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현著, 행성B刊
저자의 지명도는 모르겠으나 ‘조선이 사랑한 문장(1) (신도현著, 행성B刊)’을 읽어보곤 좋은 작가임을 알았다. 이 책을 읽어보니 BTS의 뷔가 저자의 ‘말의 내공’이란 책을 읽은 후 유명해졌다고 한다. ‘말의 내공’도 읽어봤으니 이 작가의 저서를 3권이나 읽는 셈이다.
사실 이 책은 아이들을 위해 고른 책이다. 제목과 같이 ‘잘 살기 바라는 마음에서’. 항상 마음 든든한 존재였고 삶의 버팀목 같으셨던 선친은 70되시기 전 갑자기 돌아가셨다. 낚시 따라가면 나지막한 목소리로 ‘얘 둘째야, 술 조금만 먹어라.’로 시작해 아이들 교육까지 에둘러 말씀하시던 목소리는 잘 살아가라는 말씀이었다.
40 중반, ‘잘 살고 있는지?’ 고민에 빠졌고 고민할수록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아니 수렁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모든 것이 의미 없이 느껴지고 삶의 권태기를 맞았을 때 인생멘토가 없어 답답했다. 선친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삶에는 과학이나 공학같이 정답이나 참고서가 없다는 것에 당혹해했으나 물어보고 싶어도 물어볼 데가 없는 것이 더욱 황당했다.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어렵고 곤란한 일에 부딪치면 自問(자문)하고 답을 구했었다. 그 후 선친에 대한 기억이 흐려져 답을 찾기 어려워졌을 즈음 인문학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것도 선친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이다. 매일 술을 드셨어도 새벽에는 어김없이 일어나 책을 읽고 꼬부랑거리는 필체로 원고지를 채워가던 선친이 남겨주신 유산이었다.
책을 내며
존경하는 분이 있습니다. 여든을 바라보는 동화 작가입니다. 선생님은 동화뿐 아니라 동서양 철학을 넘나들면서 많은 글을 쓰고 실천도 하는 사상가이기도 합니다. 처음 뵈었을 때 대뜸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어디에서 왔어요? 또 어디로 가지요?’
단순한 안부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책에서나 보던 선문답을 직접 마주한 기분이었습니다. 말문이 막혔습니다. 멋쩍게 웃기만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쩌면 인문학의 역사는 그 두 질문을 풀려고 노력한 역사가 아닐까 합니다. 러셀은 ‘세계의 구조를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것’과 ‘최선의 생활방식을 발견하는 것’이 인문학 공부의 목적이라 밝힌 바 있습니다. 어디에서 왔느냐는 것은 내가 태어나 현재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를 알기 위한 물음이고, 어디로 가느냐는 것은, 나의 삶을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인지 탐색하는 물음으로 읽힙니다.
저 역시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인문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틈나는 대로 인문학 책을 읽었고, 철학과 문학을 전공하고 인문학 책도 섰으니 꽤 오랫동안 인문학 곁에 있었지요
이제 답을 찾았냐고요? 쉽게 구해질 답이라면 수천 년간 많은 이들이 인문학을 화두로 평생을 바치진 않았겠지요. 사실 인문학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그것이 인문학을 생동하게 하는 힘이고요. 답이 있다면 앞사람이 풀어놓은 답안지를 훑어보고 따라 하면 그만일 겁니다.
인문학에 답이 없다는 것은 답이 여러 개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하나의 정답은 없지만 각자의 답은 있을 수 있다는 얘기지요. 저 역시 인문학을 공부하며 제 나름의 길을 만들어 왔습니다. 더 나은 길을 계속 탐색하고 있고요.
이 책은 인문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분들을 염두에 두고 썼습니다. 저만의 깨달음과 방법일 수 있겠지만 인문학의 특징과 쓸모, 공부법 등도 담았습니다. 이 책은 제가 그린 인문학 지도로 여러분도 여러분만의 인문학 지도를 그려나가기를 응원하겠습니다.
인문학은 무엇일까?
인문학이란 말은 고대 로마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음악, 어학, 수학, 과학 등 여러 학문을 포괄하는 상위개념으로 쓰였습니다. 영어권에서는 Liberal Arts, Humanities로 하는데, Liberal Arts가 고대 로마의 교양교육(Liberal Education)에서 파생된 사실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동양의 人文學(인문학)도 ‘사람과 문화를 다루는 학문’인데 여기서 힘을 빼면 ‘사람에 관한 공부’라고 풀이할 수 있으므로 음악, 미술 등 사람과 관련된 주제들이 인문학에 포함됩니다.
학문은 물리, 화학, 생물같이 물질현상을 연구하는 자연과학, 인간의 정신현상을 연구하는 정신과학으로 나눕니다. 정신과학은 관찰과 실험을 수용하는 사회과학, 지적통찰과 체험과 경험을 통해 대상을 파악하는 등의 전통적인 연구방법을 고수하는 인문학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인문학의 범주를 ‘문사철’로 좁힐 수 있는데 하지만 이것도 학계에서 완벽하게 합의한 것은 아닙니다.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할까
시력이 나쁜데도 안경을 쓰지 않았던 사람이 처음 안경을 쓰면 세상이 선명해져 감동할 겁니다. 이런 안경처럼 인문학은 우리에게 기존과 다른 세상을 선사합니다.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건 어쩌면 관점을 공부한다는 말과 같은 게 아닐까요.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문학자들은 저마다 개성 있으면서도 일리 있는 관점을 확립한 사람들이지요. 그들은 안경을 쓰듯 자신만의 관점으로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았고 결과물인 사상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그 사상을 통해 그들의 관점을 익히게 됩니다. 그 관점을 자신의 관점으로 삼기도 하고 재해석하여 새로운 관점을 구축하기도 합니다.
관점은 사소한 것 같지만 무한한 힘을 품고 있습니다. 새로운 관점은 새로운 면을 인식하게 이끄니까요. 지나쳤던 문제점을 보게 하고 이를 풀어낼 실마리도 눈에 들어오게 합니다. 그래서 관점의 힘을 다른 말로 통찰력이라고 합니다.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논리력을 키워주고, 판단력과 건강한 꿈을 키우게 해 줍니다.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고 자존감을 키워줍니다.
인문학을 진지하게 공부한 사람은 인문학적 가치관이 몸에 뱁니다. 인문학적 가치가 비교의 첫째 기준이 됩니다. 외모나 재산 같은 외적인 기준이 나의 행불행을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인문학적 가치관이 비교기준이 됩니다. 남이 나보다 감정을 잘 다스린다고 해서, 나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산다고 해서 질투하지 않고 닮으려 애쓸 따름이지요.
타인의 능력과 지위가 부러울 수 있지만 열등감과 불행으로 느끼지 않습니다. 시샘하지 않고 넓은 마음으로 축하해 줄 수 있는 자존감이 있습니다. 남과 비교해 불행을 느끼고 불행한 마음을 없애려 경쟁하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의 이유를 제거하면 금세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보이기에 더 불행해지고 더 노력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집니다. 이제는 비교의 기준을 전복시켜 자존감을 키우는 게 어떨까요.
마음 가는 대로 읽어라
공부는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요?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있느냐, 공부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시작이 달라질 수 있을 겁니다. 특정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분은 해당분야의 책부터 읽어 가면 어떨까요. 분명 흥미가 생기고 집중도 잘 될 겁니다. 사실 인문학은 책내용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질문을 던지고 자신을 성찰하고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으로 나아가는데 문제의식이 없다면 이과정이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적호기심에 책을 뒤적이는 분들이라면 관심 가는 책부터 시작해도 좋습니다. 예를 들어 전에 장자에 관해 들은 일이 있는데 내용이 인상 깊었다면 장자와 관련된 책을 읽는 거지요. 그런데 장자는 노자의 영향을 받았으니 장자를 제대로 알려면 노자에 관해 알아야 하고 배경이 되는 전국시대의 역사도 알아야 할 겁니다. 중국 고대철학에 대해서도 이해해야 합니다.
고전원전을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버리셔도 됩니다. 흥미가 생길 때 읽어도 늦지 않으니까요. 독서에 정해진 순서는 없습니다. 순서 없음이야말로 인문학 공부의 순서이지요.
저자와 비슷한 Tip을 드리자면 인문학은 범위가 방대하기에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까 막막합니다만 순서가 없어요. 먼저 관심 있는 책 한 권만 집어듭니다. 동양고전을 예로 들면 원전보다 쉽게 풀이한 해설서부터 시작하고, 어려운 구절은 건너뛰고, 재미있는 책은 두세 번 읽습니다. 읽은 내용의 실천이 중요한데 고전에서 강조하는 것이 여럿이라도 한 가지만 해도 됩니다. 모든 것을 이행하려는 강박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두꺼운 고전의 500페이지 에서 1페이지만 따라 해도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