집하면 될지도 모르겠다. 근데 엄두가 안 난다. 마치 플랭크 자세를 취하면 코어 근육이 좋아진다는 걸 아는데 하기 싫은 것처럼. 우선 할 수 있는 만큼 계속 그리면서 내 안의 방향을 스스로에게 물으며 한 발 한 발 길을 찾아나가고 있다. 내가 그린 그림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의아한 반응을 받기도 하지만, 문득 칭찬을 들으면… 정말일까 하면서 그 사람의 기분을 살핀다.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계속 그리는 이유는 … 내가 쓴 이야기에 그림을 그리면 어떤 구체적인 상이 생기는 것 같아서 독자에게 더 잘 전달되는 기분이 든다.


구체적일수록 촌스럽고, 모호해질수록 불친절한 그 중간 어딘가 지점을 찾아나간다. 선배들의 그림이나 명화들을 바라보고 모작도 하고,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어 봐야겠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단지, 내 마음의 풍경을 온전히 구현해서 당신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다. 다소 외지고 쓸쓸하지만 기분 좋은 바람이 부는 곳으로 당신을 초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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