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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4. 上濁下不淨?, 上淨下不濁?

베이비부머들은 특별히 혼탁한 시대에 살았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와 비슷한 논쟁이 아닐까 한다. 청렴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고위층이 ‘안 받기’를 솔선수범해야 하는가? 아니면 견물생심의 근원을 없애기 위하여 시민의식이 선진화되어‘안 주기’를 생활화해야 하는가? 물론 양자 모두 노력하여 ‘안 주고 안 받기’가 일상화되고 편법과 탈법이 없어진다면 간단한 일이나 ‘부정부패’ 뿌리와 역사는 너무 깊어 쉽사리 없어지거나 단시간에 척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는 의미의 ‘上濁下不淨’을 직역하면 ‘아랫물이 깨끗하지 못한 것은 윗물이 흐리기 때문이다.’이다. 어순을 바꿔 ‘上淨下不濁’으로 하면 ‘아랫물이 더러워지지 않으려면 윗물이 맑아야 한다.’ 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에 대한 결론은 모르겠으나 청렴에 관해서는 업어 치나 메치나 윗선의 청렴이 먼저라고 해석된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니 윗물에 따라 맑거나 흐리게 되는데, 사람 사는 세상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중국 고전인 사서오경은 아주 오래 전에 쓰인 책으로 오경은 聖王과 賢臣의 이야기로 후대는 성왕과 현신의 언행을 닮으라는 것이다. 사서에는 小人과 君子가 등장하여 소인이 되지 말고 군자같이 되라는 것이니 행실이 어질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며 ‘上濁下不淨’을 가르쳤다.

다른 동물과 달리 불완전한 상태로 태어나는 인간은 불완전한 대신 학습능력을 갖고 있어 선배들을 보고 배우고 발전시켜 새로움을 창조한다. 좋은 면만 배우고 발전시키면 얼마나 좋겠냐만 사치, 쾌락 이런 부정적인 것들은 배우지 않아도 잘한다. 중국도 그렇고 우리나라에서는 ‘上濁下不淨’에 대한 교육에 그치지 않고 음식의 가짓수, 주택의 칸수, 의복의 제식도 계층별 제한을 두어 과도한 사치를 제한했다.


베이비부머들은 특별히 혼탁한 시대에 살았다. 물론 옛날에도 혼탁은 있었고 청백리도 존재했지만 대한민국 근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특별히 혼탁한 시대에 살았다. 누구 잘못이랄 것도 없이 고도압축성장 시대를 살아가는 사회상이 그랬고 대한민국이 겪어야 하는 성장통 같은 것이었다. 선진국이 농업-산업-정보-지식사회를 경험하는데 200년이 소요된 반면 대한민국은 50년이 소요되었다. 한세대가 두 개의 사회나 문화를 겪기에도 벅찬데 대한민국 베이비부머들은 4개 사회를 겪었음에도 현재는 4차산업 혁명이란 괴물과 맞닥뜨려 있다.

선진국을 빠르게 따라가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했다. 반칙, 무질서, 탈법이 난무하고 정상의 비정상화가 일상화 되었다. 우리나라가 기술이 부족했던 시절, 발전소 내에는 외국인 기술자들이 상주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외국인 기술자들이 오면 매일 도난사고가 발생되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공기구가 무엇인지? 어떤 도면을 보고 문제점을 풀어 가는지? 정비 기준은 무엇인지? 아마도 그 시절에는 훔친 정보가 정상적으로 입수한 정보보다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이러한 현상은 인간성 상실. 도덕적 해이, 환경오염, 개인주의 팽배로 되돌아 왔다. 경제 성장으로 국민소득은 증가 했으나 국민들이 행복해 졌나? 사회는 인간존중을 중시하나? 삶의 질이 높아졌는가? 파괴된 환경과 인간성을 회복하는데 경제성장 보다 값비싼 희생을 치룰 수 있지만 짧은 기간 숨 가쁘게 달려 여기까지 왔다. 물론 나도 당연한 듯 편법도 저지르고, 외국 기술을 훔쳤고 비자금도 조성해봤다.


아주 오래전, 민간업체의 공사 하자를 처리해야 하는데 우리 회사밖에 처리할 회사가 없었다. 받을 금액을 산정하고 계약 시 깎아줄 금액30%를 더하고, 발주처에 대한 명절 선물비용 +α까지 감안 공사비를 산정했다. 계약 단계에서 딜을 하기 위해 내 카드를 던졌다. ‘우리 회사는 공기업이라 많이 깎아 주지 못한다. 공기업간 수의계약 관례인 94%선에서 계약하는 것이 좋겠다.’ 과도한 감액요구를 할까봐 30%를 올린 금액인데 발주처 기분이 좋았는지 아니면 말을 예쁘게 해서인지 우리가 제시한 금액으로 계약했다.

공사는 무사히 끝냈고 명절 즈음해 발주처 공사담당 초급간부에게 전화했다. ‘혹시 명절인데 필요한 것 없는지요? 우리도 공사 계정을 닫을 시기가 되었으니 확인 부탁드립니다.’

‘우리 회사는 그런 요구 안합니다.’

단호한 대답에 물어 본 내가 무안했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발주사 고위간부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 계시지요? 공사가 잘되어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명절이 되어...’

‘그렇지 않아도 명절도 가까워졌고, 내부 회계규정상 계정을 닫아야겠기에 담당차장에게 확인했더니 우리 회사는 그런 요구 안합니다. 라고 해서 아, 존경스러운 기업이구나. 오히려 말을 꺼낸 제 얼굴이 화끈해지고 무안해졌습니다.’

‘꽝’

전화기를 세차게 내려놓는 소리가 들려온 후 존경하는 기업에서는 다시 연락이 없었다. 통상적인 공사비의 1.5배나 주고도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는 정말 존경스러운 기업이었다.


CEO와의 불화로 자리를 옮기려 할 때 타 부서에 근무하는 간부 한명이 특별한 사유로 고충을 털어 놓았다. 일반적으로 처장이 자리를 옮기면 같이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마피아라고 하기도 하지만 손발 맞춰 일 해본 사람들이니 팀웍을 위해서는 바람직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나하고 같이 손발 맞춰 일하는 차장도 아니고 오랜 타향 생활을 끝내고 집근처로 가기 위해 고충처리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CEO가 지시한 사항을 처리하려면 업체와 유착을 하는 방법 밖에 없어 일종의 정치적 망명을 택한 것이다. 예전 그와 같이 근무했던 적이 있어 성품은 알고 있었으므로 ‘그래 처지가 비슷하니 같이 가자. 우선 발령 나는데 문제없도록 당신쪽 상황을 정리해라.’ 얼마 후 그는 같이 일하게 되었다.

새로운 업무를 시작하는 그는 근심이 없어졌기에 소신껏 일했다. 새로운 업무를 배우고 성과를 내기 위해 본인 돈을 써가며 직원들을 독려하고 업체관계자들 점심도 샀다. 열심히 일하는 그에게 원칙만 제시 했다. “K팀장, 우리는 감사원 감사, 국정감사 등 모든 감사를 받는다.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감사를 받지만 다치지 않는 방법은 딱 하나 있다. 부정한 짓을 하지 않으면 절대로 중징계는 주지 못한다. 시말서나 경고는 받아도 된다. 그 정도는 일하면서 생기는 훈장이라 생각해라.”


원칙을 지키고 소신껏 일 하는 직원들은 보호받아야 마땅하다. 조직 책임자는 소신껏 일하는 직원들이 실수로 계약상대자에게 손해를 끼쳤어도 보험으로 막아주고 각종 감사 지적을 받아도 경고 이하가 되게 윤활유 역할도 해야 한다.

맑은 하늘처럼 푸르게 살려 해도 어려운 경우가 있었지만 세상이 좋아져 윗물이 맑아졌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후배들의 후배들을 위해서.


리더를 따르는 사람은 다른 어떤 것보다 리더가 보이는 본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리더가 우선순위를 정하면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리더가 바쁜 것을 가치 있게 여기면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 레잇 앤더슨 ‘목적이 이끄는 리더십’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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