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동네에 살고 싶나요?

학군지로 간 언니가 등 떠밀어서, 고민하다 내린 결론

by 심가연


용인에 살던 언니가 수지로 이사를 갔다. 올해 초등학교를 들어가는 아이를 위해, 좋은 학군을 골라서 간 것이다. 두 살 언니는 미래의 나처럼, 내가 할 미션들을 대신 알려주는 존재다. 언니가 결혼하고 내가 결혼했고. 언니가 아이를 낳고 내가 아이를 낳았다. 일부러는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우리는 2년 차이가 나는 삶을 이어갔다.


어릴 때부터 친정에서 언니와 나는 가시나들, 두년들이라고 불리며, 베게도 세트, 옷도 큰 분홍, 작은 분홍 세트로 입으며 자랐다. 첫째 딸이 하면 둘째딸도 해야 한다. 모든 일을 반으로 잘라서 감당한다. 언니와 나의 삶은 늘 비교대상이었다. 언니가 잘하면 내가 지적을 받고, 내가 잘하는 부분은 언니가 지적을 받았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선의의 경쟁을 하며 살아왔다.


언니는 이공계, 나는 문과를 나왔고. 언니는 프로그래머, 나는 스토리텔링 n잡러. 각자 다른 캐릭터였지만 육아를 하며 엄마가 된 후 선배인 언니를 많이 정신적으로 의지하게 되었다. 언니는 나에게는 엄마 역할을 가르쳐 준 사수였다. 그리고 지금도 인생의 사수처럼 아파트분양이나 이사 계획에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런 언니가 학군으로 이사를 갔으니, 나에게도 학군에 대한 조언이 쏟아졌다. 어찌 해야겠는가.


사실 언니와의 경쟁은 이제 의미가 없어졌다.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집안 경제규모도 차이 나고, 삶에서 추구하는 바도 많이 다르다. 언니는 전화를 하면 늘 아이의 교육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고, 나는 현재 도전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편이다.


엄마라면 어떤 시기에 비슷한 고민을 한다. 4살의 아이라면 기저귀를 당연히 때야 하고. 7살의 아이라면 당연히 한글을 배워야하는 것처럼. 그런 수많은 허들이 내 인생에도, 아이들의 인생에도 펼쳐져 있다. 나는 내 허들을 넘으면서, 아이들이 허들을 넘게 엉덩이도 두들겨 주고. 밤만 되면 허들을 넘느라 지쳐 돌아온 남편의 술 취한 노래도 들어주어야 한다.


모두 잠든 새벽. 나는 그제서야 아직 넘지 않은 나의 허들을 생각한다. 준비 중인 공모전, 스웨터 함뜨 프로젝트, 운전면허... 기타 등등. 그 중 최고 난이도의 허들이 바로 이사다.


주택을 팔아서 아파트에 가려는데. 내가 살고 있는 주택은 아무도 사겠다는 사람이 없고, 아파트 값은 계속 오른다. 주택을 싸게 팔고 아파트를 빚을 내서 사려는데. 남편은 자기 주택이 앞으로 오를 거라고 팔지 말라고 하고 아파트가 싫다고 한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모든 고민은 욕망과 현실의 격차를 좁히는 것부터 시작일 것이다. 각 지역이나 동네마다 꽤 잘나가는 학원가들이 모여 있는 학군이 있다. 지역마다의 차이는 있겠지만. 서울 안의 구마다 가격대가 있어서 지역 가격 벽을 넘어서 이사를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벌이 수준에 맞는 구에서 살면서 비슷한 경제수준을 가진, 비교적 가성비 좋은 환경인 서울 강북권의 학원가 동네를 찾아보게 되었다.


나는 노원을 그런 곳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러한 정보들은 카더라 통신을 통해 동네 커뮤니티에서만 잔잔하게 엄마들끼리 전수된다. 어느 초등을 나온 아이들이 어느 중등으로 가서, 서울대를 몇 명 보낸... 학업성취도가 좋은 어느 고등학교로 간다. 그런 다년간의 데이터들을 분석하여. 엄마들의 빅데이터는 지갑을 열고, 몇억짜리의 학군가 아파트 집값은 절대로 떨어지지 않고 다른 엄마들이 다시 자리를 차지한다.


혹여 자신의 학군 근처에 다른 아파트가 지어지면서 숟가락을 얻으려하면, 아파트 단지에서 모인 사람들의 단체 행동으로 구청에 한 번에 탄원서를 내어서 밀어낸다. 특권이란 결국, 자신들과 다른 집단의 배제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점차로 느낀다. 나는 자주 배제되는 쪽에 서 있었기에 그런 행위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럼에도 나도 그 집단에 가고 싶다. 우리 아이도 그 집단에 세우고 싶다. 그게 솔직한 마음이다.


이사를 가느냐 마느냐. 사실은 이 고민의 바닥에는 돈 문제가 깔려 있고,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나는 아이와 학군지로 이사 가서 학원을 매일 보내주면서 공부를 시킬 형편이 못된다. 그럼에도 내가 아이에게 주지 못한 미련 때문에 아이가 초등학교를 가기 직전까지 이런 고민을 해보며 계산기를 두들겼던 것이다.


답정녀 엄마가 내린 결론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였다. 어느 동네에서 사는지, 어느 집에서 사는지 우리는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주어진 집에서 재밌게 살 수 있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이다.


아이는 엄마가 이런 고민을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학군에 보내주지 못한 ‘엄마’여서 미안한 만큼, 혹시 아이가 언니네 아이보다 잘하지 못해도 이해해줄 것이다. 엄마도 최선을 다해보았으니, 아이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우리의 최선은 서로가 알아주면 될 일이다. 언니가 선의로 알려준 아파트 분양과 학군지의 정보는 사실 나에게는 맞지 않는 조언이었다. 그것은 언니의 삶에서 찾은 답이었다. 나는 나의 답을 찾아야 한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주택은 공공개발 지역으로 묶여서 매매도 되지 않고, 주민들의 동의서를 받고 있다. 그 사이에서 나는 상황을 보며 기다리는 중이다. 역시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답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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