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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읽고 쓰기

966. 나는 잘 살기 위해 인문학을 공부한다(2)

신도현著, 행성B刊

by 물가에 앉는 마음

지눌: 상처와 마주 앉기

지눌은 마음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부처와 중생의 차이는 한 끗입니다. 마음을 깨달으면 부처요, 마음이 미혹되면 중생이지요. 불교에서 부처는 타고난 절대자가 아닙니다. 뭇 생명은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의 씨앗, 즉 불성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다만 때가 잔뜩 낀 거울로는 본래의 모습을 바라볼 수 없듯이, 마음이 흐려져 불성이 제대로 드러나지 못할 뿐이지요. 이런 상태를 모르거나 알지만 때를 벗겨 내려 노력하지 않고 방치하는 존재가 중생입니다. 반면 깨닫고 수행하면 부처가 됩니다.

미혹한 중생은 끝없는 번뇌에 괴롭습니다. 나를 갉아먹는 욕심이 들끓습니다. 욕심은 바닷물 같아서 마실수록 갈증만 일으킬 뿐입니다. 결국에는 자멸에 이르게 되지요. 반면 부처는 마음의 불성을 깨달음으로써 끝없는 진리의 힘을 일으킵니다. 진리의 힘은 신통력이나 초능력 같은 것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고 실현하는 통찰력과 추진력이지요. 본인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에게 진리를 전달하고 세상에 진리를 구현할 수 없습니다. 진리의 전달자가 되려면 본인이 진리의 실현자가 되어야 합니다. 차별 없는 사회를 바란다면 나부터 차별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공정한 사회를 원한다면 내 속의 불공정함을 먼저 버려야 합니다.

나의 마음속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죠. 그래서 마음을 떠나서는 부처가 될 수 없다는 겁니다.


정약용: 괴로움 속에 즐거움도 있다.

괴로움에서 즐거움이 생겨난다. 괴로움은 즐거움의 뿌리다. 즐거움에서 괴로움이 생겨난다. 즐거움은 괴로움의 씨앗이다. 괴로움과 즐거움이 서로를 낳는 것은 음과 양, 동과 정이 서로가 서로의 근원이 되는 것과 같다. 통달한 사람은 그런 이치를 알아, 괴로움과 즐거움이 서로 의존하고 있음을 살피고,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는 운수를 헤아려 상황에 대응하는 나의 마음가짐을 항상 보통 사람의 마음과는 반대가 되게끔 한다.


잘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노자: 규정하는 순간 삶이 지루해진다

‘道可道非常道(도가도비상도) 도를 도라고 말하면 늘 그런 도가 아니다.’ 노자의 첫 문장인데 매우 심오해 보입니다. 도가 A라고 말하는 순간 도는 A에 갇힙니다. A가 아닌 것은 도가 아니게 됩니다. 그런데 도는 이렇게 한정할 수 없는 것이지요. 도가 없는 곳이 없으며 도 아닌 것이 없으니까요

‘名可名非常名(명가명비상명) 이름을 지어 부르면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노자의 다음문장인데 노자 철학의 핵심입니다. 다른 종교나 사상에서는 절대자를 제외하고, 인간을 포함한 자연만물에 대해 규정하는 것을 넘어 평가하고 강제합니다. 절대자의 명령으로 규칙과 금기를 따르라고 하지요. 하지만 노자는 도가 규정될 수 없고 규정해서도 안 되듯이 자연 만물 역시 그러하다고 역설합니다. ‘이름’은 만물을 가리키며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규정한다는 뜻입니다.

‘이름’은 분리하고 규정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여성’이라 명명되고 호칭되는 순간부터 타인도 나를 ‘여성’으로 인식하게 됩니다.‘무엇’과 ‘무엇 다움’은 쌍둥이입니다. ‘여성’으로 불리고 인식되는 순간부터 ‘여성다움’이 부여되니까요. 남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성다움’의 규정은 나를 질식시킵니다. 자신의 특성 중 여성답지 못한 것을 미워하게 됩니다.

젠더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이, 국적 인종도 그렇습니다. 그것들을 벗어던져야 내가 나답게 네가 너답게 주체적인존재로서 자신의 삶을 향유할 수 있을 테니까요.


‘세상보다 자신을 사랑한다면 세상을 맡길 수 있다. 반면 자신을 바쳐 세상을 사랑하려 든다면, 어찌 세상을 맡길 수 있겠는가?’ 자신을 바쳐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이 자신에게 부여한 ‘이름’과 ‘이름다움’즉 규정과 규범을 충실히 따르는 사람을 말합니다. 충신과 열녀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겠지요. 세상의 규범에 종속된 사람에게는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자신이 역할에 충실하듯 타인도 그리해야 한다고 강제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세상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 사람에게 세상을 맡겨야 한다는 겁니다. 자신이 자유로운 것처럼 타인도 자유롭기를 바랄 테니까요. 기존의 규범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꿈꾸는 가치를 구현해 나갈 겁니다.


베이컨: 누구나 편견에 갇혀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말한 베이컨은 종족, 동굴, 지장, 극장 네 가지 우상을 혁파하라고 주장했습니다.

첫 번째 ‘종족의 우상’은 인간 종의 본질적 성향에서 비롯된 우상입니다. 인간은 인간중심적으로 인간의 기준에서 세상을 이해합니다. 동물의 행동도 인간 행위를 기반으로 분석하고 외계인도 인간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인간중심적 사고는 자연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데 걸림돌이 됩니다.

두 번째 ‘동굴의 우상’은 개인 각자가 갖고 있는 편견을 말합니다. 살아온 환경, 교육내용에 따라 다양한 편견을 갖게 됩니다. 쇼펜하우어는 유년시절 어머니와 관계가 나빠 평생 여성을 혐오했죠. 특정 경험 때문에 편견을 고수하는 사람은 평생 동굴에서 살아 동굴 내부가 세계의 전부인양 착각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세 번째 ‘시장의 우상’은 언어가 불러일으키는 오해나 편견을 말합니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사유하지만 언어에 의해 사유가 결정되기도 합니다. ‘고조선’은 ‘조선’과 구별하려 후세에서 ‘古(고)’자를 붙였을 뿐이며 원래 국호는 ‘조선’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실제 국호가 ‘고조선’이라고 착각합니다.

네 번째 ‘극장의 우상’은 권위, 전통, 관습이 만들어낸 편견을 말합니다. 권위자의 말을 맹신하거나 전통과 관습을 의심 없이 믿고 따르는 것에서 생기는 그릇된 선입관입니다. 베이컨은 권위와 전통을 극장에서 공연하는 각본에 비유했습니다. 각본이 그렇듯 결국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지요

베이컨은 이 우상들을 깨부수고 과학적인 사고를 갖추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기존의 삼단논법의 한계를 지적하고 귀납법을 제시했습니다. 귀납법은 관찰과 실험으로 정보를 얻고, 정보를 사유하여 지식으로 체계화하는 연구방법을 말합니다.


석가모니: 충만해지고 싶다면 버려라

석가모니가 세 가지를 묻습니다 ‘세계가 무상한가?’ ‘무상한 것은 만족스러운가?’ ‘무상하고 불만족스러운 것을 나라고 할 수 있는가?’ 셋은 각각 無常(무상), 苦(고), 無我(무아)에 대응하며 석가모니 세계관의 핵심입니다.

無常의 정확한 뜻은 ‘고정된 것이 없음’입니다. 세상에 고정된 것은 없지요. 늙지 않는 목숨은 없고 변화하지 않는 것도 없습니다. 영원불변한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죠.苦는 괴로움보다는 불만족에 가깝습니다. 석가모니는 인간의 느낌을 크게 즐거움, 괴로움,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닌 것으로 분류합니다. 이 셋은 영원하지 않고 무상합니다. 시험에 붙었다고 즐거움이 계속되지 않고 언젠가는 식습니다. 무상한 것은 불만족을 일으킵니다. 사람 욕심은 끝이 없어 무언가를 소유하고 성취하고 싶어 합니다. 언젠가 죽게 되는데도 말입니다. 아무리 큰 권력과 재산, 명예도 무상하기에 불만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괴로움이나 즐거움이나 언젠가는 소멸되니 온전한 즐거움이 되지 못합니다.

無我는 ‘독립된 실체라고 이를만한 나가 존재하지 않음’을 뜻합니다. 내 것이라고 주장하려면 내가 주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내 마음대로 작동할 수 없는 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팔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이지만 늙거나 아프고 싶지 않아도 늙고 병듭니다. 마음도 비슷해 시험공부에 집중해야 하지만 마음은 놀고 싶어 집니다. 이렇듯 나는 내 몸과 마음도 온전히 주재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보면 ‘진정한 나’ 또는 ‘내 것’이라고 내세울만한 것이 과연 있을까요? 석가모니는 없다고 답합니다. 이것이 無我입니다.

내 몸은 나 아닌, 오랜 시간 마셔온 공기와 수많은 음식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잠시라도 산소나 음식을 먹지 못하면 죽고 맙니다.


석가모니는 ‘그대의 것이 아닌 것을 내려놓아야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진정한 행복과 자유 상태인 ‘해탈’에 이르는 것을 안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상하고 불만족하고 나의 것이 아닌 것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것에서부터 진정한 행복이 시작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닐까요. 강원도 낙산사 암자 홍련암에 이런 시가 적혀 있습니다.

나무는 꽃을 버려 열매를 맺고

물은 강을 버려서 바다를 만나고

새는 둥지를 버려서 하늘을 날고

사람은 욕심을 버려서 자유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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