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같은 평화, 도자기 같은 평화,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평화는 늘 깨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어디 평화만 그런가, 사랑, 우정, 믿음, 약속, 꿈, 맹세, 단단하기를 바라는 모든 것은 자주 부서지고 깨어진다. 깨질 때마다 모두 내다 버렸으면 내게 남을 미덕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그 깨어짐이 그다지 괴롭지 않다. 그럴 수 있지.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꿰매 쓰기도 하고 고쳐쓰기도 한다. 언제부턴가 그림을 그릴 때도 반들반들한 표면보다 적당히 균열(crack)을 품고 있는 것이 나를 편안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제는 친구가 전화를 해서 자기 딸아이를 보낼 테니 열흘만 데리고 있어 달라고 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딸아이와 감정 대립이 있을 때마다 하는 소리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진심으로 흔쾌히 보내라 했고, 친구는 심정이 그렇다는 것이지 정말 딸아이를 보낸 적은 없다. 그러나 어제는 내가 흔쾌히 대답하지 못했다. 왜냐면 내 코가 석자였으므로. 자유를 표상으로 사는 내가 연로한 어머니와 함께 산 지 5년, 수시로 평화가 깨지고 스스로 다짐했던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헌신의 마음은 너덜너덜 누더기가 되어간다. 그럼에도 그 마음은 함부로 버릴 수 없고, 버려지지 않는다. 와장창 평화가 깨질 때마다 이렇게 꿰매 볼까 저렇게 붙여볼까 전전긍긍 새로운 방법을 강구한다. 예전에 간단히 보아 넘겼던 킨츠쿠로이가 요즈음 다시 떠오른 것도 다 그 때문이다.
金繕い / きんつくろい /Kintsukuroi
킨츠쿠로이는 깨어진 도자기를 수선하는 기술이다. 일본의 전통공예인 마키에(금박, 금가루 공예)의 일종으로 깨어진 도자기를 옻 성분의 접착제로 접합하고 그 접합 부위에 금가루를 뿌려서 수선하는 방법이다. 깨진 부분을 깨지지 않은 것처럼 감쪽 같이 붙여 내는 기술이 아니고 여기가 깨진 부분이라고, 접착한 부분에 금이나 은가루를 뿌려 티 나게 장식하는 기술이다. 부서짐, 깨어짐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과감하게 드러냄으로써 파손으로 생긴 자국이 유일무이한 아름다운 무늬로 탄생한다. 그릇이 귀하던 시대에 다도와 함께 발달한 기술인데 하나의 예술 장르가 되어 다양한 작품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킨츠쿠로이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단순히 그릇 고쳐 쓰기의 실용적 의미를 넘어 파국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시각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상처의 흔적이란 참으로 유일무이한 것이어서 그것을 받아들이고 드러내는 방식에 따라 강력한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가 될 수 있다. 그야말로 영광의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번 금이 간 신뢰는 회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깨어진 평화는 고쳐 쓸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고집도 하얗게 세어버린 어머니가 날마다 가르쳐 준다. 어머니와 수많은 분분합합 (分分合合)의 시간을 살며 남들은 알고 나만 몰랐던 평범한 진리들을 바쁘게 깨우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