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없이도 괜찮은 시대'에 대하여
"마셔라 마셔라, 술이 들어간다!" 한때 회식 자리의 단골 구호였던 이 노래가, 요즘엔 어디서도 들리지 않는다. 잔을 돌리는 대신, 물과 탄산음료를 마시고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더 자연스러운 풍경이 됐다. 편의점 술 코너를 봐도 그 변화는 또렷하다. 예전엔 맥주와 소주가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무알코올 맥주나 저도수 술이 그만큼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요즘 20~30대는 예전처럼 술을 즐겨 마시지 않는다. 회식 자리에서 술을 사양해도 눈치 주는 사람이 드물고, 술자리를 아예 만들지 않는 분위기도 점점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많은 사람이 이 현상을 두고 "요즘 애들이 건강을 더 챙긴다"거나 "코로나 이후 술자리가 줄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건 단지 소비 습관이나 일시적인 유행의 문제가 아니다. 젊은 세대가 술과 사회, 그리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 문화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요즘 20~30대가 술을 피하는 이유는 단순히 건강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건 술이 주는 취기가 아니라, 자기 몸의 컨디션이다. 술을 마시기 전, 이들은 오늘 밤의 짧은 즐거움과 내일 아침의 숙취 사이에서 잠시 고민한다. 찰나의 즐거움을 위해 다음 날 피로를 감수하면서까지 술을 마실 이유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하루의 루틴이 흐트러지는 걸 꺼리는 이들에겐, 한밤중까지 이어지는 술자리는 그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일 뿐이다. 그래서 아예 술자리 자체를 피하거나, 최대한 일찍 자리를 뜨는 쪽을 택한다.
경제적인 이유도 빼놓을 수 없다. 외식비와 술값이 꾸준히 오르면서, 회식 한 번, 친구들과의 술자리 한 번이 부담스러운 지출이 됐다. 고정비용이 큰 세대에겐 술이 '굳이 안 써도 되는 항목'이 되기 쉽다. 게다가 요즘은 단순히 저렴한 것을 찾는 게 아니라, 이 비용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따지는 소비 태도가 강하다. 한두 시간 술을 마시는 데 몇만 원을 쓰는 대신, 나를 위한 작고 확실한 만족에 돈을 쓰는 쪽이 더 낫다고 느낀다.
그리고 무엇보다, 술 없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졌다. OTT 콘텐츠, 게임, 운동 같은 취향 활동이 일상의 중심이 됐고, 그 안에서 즐거움과 휴식을 찾는 게 더 익숙해졌다. 꼭 한자리에 모이지 않아도, 각자의 방식으로 연결감을 느끼는 데 익숙한 세대다. 누군가에게 맞춰 시간을 쓰기보다, 내 페이스대로 시간을 보내는 감각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자연스럽게 술자리는 선택 가능한 활동 중 하나로 밀려나게 되었다.
예전에는 사람들과 가까워지려면 술자리가 필요하다고 여겨졌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한두 잔 들어가면 금세 편해진다는 믿음이 있었다. 회식 자리에서 상사가 먼저 잔을 들면 눈치를 보며 따라 마셨고, 거절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술은 어색함을 풀고, 관계를 이어주는 수단이자 하나의 관습처럼 받아들여졌다. 함께 마셔야 진짜 친해질 수 있다는 생각은 오랫동안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 믿음은 이제 더 이상 지금 세대에게 자연스럽게 적용되지 않는다. 요즘 세대는 누군가와 가까워지기 위해 꼭 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맑은 정신으로 대화하고, 각자의 속도를 존중하는 관계를 선호한다. 감정은 억지로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라는 인식이 더 강하다.
술자리를 거절한다고 해서 관계를 거부하는 건 아니다. 요즘 사람들은 술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친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채팅, 영상 통화, 온라인 게임처럼 익숙한 방식들은 일상적인 소통의 수단이 되었고, 어떤 경우엔 술자리보다 더 편하고 진솔한 대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관계를 맺는 방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술을 마시는 방식만 달라진 것은 아니다. 한때 당연하게 여겨졌던 회식 문화 자체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그 변화의 기폭제는 코로나였다. 거리두기와 재택근무가 일상이 되면서 회식을 아예 하지 않는 분위기가 퍼졌고, 그 변화는 생각보다 오래 지속됐다. 그렇게 생긴 공백 속에서 사람들은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없어도 괜찮다는 것.
예전엔 회식이 업무의 연장이자 팀워크의 필수조건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다르다. 퇴근 후에는 각자의 시간이 더 중요해졌고, 굳이 술자리를 통해서만 친해질 필요도 없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일 외의 시간까지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은 점점 설득력을 잃고 있다. 회식이 빠졌다고 해서 팀워크가 무너지는 것도 아니라는 걸, 많은 이들이 실제로 경험했다.
유연근무와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일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 함께 일한다고 해서 반드시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하는 것도, 업무 외의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것도 아니게 됐다. 일과 사생활의 경계가 분명해질수록, 회식은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잃어갔다. 조직문화의 기본값처럼 여겨졌던 회식은 이제 선택의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필요하다면 할 수도 있지만, 하지 않는다고 해서 어색하거나 문제가 되지는 않는 시대가 됐다.
술을 덜 마신다는 건 단순히 무엇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기존의 문화를 무조건 거부하기보다는, 자신들의 기준에 맞게 조율하고 새롭게 다듬는다. 어떻게 마실 것인가, 누구와 마실 것인가, 그리고 정말 마실 필요가 있는가? 이들은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먼저 던지고, 그 질문을 통해 관계를 맺는 방식부터 일상의 우선순위까지 자신만의 기준을 세운다.
이 변화는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세대가 만들어낸 방향성이다. 그 선택은 지금 세대가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방식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건강, 경제성, 관계의 방식, 일상의 균형. 그 모든 것이 술을 둘러싼 선택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제 술을 마신다는 행위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각자의 판단과 삶의 기준이 반영된 선택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 변화는 하나의 문화적 전환점이다. 술이 줄어들면서 사라진 건 단순한 취기가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를 맺고 스스로를 돌보는 방식의 변화다. 이들은 술 없이도 충분히 어울릴 수 있고, 자신의 리듬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사회 속에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있다. 달라진 건 단지 술자리가 아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연결되는 방식, 그리고 함께하는 시간을 대하는 방식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