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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가연 Feb 20. 2022

부부는 서로의 똥을 주고받는 사이일까

예전부터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똥을 붙였다. 다섯 살 영화는 자신을 똥똥이라고 부르는 엄마에게, 나는 똥이 아니라 공주야!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사랑하는 이를 똥이라고 줄곧 불러왔다.


사랑하지만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들.


남편은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똥이다. 2007년도에 만나 연애를 시작한 이후, 2022년 현재까지 16년간 내가 인생에서 가장 많이 싸운 대상이 바로 남편일 것이다.


그는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놀이기구다. 그 이전에 가장 많이 싸운 대상은 언니였지만. 언니와는 다른 결로 남편과의 싸움은 여러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애정싸움일 때도 있고 정말 개싸움일 때도 있고.


싸움은 여러 가지 층위로 쌓여 올려진 감정이 터져 나오는 과정의 결과물이다. 나는 그 부딪힘이 언제나 우리를 발전시킨다고 오해했었다. 그래서 말을 걸고 계속 대화를 하고 내 마음을 쏟아내며 알아달라고 했었다. 하지만 건강한 싸움이란 최대한 상처 없이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인 것 같다. 상대를 질책하지 않고. 그를 내 뜻대로 변화시키겠다는 헛된 믿음을 포기한 이후 삶이 한층 편안해졌다.


결국 그는 그 이고 나는 나인 것이다. 완벽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허황된 믿음은 그저 한 사람의 희생으로만 가능한 판타지였을 뿐이다.


그 사실을 한참 동안 싸우고 알고 나서 우리는 그저 삶을 살아간다. 각자의 거리를 유지하며. 부부생활을 통해 느낀 기쁨과 슬픔을 적어 내려 간 곳은 작가교육원 수업을 들으며 한 자 한 자 적어 드라마 단막을 적어보았었다. 후회와 회환과 분노로 가득 찬 대본은 쓸모 있는 형태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내가 해답을 찾지 못한 이야기는 아직 작품이 되지 못한다. 읽는 이에게도 절반의 답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야기에도 삶에도 그런 의미에서 거리가 필요하다.


앞으로 나와 남편의 사소한 갈등을 부부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에세이를 적어보고 싶다. 왜냐면, 이제는 절반의 답을 찾았기 때문이다.

다만 생각났을 때 정제되지 않을 채로 업데이트를 하고 틈틈이 재수정을 할 거라 구독을 해주신 분들은 아마도 초고거나 날것의 형태를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감안하고도 읽어주신다면 너무 감사하겠다.


다만 그와 나의 이야기를 꺼내,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싸우며 살아가고 있음을. 결혼 이후에도 서로의 마음을 옅게 비추는 사랑이 존재함을 말하고 싶다.


어제는 내가 아이들을 두고 밤새 드라마를 보고 피곤해서 잠이 들었다. 대신 그가 나의 무게를 짊어지고 아이들을 보며 똥을 먹었다. 오늘은 남편이 아침부터 술을 만취할 정도로 마시고 잠이 들어있다. 오래도록 일어나지 않을 작정일까. 한번 깨우고 돌아왔다. 더 이상 그를 건드리지 않는다. 그저 기다린다. 그가 깨기를.


우리는 서로의 똥과 사랑이 익숙한... 부부라는 이름의 공동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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