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계의 에르메스
강남 청담동에 커피계의 에르메스라 불리는 바샤커피 오프라인 매장이 개장되었을 때 신문기사를 봤었다. ‘1 pot(2.5잔) 가격이 48만 원’, 미쳤다. 하지만 기사 제목은 이목을 끄는 낚시질인 경우가 많다. 고급스러운 실내인테리어와 금빛주전자로 서빙되는 커피로 200여 종의 아라비카 커피 평균가격은 16000원이란다. 고가이기는 하지만 기회 되면 마셔보고 싶었다.
싱가포르 여행을 다녀온 지인이 바샤커피(Bacha Coffee) 드립백을 선물했다. 싱가포르 여행객 필수선물이란다. 포장부터 고급스럽고 호화로워 가격이 있어 보인다. 커피품종은 표기되어 있지 않고 ‘캐러멜로 모닝(Caramelo Morning)’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니 아마도 블랜딩 커피로 추정된다.
박스 겉면 1910년이란 표기를 보면 100년 넘은 전통을 자랑하는 커피브랜드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마라케시 출신인 타하 부크딥(Taha Bouqdib)이 2019년 싱가포르에서 탄생시킨 신생브랜드다. 그는 비즈니스 기술이 비범한 인물인 듯 이미 고급차 브랜드인 ‘TWG Tea’를 런칭한 수완가다.
자료를 찾아보니 ‘1910’이란 나름 의미 있는 숫자다. 브랜드 스토리이자 제품의 컨셉이기도 하다. “1910년 모로코 마라케시의 다르 엘 바샤 궁전 안 커피 룸에서 바샤커피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다양한 문화가 모여 커피를 마시는 사교의 장이었던 그 명맥을 바샤커피가 이어받았습니다. 모로코 헤리티지 커피브랜드인 바샤커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35개국에서 수확한 200여 종의 100% 아라비카 원두를 제공하며 커피 한 잔으로 세계를 여행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 롯데백화점 바샤커피 브랜드스토리 중에서 -
커피 박스와 종이 백은 럭셔리하게 금빛으로 도배되어 있다. 드립백 12개가 들어있고 국내구입하면 1개에 5000원 정도로 비싼 편이다. 싱가포르 가격은 30$정도니 3500원 정도다. 비싸기는 하지만 ‘에르메스’라는 호칭을 생각하면 헐한 가격이며, 매장 커피가격도 납득할만한 가격이다. 물론 스타벅스 커피가격의 2배 정도니 싸지는 않지만 에르메스 핸드백이나 에르메스 접시같이 접근하기 곤란한 수준은 아니다.
아내와 그릇아웃렛에 구경 갔다가 가격표를 봤다. 직경 30Cm도 되지 않는 중간 접시에 붙은 가격이 159만 원이다. 4~6인용 접시세트 가격이겠지 했으나 2개 1세트 가격이란다. 아웃렛이 아니면 접시 1개 가격이 100만 원을 넘었을 것 같다. 문화적 충격을 줬던 접시 상표가 에르메스였다. 에르메스 식기로 한 끼 식사를 차린다면 식기가격만 천만 원이 넘을 텐데 커피 값 16000원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다.
박스를 개봉하니 달콤한 캐러멜향이 풍성하다. 생두를 다크로스팅 하면 캐러멜 맛이 진해 지므로 로스팅포인트가 높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너무 강해 커피 고유의 향은 아닐 것이란 느낌이다. 매우 오래전 ‘헤이즐넛 커피’를 처음 대했을 때 느낌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천연의 맛과 향이 아닌 MSG가 가미된 인공적인 맛. 하지만 아무려면 어때 커피 맛만 좋으면 되지.
커피강도는 별 5개로 표기하는데 ‘캐러멜로 모닝’은 별이 2개니 중간보다 약한 강도 정도 된다. Direction에 따라 95˚C물을 180ml 부었다. 95˚C는 조금 높은 온도로 티백의 모든 커피 향과 맛을 추출할 수 있는 온도다. 잡미까지 따라올 가능성이 있지만 유명회사의 Direction이니 따라야 한다.
드디어 한 모금, 기대가 너무 커서인지 실망했다. 신선하지 않고 평범했다. 드립백의 한계다. 드립백 커피 수준으로 치면 훌륭한지 몰라도 아침마다 내리는 커피 맛과 비교된다. 물론 드립백이므로 원두를 바로 갈아 내리는 커피에 비해 신선할리는 없다. 높은 온도로 커피를 내려서인지 묵직했고 쓴맛이 따라왔지만 잡미가 없는 것으로 봐서는 좋은 원두를 사용한 것은 맞는 것 같다.
음식의 맛과 향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나주 홍어를 먹지 못했으나 나주에서 몇 년을 살았기에 가끔 생각나는 맛이다. 하지만 두리안은 아직도 먹지 못한다. 홈 로스팅과 홈 브루잉은 내 주관에 따라 생두를 고르고, 입맛에 맞게 로스팅한다. 입맛에 맞춰 분쇄도, 물 온도, 내리는 시간을 설정해 놓았다. 바샤커피 ‘Caramelo Morning’은 내 주관적인 입맛에는 맞지 않는 듯하다.
첫 번째 내린 커피에 실망해 Direction을 따르지 않고 직관과 경험을 따르기로 했다. 커피 물 온도를 조금 내려 85˚C로 하고, 드립백의 커피 중량이 12 gram정도 되니 물은 120ml로 물 양을 줄였다.(실제 내린 양은 100~ 110ml 정도 된다.) 물 온도를 낮췄으므로 첫 번째 내린 커피보다는 훨씬 부드러운 맛이다. 하지만 캐러멜 향은 여전해 조금 느끼하기까지 하다.
손녀를 봐주느라 큰 아이 집에 여러 종류의 원두와 커피그라인더와 드리퍼 등을 갖다 놓고 작은 카페를 꾸며 놓았다. 큰 아이는 커피를 그리 즐기지 않았으나 커피 내리는 방법을 가르쳐 줘서 휴일이면 가끔 내려 마신다고 한다.
큰 아이 집에 바샤커피를 두고 오면서 메모를 남겼다. ‘커피계의 에르메스라는 바샤커피를 맛보거라. 드립백 하나에 5000원이니 가격은 있는 편이고, 이 커피는 아니겠지만 off line매장에서는 1 pot(2.5잔)에 48만 원 하는 커피도 있단다. 유명한 커피니 한 번은 마셔봐야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해도 소통이 될 것 같다. 그런데 이 커피가 에르메스면 아빠 커피는 뭐라 해야 하는 거냐?’
답이 왔다. ‘커피가 느끼해, 아빠 커피가 맛있어.’
Fragrance(분쇄 커피의 향기)는 캐러멜 향이 진동한다. 하지만 인공적인 느낌이 든다.
Aroma(물을 부은 후 향기) Fragrance가 너무 강해서인지 Aroma는 약했다.
Flavor(입으로 느끼는 풍미)는 뛰어나지 않았다. 이것도 강한 Fragrance로 인해 영향을 받은듯하다.
Acidity(입과 코로 느끼는 산미) 아마도 중배전 이상으로 로스팅을 했는지 산미는 적다.
Sweetness(입으로 느끼는 단맛)은 매우 강했다.
Body(Mouth Feel, 커피의 무게감, 거칠고 부드러운 정도) 밀크초콜릿같이 부드러운 바디감이나 가볍지는 않다.
Aftertaste(입안에 남는 여운) 여운은 깊지 않은 편이며 캐러멜 잔향이 남는다.
바샤커피는 프랑스식 ‘샹티이 크림’을 섞어 마신다고 한다. 샹티이 크림은 크림에 설탕, 바닐라 등을 넣고 휘저은 것으로 라떼, 모카, 마끼야또 등을 좋아하지 않기에 상타이 크림을 섞어 마시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매장에서 ‘샹티이 크림’을 섞어 마신 후에야 정확한 평가가 가능하겠다.
전체적으로 ‘샹티이 크림’을 섞지 않은 캐러멜로 모닝 드립백은 호감 가는 맛은 아니었다. ‘커피계의 에르메스’라는 선입견으로 인해 한 단계 낮은 평가를 하게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기호품에 선호도는 극히 주관적이다. 혹자는 에르메스를 미치도록 좋아하지만 나는 무신사가방이 좋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