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대에 이루지 못하면 앞으로도 가망 없다고 친구가 말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사랑을 완성한 나이가 서른셋,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서 크게 깨달은 나이가 서른다섯, 음악가도 시인도 모두 그렇다고, 이룰 수 있다면 서른 즈음이고 그게 아니라면 가망 없는 거라고 했다. 우리는 망했다고, 요절도 한참 늦었다고. 자기나 망할 것이지 나까지 싸잡아 말하던 친구가 있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나는 망해도 벌써 여러 번 망했다. 내다 버렸거나 포기한 꿈이 한두 개가 아니다. 어릴 적 꿈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아이들과 종종 벽화작업을 한다. 한 칸 한 칸 이어 붙일 나무 타일을 하나씩 나눠 주고, 설명을 하고, 이제 시작하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여기저기서 다급하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선생님 망했어요!"
"저도요!"
"저도 망했어요"
" 하나 더 주시면 안 돼요?"
나는 일일이 찾아다니며 왜 망했나? 묻지 않고 모두에게 말한다.
"얘들아 그림은 망하지 않아, 일단 끝까지 그려 봐, 그래도 망한 거 같으면 선생님이 싹 다 고쳐 줄게!"
그러면 아이들은 신기하게각자 알아서 고쳐가며 제 그림을 완성한다.대부분 선생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망한 거 같다던 그림을들여다보며 오히려 자랑스러워한다.
사람은 쉽게 망하지 않는다. 아니 수없이 망해도 또 살아진다. 뜻대로 되는 일 하나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고 계획하지 않았던 뜻밖의 일들로 삶은 더 풍요롭고 견고해지기도 한다는 것을 번번이 깨닫기 때문이다. 뜻대로 되는 거 하나 없다고 , 이번 생은 망했다고 투덜대면서도 하루하루 자기 앞에 놓인 생을 성실하게 살아내는 이유다.
친구야, 우리가 정말 망했을까? 갑자기 물으면 친구는 자기가 한 말을 기억이나 할까 모르겠다. '전화 끊어, 바빠!' 그러지 않으면 다행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