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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9. 나는 잘 살기 위해 인문학을 공부한다(3)

신도현著, 행성B刊

by 물가에 앉는 마음

세계는 무엇일까

맹자: 진정 변화를 원한다면 여러 전략을 구사하라

맹자가 제나라 선왕에게 물었다. ‘왕의 신하 가운데 자기 가족을 친구에게 부탁하고서 타국으로 출장 간 사람이 있습니다. 돌아와 보니 식구들이 추위에 떨며 굶주리고 있었다면 그 친구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왕이 말했다.’ 절교해야 합니다.‘ 맹자가 또 물었다. ’ 관리가 부하들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그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왕이 말했다.’ 파면해야 합니다.‘ 맹자가 이어 물었다. 나라가 잘 다스려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자 왕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딴말을 했다.


맹자의 질문은 정중하면서도 늘 정곡을 찌릅니다. 이 문답에서 주목할 것은 무언가를 ‘위임’ 한 경우란 겁니다. 친구에게 가족을, 관리에게 부하를, 임금에게 나라를 위임한 경우지요. 17세기까지 유럽은 왕권신수설에서 왕권의 당위성을 찾았습니다. 왕의 권력은 신이 부여한 것이니 절대적이라는 논리입니다. 그러다 왕권은 인민이 권리를 위임한 것일 뿐이라는 사회계약론이 등장했고 이사상이 프랑스혁명으로 이어지며 민주주의 사회가 열립니다. 그런데 맹자는 기원전 4세기에 사회계약론 비슷한 주장을 했습니다.

사회계약론에서는 권력을 왕에게 위임했지만 왕이 잘못했다 해도 왕의 권력은 파기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맹자는 권력을 백성을 위해 쓰지 않는다면 끌어내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러셀: 교과서는 누구의 주장인가

보수, 진보 정치성향에 따라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도 다릅니다. 대체로 보수는 교권을, 진보는 학생인권을 중요시합니다. 러셀의 표현을 빌리면 보수는 노예의 악덕을, 진보는 귀족의 악덕을 심어줍니다. ‘노예의 악덕’은 노예가 내면화하기 쉬운 그릇된 품성을 말하는데 복종, 굴복, 비굴, 무소신 등입니다. 반대로 ‘귀족의 악덕’은 귀족이 흔히 갖게 되는 잘못된 품성인 방종, 고집, 무절제, 무반성 등이지요.

그런데 보수는 노예의 악덕을, 진보는 귀족의 악덕을 심어준다는 말을 거꾸로 보면, 보수는 귀족의 악덕을, 진보는 노예의 악덕을 제지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각각 장단점을 지닌 셈인데 둘을 합치거나 보수와 진보를 해체한다면 어느 정도 의미 있는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교육할 때 교사와 학생을 구분해 수직적 관계를 고수하면 학생들은 노예가 되어 교사는 말하고 학생은 듣게만 됩니다. 교사가 주입하려는 것을 학생은 외우고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어려서부터 이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성인이 되어도 이 상태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말 잘 듣는 회사원, 집단논리에 충실한 구성원이 되기 십상입니다.

반면 학생의 자유와, 교사의 수평적 관계를 지나치게 중시하면 학생들은 귀족의 악덕을 품게 될 수 있습니다. 학생이 수업을 듣지 않는다면 교육 자체가 성립하지 못합니다. 교사는 가르치고 학생은 배우는 것이 기본 순서입니다. 이것이 무너져 학생과 교사가 논쟁만 한다면 교육을 통한성장과 변화의 가능성 자체가 사라질 테니까요.


교육문제의 본질은 ‘어떻게 가르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가르치느냐’일 겁니다. 학교교육은 국가가 관장하고 교사는 스승이기에 앞서 국가에 고용된 사람입니다. 자기 소신보다는 국가가 바라는 신념과 가치관을 교육하게 됩니다.


알랭 바디우: 헌신할 때 인생의 주인이 된다

대부분은 주인이 되고 싶어 합니다. 집주인, 차주인, 건물주, 사장이 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집, 차, 권력을 갖고 싶은 이유는 행복해지기 위해서지만 그것들이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행복의 기준이 사람마다 환경마다 다르지요. 흔히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그들 나름대로 불행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의 주인이 되어도 행복하지 않다면 그것은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해야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요? 이 것이 바로 철학에서의 ‘주체’의 문제입니다.

바디우가 말하는 주체는 무언가에 뚜렷하게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흔히 소신을 가진 사람이지요 주체가 되는 과정은 정치뿐 아니라 사랑, 예술 등 모든 곳에서 일어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자유를 원한다면 그리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 싶다면 먼저 헌신하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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