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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새해 Jun 04. 2020

새벽 한 시에

보들레르, 파리의 우울 중

   

      

보들레르

윤영애 역

민음사


그동안 감정 소모가 참 많았구나! 쓸데없이 복잡구나! 코로나가 새삼 깨닫게 해 준  진실이다. 일도 관계도 간명하게, 간소하게 , 본질에 가까운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믿고 싶지만  나는 태생이  복잡한 사람이다. 바쁨을 떠나 한가로운 삶을 선택했음에도 내가 바라는 그 간명 간소까지는  갈길이 멀어 보인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떠나고 정리하고 동시에  또 끊임없이 복잡해질 거리를 만들고 있다. 코로나 19가 본의 아니게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시간을 주었고 모든 일과 관계로부터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이 또한 오래가지 않을 것다. 나는 또 새로운 호기심으로 조금씩 복잡해질 테니까. 그래도 이런 시간, 이런 고독의 시간을 나는 늘 원하고 시시때때로 반드시 필요로 한다. 바깥문을 잠그고 나에게로 침잠하는 순간마다 떠오르는 시가 있다. 샤를 보들레르의 '새벽 한 시에'라는 산문 시다.  


보들레르에 관해 말하자면 너무 할 말이 많아서 오히려 한마디도 할 수 없겠다는 기분이 든다. 나는 책이든 영화든 간략히 내 멋대로 정리하기를 좋아하는데 보들레르는 간략히 정리가 되지 않는다. 그럴 능력이 없다. 내가 이걸 왜 시작했나 시작하자마자 덮어버리려다가 기왕 시작했으니 필사라도 한번 해보자 한다. 참 오랜만에 읽는 보들레르다.


새벽  1 시에 / 보들레르/ 파리의 우울

  마침내 혼자가 되었군! 이제 늦게 돌아가는 지쳐빠진 몇 대의 승합 마차 굴러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몇 시간 동안 휴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린 고요를 갖게 되리라. 마침내 인간의 얼굴의 횡포는 사라지고, 이제 나를 괴롭히는 건 나 자신 뿐이리라.
  마침내! 그러니까 이제 나는 어둠의 늪 속에서 휴식할 수 있게 되었다! 먼저 자물쇠를 이중으로 잠그자. 이렇게 자물쇠를 잠가두면, 나의 고독은 더욱 깊어지고, 지금 나를 외부로부터 격리시키는 바리케이드가 더욱 단단해지는 것 같다.
  가증스러운 삶이여! 공포의 도시여! 자, 하루 일과를 더듬어보자!  문인 몇 명을 만났다. 그중 한 사람은 육로로 러시아까지 갈 수 있는지 나에게 물었다.(그는 틀림없이 러시아를 섬으로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다음 한 잡지사의 국장과 마음껏 논쟁을 했다. 그는 나의 반박 한마디 한마디에 "우리 회사는 정직한 사람들의 집단이오."라고 대꾸했다. 그 말은 다른 모든 신문 잡지는 건달들에 의해서 편집되고 있다는 의미다. 그다음에는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중 열다섯 명은 처음 만난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 친구들과 그만큼의 악수를 나눈 셈인데, 미리 장갑을 사두는 주의를 하지 않았던 것은 내 잘못이다. 그리고 소나기 퍼붓는 동안 시간을 보내기 위해 어느 여자 곡예사 방에 들렀는데 그녀는 나에게 베뉘스트르 의상을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다음 한 극장 지배인에게 문안드리러 찾아갔는데 그는 나를 돌아가게 하며 이렇게 말했다."Z를 찾아가 보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는 나의 모든 작가 중 가장 둔하고 가장 어리석지만, 또 유명하기도 제일인 친구입니다. 그와 함께라면 당신은 아마 무엇이든 얻을 것입니다. 그를 만나십시오. 그러고 나서 봅시다"  그다음 내가 지금까지 해 본 적이 없는 비겁한 일을 했다고 자랑하고, (왜일까?) 내가 기꺼이 저지른 다른 비행들을 비겁하게 부인했다. 하나는 허풍의 죄, 다른 하나는 체면을 지키기 위한 죄다. 한 친구에게는 쉽게 할 수 있는 도움을 거절하고, 어느 지독한 건달에게는 추천장을 써주었다. 아이고! 그것으로 끝인가?  
모든 사람에게 불만이고 나 자신에게도 불만인 나는 밤의 정적과 고독 속에서 정말이지 나를 되찾고 , 조금이나마 긍지를 가지고 싶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넋이여 , 내가 노래했던 사람들의 넋이여, 나를 강하게 해 주소서. 나를 북돋아 주소서. 그리고 세상의 허위와 썩은 공기로부터 나를 멀게 해 주소서. 그리고 당신, 나의 하느님 아버지여! 내가 인간말짜가 아니며 내가 경멸하는 자들보다도 못하지 않다는 것을 자신에게 증명해 줄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게 은총을 내려 주소서.   (윤영애 역/ 민음사)   

 

- 다른 번역-

 모든 인간이 한심하고 나 자신이 한심해서 나는 이 밤의 정적과 고독 속에서 나를 회복하고 조금이라도 긍지를 누리고 싶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영혼이여, 내가 노래했던 사람들의 영혼이여, 내게 힘을 주시라, 나를 붙들어 주시라, 세상의 거짓과 부패한 증기를 나에게서 멀게 하시라. 그리고 그대, 주 나의 신이여! 아름다운 시를 몇 구절이라도 지어내어 내가 인간들 가운데 가장 하등 한 자가 아니며 내가 경멸하는 치들보다 더 못난 놈이 아니라는 것을 나 자신에게 증명할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시라.  (황현산 역 /문학동네)


소설도 그렇지만 시는 특히 번역에 따라 많은 느낌의 차이가 있다. 그래서 오로지 페소아 때문에  포르투갈로 유학을 떠나 페소아 전문가가 된 그림작가 김한민의 열정이 이해가 된다. 어떨 때 그런 마음이 품어지는지 알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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