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X뜨개질수다
그림을 그리거나 뜨개질을 하는 등 손으로 뭔가를 하는 일은 나는 좋아한다. 우울한 일이 있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이겨낼 때 나는 언제나 뭔가를 그리거나 만들었다. 초등학교 시절, 뜨개질이 너무 하고 싶었던 나는 수예반에 들고 싶었지만 엄마의 반대로 도서반에 들어서 책을 읽었다. 엄마에겐 바느질은 앞으로 돈을 버는 직장을 구하는데 있어서 쓸데없는 시간낭비일 뿐이었다. 입시전쟁에서 절대로 필요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할머니도 바느질과 마찬가지로 집안일에 대해서도 늘 같은 태도로 언니와 나에게 시키지 않았다. 집안일을 잘하게 되면 집에서만 살게 될 거라고 본인처럼 살지 말라고 하셨다. 언니와 나에게 그렇게 당부하시며 책상머리에 우리를 앉히셨다. 할머니의 신념으로 우리는 익숙하게 할머니가 차려준 밥상을 받으며 삼시세끼를 먹고 무럭 무럭 자랐다.
부모님이 생각하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성비 즉 노력 대비 언제나 효율적인 삶이었다. 그런 가치관이 나를 숨 막히게 하기도 하지만 이제 이해한다. 서민들에게는 취미나 즐거움을 쫓는 것이 얼마나 사치인지, 내 부모님이 살아온 시절을 생각하면 분명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를 제법 키우고 나서야 부모님도 영화관에 다니고 취미라는 것을 만들기 시작했다.
취미가 없는 사람을 보면 재미가 없어 보인다. 아니 재미없는 취미를 가진 사람이 재미없어 보인다. 반대로 나와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이기만 하다면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나도 말을 걸고 싶어 진다. 임신하고 노약자석에서 뜨개질하는 동안 할머니들과 얼마나 수다를 떨었는지 모른다. 아이를 낳고 키운 지 4개월째, 산후조리를 해야 해서 손목이 약하니 뜨개질을 하지 말라고 조언해주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아이를 낳고 몸보다 정신 건강이 더 중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뜨개질은 시간을 보내는 놀이임에는 틀림 없다. 시간을 하염없이 떠 없애는 것이야말로 바로 뜨개질의 미학일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금지당했던, 평가절하 당했던 이 뜨개질을 연습하며 하나씩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글을 쓸 때처럼, 그림을 그릴 때처럼 성취감을 느낀다. 원하는 실을 사고 바늘에 걸어 뜨는 동안 그동안 내가 가지고 싶었던 시중에는 절대 팔지 않을 뜨개인형이나 스웨터를 상상하며 만들고 있자면 행복해서 가슴이 뛴다.
뜨개질을 손으로 하는 요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남편은 옆에서 십 년째 하고 있는 던전 앤 파이터 게임을 하고, 나는 그 옆에서 뜨개질하며 바늘을 또각또각 부딪힌다. 결혼은 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남편이 거의 터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너는 왜 이러냐? 왜 그런 걸 좋아하냐’고 묻지 않고 존중해준다.
뜨개질을 완성하고나면 그 순간. 이대로도 충분하다는 기분이 든다. 쓸데없는 것들을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 진짜 취미 아닐까? 아니 쓸데없다는 기준은 다 돈 때문이다. 내가 만든 뜨개질 소품들이 아직 돈 주고 사는 것보다 못하지만 만드는 동안 즐거웠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돈이 좀 안 되면 어때. 시간도 버리고 실도 버려도. 내가 짜낸 뜨개질의 길이만큼, 내 상상을 현실화시켜낸 만큼 기쁜 것을.
또 모르지 않나?
언젠가는 돈 주고도 못 살 만큼 아름다운 스웨터를 짜내는 데 성공할 날이 올 것이다. 지금은 환절기 평화 담요를 떠주고 있다. 모티브 도안은 '그래니 스퀘어'로 계속 이어서 뜨면서 커다란 담요를 만들 계획이다. 아기 전용실 출동! 완성작은 10월 중순을 돼야 하지 않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또 잠시 웃음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