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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가연 May 13. 2022

사랑, 일생일대의 끌림


“엄마, 저는 결혼 안 할 거에요.”

우리 아들 평화가 설날에 모여있는 가족들 앞에서 갑자기 자기는 결혼을 안 할 거라고 선언했다. 그 말에 시아버지는 남편과 나를 흘겨보며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냐고 하셨다. 평화의 이유인 즉슨, 엄마랑 아빠가 너무 싸워서 자신은 결혼 같은 건 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올해도 8살이 된 평화가 벌써부터 비혼 선언을 하자, 시아버지는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셨고, 참지 못한 남편도 몇 마디 되받아쳤다. 분위기가 싸해졌고 결국 시아버지 먼저 댁으로 가셨다. 옆에서 나는 민망하고 평화가 그런 생각을 가진 것이 나와 남편의 탓인 것 같았다. 평화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 결혼을 해서 얼마나 행복한지를 앞으로 좀더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결혼을 하지 않겠다던 평화는, 사실은 여자아이들을 무척 의식하고 좋아하는 편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여자 아이마다 열심히 쳐다보고, 그 아이의 앞에 서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인다. 초등학교에서 여자 친구들을 제일 좋아하고, 놀이터에 가서도 남녀를 가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 친해져서 노는 편이다. 아이를 보면서 정말 결혼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 걸까 의심이 되었다.      

어느 날 아이는 갑자기 또 우리에게 고백했다.


“엄마 나는, 결혼할 여자를 찾고 있어요.”


뭐라고, 결혼? 초등학교 1학년인데 이토록 사랑에 진지하고 탐색적일 수가 있을까. 나 어릴 때 남자아이들은 공 차는 것 말고 여자애들한테는 정말 1도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남편에게 물었다.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 근데 남자아이들도 원래 평화처럼 여자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고, 일생일대의 고민이 연애였어?”

“그럼. 당연하지.”

남편과 나는 평화의 그런 변화가 반가웠다. 벌써부터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아이의 마음이 다시 열렸다는 것에 안심이 되었다.      

사랑에 대한 평화의 갈망을 계속 되었다. 축구수업을 가야 하는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평화는 눈을 비비면서 말했다.     


 “엄마, 여자애들이 축구 잘 하는 남자애를 좋아하지요?”

“그럼! 여자애들은 운동 잘 하는 남자애를 엄청 좋아해!.”

엄마의 말에 의지가 불타는 평화의 눈을 보여 웃음이 났다. 남자 아이들이 자길 보는 여자애들의 눈빛을 의식하며 축구를 하고 있었구나. 그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내내 남자아이들이 운동장에 노는 모습을 바라봤던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운동장에 남자아이들은 햇빛을 받으며 공을 차고,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뛰어다녔다. 그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우리의 일생일대의 꿈이자 목표는 결혼이었구나. 지금 내가 해낸 이 사랑의 완성이었던 것 같다. 매일 지지고 볶는 일상을 그렇게 위안하며 과거를 추억해본다. 나는 남편을 어떻게 골랐더라. 아련하게 평화 덕분에 그때의 추억을 되짚어보았다. 나는 늘 첫눈에 사랑에 빠졌었다. 그 사람을 보는 순간, 아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겠구나. 느꼈다. 그때는 그게 운명이거나 나의 직관, 낭만적인 사랑의 힘이라고 믿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상당히 얼굴을 보는 스타일이었던 것도 같다. 앞으로 평화는 어떤 사랑을 하게 될까. 자주 설레고 부끄러운 평화를 보며 말려도 금세 좋아하는 여자를 찾아서 엄마 앞에 데려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할 것 같다. 걱정을 접어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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