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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소롭게 Jun 24. 2021

남의 일에 관심 켜도 되는 사람

허용된 '감 놔라, 배 놔라'

우리가 처음 방문했던 상담기관은 실망스러웠다. 외국인인 남편과 소통 자제가 어려웠고, 우리를 너무 조심스러워(?)하는 게 느껴졌다. 대화의 흐름을 맡긴 채 우리의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그곳의 시간당 상담료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마침 할인 행사 중인 상담기관이었다. '할인'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내담자 본연의 문제보다 상업적인 방향으로 틀 수밖에 없는 수준의 기관인 것 마냥 느껴졌다.








두 번째 상담기관을 찾을 땐 좀 더 곰곰이 생각해봤다. 애당초 상담기관을 찾을 때 우리의 편의에만 맞춰져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기관의 위치, 상담 가능한 시간대, 적정한 가격대 등 우리 입맛에 맞는 조건들을 먼저 세팅해놓고 그에 맞는 곳들만 찾았던 것이다. 예전에 읽었던 심리 서적 중 한 권이 떠올랐다. 그 분이 집필한 다른 책들도 모조리 읽어보고, 현재 운영 중이신 기관에 대한 정보도 찾아봤다. 이곳이다 싶었다.


곧장 전화를 걸었다. 주중에만 상담이 가능했고 가격대도 지난번 갔던 곳보다 두배나 비쌌다. 위치도 그다지 접근성이 용이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영어가 가능한 분이 계셨고, 상업적이기보다 학술적인(?) 분위기가 더 풍겨서 좋았다. 딸아이를 돌봐줄 이가 없었기에 데리고 갔다. 아기띠에 대롱대롱 매달려 앉아 천진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딸아이는 고맙게도 상담 때마다 곤히 낮잠을 잤다.








그녀는 호리호리한 체격에 뾰족한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땐 마스크를 쓰기 전 세상이었는데도 이상하게 눈 밑으로 기억이 잘 안 난다. 아마 상담할 때 주로 눈을 바라봐서인 듯하다. 그곳은 기본 상담 시간이 2시간으로 묶여 있는 곳이었다. 즉, 한 시간만 상담받을 순 없었다. 처음에 이 얘기를 듣고 재빨리 머릿속으로 분당 상담료를 계산해봤다. 금전적인 부분을 신경 쓰느라 상담에 집중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괜한 걱정이었다. 오히려 제한된 시간과 1분 1초의 값어치가(실제로 지불해야 하는) 내 마음속에 있는 얘기들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녀는 정중하면서도 부드럽게 상담을 이끌었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제삼자에게 시간과 돈을 들여 한 가정의 치부를 드러내다니. 나의 최측근들은 시간과 돈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 대담하고 무례하게 조언질을 했던 걸까. 순간 들었던 잡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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