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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4. 제우스처럼 에게해를 달려

석양에 물든 황금빛 잔잔한 에게해를 미끄러지듯 달린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Paros에 얻은 에어비앤비는 뷰가 좋은 곳이지만 주차장이 열악하다. 구도시 대부분의 집들이 주차장은 없고 근처 이면도로에 주차한다. 골목은 비집고 운전하려면 아슬아슬하게 스치듯 다녀야 한다. 30년 무사고 아니 한국면허 아니면 비집고 들어가기 어려운 길들이 많다. 시트로앵 C3 Aircross 같이 등치 커다란 차(실제로는 한국에서 제일 작은 SUV 크기다)는 골목길 다니기 불리하다.

이동일이다. 트렁크를 차에 실어야 하기에 집 앞에 차를 대느라 아침부터 곡예운전을 했다. 여행 다니면 짐 싸고 푸는 일이 반이므로 짐을 줄여야 한다. 남자들 짐이야 기내반입 트렁크하나면 되지만 여자들 짐은 커다란 트렁크도 비좁은 듯하다. 화장품, 헤어드라이어, 옷과 신발도 용도에 맞게 다양하다.

오늘은 차를 반납하고 항구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점심 먹고 크레타로 향하는 2시 배를 타는 일정이다. 렌터카를 75퍼센트 油位(유위)에 인수해 섬을 일주했다. 디젤오일 8리터를 채웠는데 거의 90퍼센트 油位가 되었다. 프랑스 디젤자동차 연비가 좋기는 하다. 렌터카를 반납할 때 키를 넘겨주니 차량 검사도 하지 않고 반납받는다. 풀 커버리지 보험을 들었기 때문인듯하다.

짐은 항구 근처 호텔에서 운영하는 보관소에 맡기고 시내구경을 했다. 짐 한 개당 5유로의 보관료를 받으니 합리적인 가격이다. 파로스 항구도 역사가 오래되어 곳곳에 성벽흔적이 남아 있다. 복원은 미진한 편인데 역사적 가치상 뒤로 밀렸거나 그리스의 국가재정 문제일 수도 있다. 파로스항구 주변은 파로스 내에서 예쁜 곳 중 하나이기에 발품 팔아 걸어야 할 장소다. 항구 근처에 위치한 ‘Pagkaki Cafe', 브런치 요거트에 넣은 꿀이 특유의 알싸한 향과 맛을 낸다. 그리스는 올리브와 꿀이 유명해서 인지 꿀을 먹어보면 이것이 진짜 꿀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득한 요거트, 진한 꿀과 바삭한 호두가 잘 어울린다.

미코노스도 그렇고 파로스도 날씨가 좋았다. 그리스 날씨는 한마디로 환상적이다. 요거트로 인해 장수국가가 된 것이 아니라 습도가 낮고 온도변화가 적어 장수국가가 된 것이 아닌가 한다. 해가 뜨거워도 그늘밑에만 있으면 시원하며 밤낮 기온차도 적어 홑이불만 덥고 잠을 잤다. 습도가 낮으니 모기, 파리 등 해충도 적다.

파로스 항구 주변은 골목길이 예쁘고 아기자기하다. 대리석 흔한 동네로 보도블럭도 군데군데 대리석이며 식당 주방 상판, 욕실 계단도 대리석이다. 항구 주변은 상점과 전통 가옥들이 많은 곳으로 그릇, 옷, 가방, 기념품상점은 핸드메이드가 주류인듯하다. 사지 않을 것이라 가격은 보지 않았으나 만듦새가 독특하다. 점심은 간단히 먹기로 했다. 노점에서도 기로스를 팔지만 기로스전문식당 'Exesion'을 찾았다. 기로스 4.5유로, 팔라페 7.5유로인데 양도 많고 맛있다. 기로스는 얇은 빵 위에 야채와 고기를 올리고 돌돌 말은 것이다. 더블버거보다 양이 많아 여인네들은 먹기 어려울 정도다. 배가 30분 지연된다기에 여유 있는 식사를 했다.


크레타로 가는 배는 오천 톤급 페리호다. 크루즈선도 정박해 있는 항구지만 대합실은 시골도시 시외버스 대합실보다 못하다. 격납고 같은 건물에 좌우측에 붙박이 의자만 설치되어 있다. 도착, 출발 전광판도 없이 육성으로 안내하고 검문도 없다.

차량도 싣고 사람도 탄다. 신분확인이 없으니 많은 인원이 순식간에 올라탄다. 승무원들은 노약자의 짐을 대신 옮겨주니 서비스는 좋은 편이다. 짐은 보관창고에 보관해야 하나 태그를 붙이는 것도 아니고 Rack위에 무작위로 올려놓는 것이라 분실위험성도 있을듯하다. 객실은 좌석제로 운영하며 매점도 있고 규모가 있다. 제우스가 페니키아공주 에우로페를 꾀여 크레타로 들어온 해로를 따라 파로스에서 산토리니를 지나 크레타로 들어왔다. SEAJET이란 페리는 석양에 물든 황금빛 잔잔한 에게해를 미끄러지듯 달린다. 258Km를 4시간에 달려왔으나 롤링과 피칭이 전혀 없으며 에게해는 흰색파도 없이 잔잔하다. 황금소로 변해 에우로페를 등에 태운 제우스도 이 속도로 달렸을까?

14시 40분 출발, 맹렬한 기세로 달려 산토리니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적당히 탔다. 커다란 제트페리인데도 시골 간이역 들르듯 파로스, 산토리니에 잠시 기착했다 떠나는 것을 보니 신기하다. 동양인에게는 산토리니가 인기인 듯 노란 사람들은 거의 내렸고 시끄러운 중국사람들 몇 명이 남았다. 모든 중국사람들이 시끄럽지는 않을 것이므로 중국사람이 시끄럽다는 통설은 아마도 억양 때문인 듯하다 Iraklion 항구에 내려 숙소까지 4시간 산길 해안도로를 달렸다. 고속도로라고 하나 한국의 국도 수준이다. 요금 받는 톨게이트도 없고. 신호등도 없지만 군데군데 로터리가 있다. 직선화되어있지 않아 구불구불한 구간도 많은 이 도로가 크레타 최고의 도로란 것을 크레타를 떠나기 직전에서야 알았다.

서쪽 끝도시 Kissamos에서도 한참 들어간 숙소 근처, 산속과 올리브농장을 지나 음식점이 없을 것 같은 동네에 도착했다. 11시가 되어가는데도 한창 저녁시간이다. 'Erofili'라는 음식점으로 치킨과 가지무사카가 부드럽고 고소하다. 시장이 반찬이라 하지만 근방에서는 유명한 식당이며 배고프지 않아도 맛난 음식들이다. 늦은 시간임에도 가족들이 모임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잠잘 시간인데 늦은 저녁을 즐기는 가족들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고 아이에게는 무관심한 듯하다. 어른들은 식탁에서 담배를 피고 아이는 고단한지 의자에 길게 누워 잠을 자고 있다.


끝도 없이 펼쳐진 올리브 농장 사이를 지나 도착한 숙소는 음식점에서 사용하는 피자화덕과 페치카가 있는 별장이다. 집안에 피자화덕이 있는 것은 처음 봤다. 사방은 컴컴하고 별들은 총총하다.

그리스 사람들 운전습관인지 아니면 관광객들의 급한 마음인지 모르겠으나 뒤에 바짝 따라붙는 성가신 운전자들에게 몇 번 양보했다. 밤 운전으로 너무 피곤한 날이다. 씻자마자 골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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