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가연 Jun 10. 2022

비싼 만큼 과몰입했던 제주여행일지(1)

2022 제주여행

물가가 오르고, 금리가 오르는 요즘.  무서운지 모르고 제주도 여행을 질렀다. 나는 다이소에서  원짜리 하루에   사며 만족하는 작은 손이라면, 남편은  번씩 비싸고 값이 있는 경험과 물건을 하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큰 손이다. 남편은 평화가 '안녕 자두야' 제주 편을 보고 나서 제주도에 가보고 싶고, 비행기에 타보고 싶다고 하자,   없이    제주도행 티켓과 렌터카를 예약했다.


제주도를 두 번 다녀오며 든 생각이 제주도는 정말 관광지로 굳어진 섬이었다. 제주도는 거주민보다 관광객이 많아서 거주민들의 지역색과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나에겐 그다지 끌리지 않는 여행지였다.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현재는 티켓값도 올라서 그 돈이면 예전 같았으면 동남아 갔다 온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고 주변에서도 제주 가려다가 포기한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동남아를 안 갔다 와서 모르겠지만 이번 제주도 여행은 우리 가족의 지갑에 큰 출혈임이 분명했다.


6월 1일부터 5일까지 장장 티켓값을 뽑아내겠다는 일념으로 5일간의 제주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금액 때문인지 나는 사뭇 비장해진 마음으로 여행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우리도 꽤나 서둘러서 4월 말부터 숙소를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세상에 여행 고수들이 많은지 이미 회사를 통해서 갈 수 있는 가성비 좋은 고급 콘도들은 숙박 예약이 끝난 상태였다. 모를수록 뒤통수 받고 돈을 더 내야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불변의 진리인 셈이다. 아니면 시간을 들며 리뷰를 읽어서 그나마 가격 대비 합리적인 숙소를 찾아야 했다.


남편이 비행기 티켓과 차 렌트 예약을 한 뒤, 나는 숙소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숙소의 출혈만큼은 줄여보자는 일념으로 하루에 10만 원 이하의 괜찮은 숙소를 '여기 어때', '야놀자'앱에서 뒤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찾은 두 숙소는 모두 정말 만족스러웠다. 공유하자면. 첫째 날부터 셋째 날부터 머문, 제주 일성 비치 콘도(별점 4개 http://naver.me/5xlE5x5b )와 샤모니 리조트( 별점 5개 http://naver.me/FmOzeNI8)였다. 5일간의 여행 동안 한 번의 섬 북쪽에서 그다음에는 남쪽에서 여행 스케줄을 세워서 최대한 이동하지 않고 근처에서 여행을 즐기리라 마음을 먹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앞선 친정과 시댁과의 제주 여행을 통해, 제주가 생각보다 넓고 잘못 일정을 짜면 차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제주도 유튜브를 찾아보면, 제주도가 서울과 경기도를 포함한 정도의 사이즈이며 도로 정체가 심하고, 제주 도로를 이해하고 있지 않은 채 여행 스케줄을 짠다면 분명히 망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절대 실패하지 않을 제주도 여행 짜는 방법 (https://youtu.be/KOLACl6JbYU)이 편을 보고 제주도 도로를 제주시 지도에 하나씩 그려 넣고, 그 위에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미리 검색해서 한 땀 한 땀 그려 넣었다. 제주시 공항에서 출발해 숙소로 가는 길에 식당을 미리 알아봤다. 한데 우리가 출발한 6월 1일은 지방선거날이라 대부분의 식당이 쉬고 있었다. 흑돼지를 먹으러 찾다 찾다가 도착한 협재 해수욕장 해변에서 드디어 흑돼지 가게를 발견했다. 그곳에서 겸허히 첫 흑돼지를 먹었다. 그리고 해수욕장으로 바로 가서 아이들과 함께 수영을 시작했다.


이날은 도착하자마자 아무런 준비 없이 물에 뛰어들어서, 순식간에 살이 탔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쐬는 햇빛이 너무 좋아서 모자도 쓰지 않고 살이 따가워지도록 햇빛을 쐬었다. 한 번씩 너무 더워지면 튜브에 매달려 물에 들어가서 떠 있고, 수경을 끼고 바닥에서 흐늘거리는 수초를 보기도 하였다. 협재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은 제주도의 강한 바람에 날리는 모래들을 막기 위해 얇은 그물 장판이 깔려 있었다. 전체적으로 제주의 바다는 관광을 오는 손님들을 위해 청결한 편이었지만 해초들이 모래사장 가득 뒤덮여있고 수영을 할 때마다 한 번씩 다리를 휘감는 촉감인 미끌미끌하고 해파리가 아닐까 하는 걱정에 섬찟하기도 했다.


첫째 날은 서울에서 제주로 오느라 여러모로 지쳐 있었지만, 그 설렘 때문에 더욱 기억에 남고 재미가 있었다. 첫째 날 제주에 오기까지 일이 많았는데 전날 회식을 마치고 새벽에야 황급히 들어온 남편과 바로 택시를 타고 아이들과 공항으로 달음박질을 치는 바람에 그야말로 정신이 쏙 빠져 있었다. 우리도 상당히 늦어져 다른 비행기 손님들에게 출입소에서 양해를 구하면서 들어갔어야 했는데, 고개를 푹 숙인 채 새치기를 하면서... '비행기 시작 때문에 죄송합니다'를 수차례 외치며 간신히 들어왔어야 했다. 남편이 주민등록증을 가져오지 않아서 하마터면 비행기에 들어가지 못할 뻔했는데, 요즘은 앱으로도 신분을 인증할 수 있어서 아슬아슬하게 제주로 날아오르려는 비행기에 들어갈 수 있었다. 비행기로 오르기 전 우리보다 늦게 달려온 손님을 보며 남편은 활짝 웃었다.

 "봐봐, 우리보다 더 늦은 사람이 있었어!"

나는 그의 옆구리를 비틀어 꼬집어주었다. 그렇지만 제주도에 새벽같이 출발해 도착하고, 공항 밖으로 하늘거리는 야자수를 보니 금세 마음이 풀려버렸다. 야자수의 흔들거리는 잎사귀를 보자 새벽에 애먹인 남편의 분을 단박에 날려 보낼 수 있었다.


협재 해수욕장에서 노는 동안, 웃통을 벗은 까만 아저씨들이 자연스럽게 해수욕을 하고 있었다. 까만 몸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여자들도 웃통을 벗어 저렇게 태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시를 벗고 얼룩덜룩해진 내 몸을 보며 아쉬웠다. 탄 피부의 건강한 색을 보고 있자면, 그 사람이 햇빛에서 보낸 시간이 느껴져 그 거뭇해진 살자 욱이 도리어 싱그럽기까지 했다. 협재의 모래사장에 있던 해초들은 먹을 수 있는 것일까 괜스레 채취해서 말려 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굳이 여행 와서까지 궁상을 떨고 싶지 않아서 그저 해초를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해초를 수확하고 엄마에게 선물을 주며 금세 놀잇감을 대하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웃음이 푹 나왔다. 영화는 튜브를 타다가 뒤집어져서 겁을 집어먹은 채 모래놀이만 하고 내 옆에서 하고 있었다. 아이에게 다가가 괜스레 해초를 건넸다.

"영화야, 이 해초를 먹으면 수영을 잘할 수 있데, 자 아 해봐."

영화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엄마와 해초를 번갈아 보았다. 작은 일에도 다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렇게 제주 여행의 첫날이 지나갔다.

 



작가의 이전글 남편 사용설명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