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가장 궁금했던 미스테리는 우리 엄마는 왜 이렇게 삼시세끼를 열심히 차릴까였다. 근데 내가 부부생활을 하고 나서 점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남편과 내가 배고프면 점점 서로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남편의 경우가 나보다 배가 더 빨리 꺼지는 편이다.
가부장제를 탓하며 '여자만 왜 밥을 차려?'라는 질문을 하기에 앞서 부부 사이에서도 엄연한 갑을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 들여야한다. 부부 사이는 물론 첫 단추는 사랑으로 연을 맺었다. 시작은 사랑이었지만 관계를 계속 조금씩 맺다보면 주식이 상승하고 내리듯이 변하기 마련이다. 연애초반에는 더 좋아하는 사람이 을이었다면, 결혼을 하고 나면 점차 힘을 가진 사람이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힘이란, 누구나 알듯 돈이다.
가장이라는 것에 대해 우리 집에서도 자주 논쟁거리가 된다. 남편은 늘 입버릇처럼 자신이 없으면 아들인 첫째 평화가 가장이라는 소리를 한다. 그 말에 늘 나는 코웃음을 친다. 내가 정의하는 가장이란 바로 '돈'을 이 집안에서 가장 많이 버는 사람이다. 그 생각이 맞는지 네이버 어학사전에 '가장'을 검색하니 이렇게 나온다.
가장6 (家長) 중요
[명사]
1. 한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사람.
2. ‘남편’을 달리 이르는 말.
[유의어] 가구주, 가부장, 가주4
현재까지는 남편을 달리 이르는 말이라고 하는데. 어디까지나 과거의 상황이다. 60대 중반 아버지와 50대후반의 어머니 상황을 보면, 아버지가 퇴직하고 나서부터 어머니의 수입이 훨씬 앞 서 있다. 상황의 전복은 언제나 가능한 셈이다. 이것은 시댁도 마찬가지. 시어머니가 더 많이 버신다.
남편은 언제나 내가 이 집에서 가장이야 라는 말을 달고 사는데, 그 말에 나는 이렇게 응수한다.
'가장'이라는 말이 소녀가장이라는 말도 있잖아. 그 말이 무슨 뜻이겠어. 소녀가 돈을 가장 많이 벌면 소녀 가장이 되는 거지. 고로 평화가 돈을 많이 벌면 평화가 가장이고, 내가 돈을 많이 벌면 내가 가장이 되는 거야. 돈을 많이 못 버는 가장이란 존재하지 않는 거지.
남편은 나의 이 말에 쓸쓸한 얼굴로 변해서 응수한다.
네가 나보다 돈을 많이 벌게 되는 날, 나는 죽어버릴 거야.
나의 남편은 이 집안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가장이다. 그래서 노동량의 분배에 따라 때때로 밥을 차려야하는 역할은 나에게 더 주어진다. 나 역시 그게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끼니가 되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서 라면이라도 끊인다.
부부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밥'일 것이다. 연애를 할 때 중요하게 여기던 스킨십 따위는 ... 더이상 안중에 없다. 우리는 싸우지 않기 위해 오늘의 밥을 만들어 열심히 먹는다. 때로는 함께 차리기도 하고, 남편이 차리기도 하고 내가 차리기도 한다. 그 비율이 얼추 서로가 억울하지 않은 선을 찾아 조절한다. 그 업무의 미묘한 배분이 흐트러지지 않게 서로 신경전으로 하루 하루 살아간다.
이제 남편 사용설명서의 진실을 알았는지?
남편을 사용하는 방법은 바로 '밥'을 먹이는데 있다. 시간을 본다. 9시 12시, 6시를 중심으로 배가 꺼지는 대략적인 시간을 계산해보라. 그가 주방에 서성이고 있다면. 그를 사용하기 전 밥을 먹일 시간이다. 주의할 점은 맛 없는 밥은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드시 고기 반찬 하나 정도는 있어야한다. 내 남편만 그런가 했더니, 내과 박원장 웹툰은 보는데 고생하고 온 주인공 박원장에게 아내가 컵라면 하나를 끊여주자 폭발하는 장면이 나온다. 다 그런가보다. 남자는 고기로 위로를 받는가봉가.
그를 다 알 수 없지만. 배고픈 짐승이 울기 전에 얼른 소고기를 물려주는 것이 여러모로 간편하다는 판단이 오랜 싸움의 경험으로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