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지 말고 더하세요
사람의 감정은 신비롭다. 놀라우리만치 간단하면서도 이상하리만치 복잡하다. 감정 빼면 시체인 게 사람이다. 반대로 감정을 더하면 사람이 된다. 그간 의도치 않게 이를 부인하며 살았다.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적인 척 굴었다. 감정적으로 구는 건 구질구질한 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결국 감정 때문에 무너졌다. 감정이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성적인 척 굴었던 것도 돌이켜보면 감정적이었다. 감정을 바로잡아야 내가 바로 설 수 있었다.
주변이들에게 마음을 털어놨다. 곧바로 한계가 왔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그들에게 있는 얘기 없는 얘기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 없어서였다. 선별된 단어들을 늘어놓으며 그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신경 쓰는 내가 딱했다. 다른 하나는 그들의 대답이 모두 어슷비슷해서였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 했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은가. 모두가 획일적으로 감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채 살아간다니, 동의할 수 없었다.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책들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시중에 나와있는 책이란 책들은 모조리 탐독해나갔다. 이래서 그런 거였구나, 역시 어린 시절의 환경 영향이 크지, 이건 남편이랑 같이 읽어봐야겠다... 무언가 위안을 얻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갈증이 났다. 읽어도 읽어도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책에서 지식을 얻는 것과 남편과의 다툼이 잦아드는 건 별개의 일이었다.
당시엔 충격이었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때마침'이었다. 남편이 부부상담을 받아보자고 먼저 말을 꺼냈던 것이다. 난 그때도 여전히 내 감정의 뿌리가 부실하다는 걸 부정했다. 남편과 내가, 아니,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자기기만했다. 왜 그렇게 입 막고 귀 막고 살았던 걸까, 바보같이. 어차피 이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나를 위한 건데. 자기 자신을 어여삐 돌봐주려는 의지도 없을 만큼 나는 감정적으로 너무나 허약했던 것이다.
꽉 쥐고 있던 부정을 놓고 인정을 했다. 그다음엔 어이없을 정도로 모든 게 쉬웠다. 난 감정적이다. 이성적인 척하려고 내 감정을 짓눌렀다. 내가 느끼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은 불행의 씨앗이라고 생각했다. 참는 게 갈등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고 살았다. 안 좋은 감정을 느낄 때 없애지 못해 안달 난 사람처럼 불안해했다. 내가 그런 감정을 가진다는 게 불편했고, 싫었다.
희로애락은 네 글자가 다 같이 있어야 완성된다. 균형 잡히지 못한 희로애락은 와르르 무너져 내리게 되어있다. 내 임의대로 어떤 글자는 없앨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네 글자가 다 함께 공존한다는 걸 인정해줘야 한다. 그래야 내 감정이 균형 잡히고, 탄탄한 감정의 지반 위에 내 삶이 뿌리내리게 된다. 그냥 하자, 인정. 내 희로애락은 나만이 케어해줄 수 있다. 인정하는 순간이 곧 또 다른 시작이다.
직시하고
인정하고
행동하고
직시하고
인정하고
행동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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