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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새해 May 17. 2020

장 자끄 상뻬

겹겹의 의도, 얼굴 빨개지는 아이

   난 행복한 아이들을 상상하기를 좋아해요. 자기도 모르게 행복한 아이들 말입니다.  -장 자끄 상뻬-



뒤죽박죽 책상 위에서 자료를 찾다 문득 손에 잡힌 그림책을 보고 있다. 장 자끄 상뻬의  데생 모음집이다. 장 자끄 상뻬라는 이름은 익숙지 않아도 (꼬마 니콜라)와 (좀머 씨 이야기)의 삽화가라고 하면, (얼굴 빨개지는 아이)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의 작가라고 하면, 아! 그림이 떠오를지  모르겠다.  장 자끄 상뻬는 1960년 르네 고시니와 작업한 (꼬마 니꼴라)의 성공을 시작으로 50여 년을 활발하게 활동해 온  프랑스 출신 데생 화가다.  힘이 들어가지 않은  부드러운 선과  부드러운 채색은 보는 사람에게 바로 편안함과 친근함을 준다. 그러나 편안함과 친근함만으로 대가가 되지는 않는다. 그의 진짜 매력은 헐렁해 보이는 그림과 간결한 글 속에 담고 있는   대한 찰과 유머다. 유머란 어떤 난관과 맞서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게 하는 특별한 능력이. 내가  배울 수 있다면  배우고 싶은 삶의 고급진 기술, 그의 그림은 외롭고 고독한 순간에도 빛나는  유머가 있다.  그가 그려온 데생과 수채화는 사회학 논문 1천 편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평을 듣는다.

겹겹의 의도
장 자끄 상뻬
윤정임 옮김/ 미메시스


데생 모음집 겹겹의 의도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장소 , 평범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다. 얄팍한 책을 펼칠 때마다 그림 속에서 새로운 내막을  발견한다. 처음에 그냥 지나쳤던 디테일이 오! 뒤늦게 보이기도 하는 책. 숨은 그림 찾기처럼 보게 되는 책이다 ' 겹겹의 의도'(Multiples Intentions)라는 한글 제목이 썩 잘 어울린다.                                  

                                                     

야호! 내 소중한 친구인 고독과 함께 아름답고 멋진 또 하루를 보낼 수 있다네!
  -겹겹의 의도 5쪽 -
이 모든 게 오래된 얘기라는 건 알아. 클로틸트. 하지만 당신을 두렵게 했다는 이른바 내 안의 그늘진 부분에 대해 다시 얘기를 나누었으면 좋겠어. 대화를 하다 보면 나의 그 어두운 부분이 어쩌면 당신의 기쁨과 행복의 원천이었다는 걸 깨우치게 될지도 몰라.  - 겹겹의 의도  95쪽 -                                                                                                     


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 자끄 상뻬
열린 책들


오늘 저녁은  장 자끄 상뻬에 눌러앉았다. 애정하는 그림책 (얼굴 빨개지는 아이)를 다시 읽는다.  얼굴이 빨개져야 하는  순간은 멀쩡하고  예기치 않은 순간에 늘 얼굴이 빨개져서  복잡한 나날을 살게 된 마르슬랭 까이유와 언제 어디서나 시도 때도 없이 재채기가 나와서 곤란한 나날을 사는 르네 라토, 두 친구의 코 찡한 우정 이야기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단순한 다름이 아니라 낙인이 되어버린 '얼굴 빨개지는 아이'와 '재채기하는 아이'는  서로 자석에 이끌리듯  친구가 된다. 잘못한 것도 없이 잘못한 것 같은 기분으로 사는 그들은 각자 외톨이었고   나는 왜 얼굴이 빨개지는 걸까? 나는 왜 재채기를 하는 걸까? 스스로 질문하는 아이였다. 다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서로에게  어떤 친구가 되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재미있게 놀 때는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얘기도 하지 않는 순간조차 그들은 함께 있음이 지루하지 않았다.


그렇게  둘도 없는 친구에게 단절이 찾아온다. 바쁜 어른들의 무심함 때문이었다. 긴 그리움의 시간을 지나 친구도 다 잊혀질 무렵 그들은  운명처럼 다시 만난다.  얼굴 빨개지는  어른이 된 마르슬랭 재채기하는 어른이 된 르네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서로를 한눈에 알아본다. 그들 역시 바쁘고 정신없는 어른이 되었고 각자 자신을 닮은 얼굴 빨개지는 아이와 재채기하는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대도시에서  보통 사람의 삶을 살고 있지만 두 사람의 우정은 보통 사람의 그것과 달랐다.  어린 날의 그때처럼 .


 다름에  대해, 콤플렉스에 대해, 친구에 대해,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 그 모든 좋은 것과 곤란함, 복잡함을  내포하고 있는 이 삶에  대해 , 무도 사랑스러운 그림과 여백과 절제된 최소의 문장만으로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는 그림책이다.

   


왜 나는 얼굴이 빨개지는 걸까?


알지 모르겠지만, 재채기 하는건 아주 귀찮은 일이야




어린 시절
장 자끄 상뻬
미메시스

(상뻬의 어린시절} 북 트레일러 https://youtu.be/UNma85RBvz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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