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군자주이불비 소인비이부주)
제목에 ‘군자’라는 단어가 있으니 십중팔구 ‘논어’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눈치챘을 것이다. 참고로 논어는 약 500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군자’가 107번이나 언급되어 있다.
‘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 ‘군자는 여러 사람과 어울리면서도 무리를 짓지 아니하고, 소인은 무리를 짓지만 다른 사람과의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것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성숙한 사람은 자유, 평화, 정의 같은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기에 누구와도 연대할 수 있으나, 이익만 밝히는 사람은 학연, 지연, 혈연에 얽매어 끼리끼리 모이지만 화합하지 못하고 파당적이다.’로 표현할 수 있다. 이익만 밝히는 집단은 끼리끼리 모이지만 이익이 없어지면 목적이 사라지니 자연스럽게 소멸한다. 설령 추구할 이익이 남았더라도 남들보다 많이 취하려는 욕심으로 결국 반목과 질시로 인해 내부 분열되어 인간관계가 파탄 나게 된다, 웃으면서 헤어지는 경우가 없다는 이야기이며 주위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진급하면 지방 발령 내는 것이 본사 관행이었던 시절, 본사에 그대로 눌러앉았으니 관행을 깼다. 인사권을 갖고 있을 때 부하직원이 승격하면 승격자 본인을 위해 지방 근무는 아니더라도 부서를 옮겨주는 것이 바르다고 생각하고 조치했으니 본사 관행을 깬 것은 自意가 아니었다. 물론 지방으로 이사 가는 불편함과 새로운 조직에 적응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없다는 장점이 있었으나, 변화된 환경이 없으니 승격한 기분은 반감되었고 차장이란 타이틀이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무척 어색하고 거북하게 느껴졌으며 친하게 지내던 동료 사이도 서먹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기간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조직 분위기가 매우 자유로웠고 시간이 조금 지나 부장급 대우를 받는 주무 차장을 담당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내 발언 수위가 높았고 거침없었다. 또한, 당시 처장님은 박항서 감독 같은 ‘형님리더십’을 갖고 계신 분이라 소통이 잘되는 분이었다.
‘처장님, 우리도 사단급으로 私(사)조직을 만들고 운영해볼까요? 저쪽은 상당한데요.’
당시에는 처장 중심으로 모인 私조직 세력을 OOO 사단이라 불렀다. 처장이 바뀌면 사단 간부들이 점령군처럼 기존간부들 자리를 차지했다. 우리는 ‘보직에 적합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지?’가 선발 필수조건이었기에 학연, 지연으로 모이지도 않았고 私조직도 아니었으며 인원도 사단급이 아닌 소대급 정도 규모였다. 라이벌 처장 쪽은 학연, 지연으로 무장된 세력이 있었고 세를 보고 모여든 기회주의자들이 넘치니 수적으로 우리 쪽을 능가했다. 수가 많으니 당연히 승격자도 많이 배출했으며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모이는 선순환구조를 갖고 있었다.
‘나는 그런 짓 하지 않는다. 몰려다니는 것은 깡패들이나 하는 짓이다.’ 잘못된 건의로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으나 한편으로 처장님이 섭섭하고 답답하기까지 했다. 나는 두 분을 모두 모셔봤다. OOO 사단장으로부터 많은 업무를 배웠지만, 인간미가 떨어졌기에 존경하지는 않았다. 답답한 처장님이 인간적으로 좋았고 심지어 롤 모델이기도 했으나 라이벌처장님과의 세력다툼에서 자주 밀리는 것이 안타까워 드린 말씀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내가 잘 배웠음을 알았다. 답답한 처장님은 지연, 학연을 배제하고 실력 있고 의식 있는 직원들을 중용했다. 출발은 오합지졸처럼 보여도 업무에 임하는 자세와 직업관이 정립되면 효율이 높았다. ‘사단’이라는 울타리가 없으므로 들고 나는 것도 본인들 판단이 중요했다. 답답한 처장 주위에는 지연, 학연, 사무, 기계, 전기등 직종과 무관하게 자발적으로 모이고 흩어졌다. 하지만 이렇게 맺은 인연은 이익을 위해 모여든 군상들이 아니기에 오래갔다.
반면 무리를 지어 위세를 보였던 그룹들은 사단장 힘이 떨어지자 각자도생의 길을 가느라 응집력이 떨어졌고 얼마 가지 않아 반대세력에 의해 와해되었다. 피가 피를 부르듯 결성과 와해가 반복되었다. 득세한 세력의 힘이 세지면 반칙을 하게 되고 피해를 본 반대세력은 힘을 키워 상대방에게 흠집을 내게 된다. 심지어는 내부에서도 알력이 생기고 이익에 따라 배신을 일삼았기에 잘 나갔던 사단 사람은 같이 가면 안 되는 사람으로 비치는 볼썽사나운 일이 생기기도 했다. 무리 지어 다니지 않았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니 당사자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답답한 처장님께서 논어를 읽고 실천하려 하셨는지는 몰라도 시간이 흐르고 난 뒤 판단해보니 매우 현명한 판단을 하신듯하다. 답답한 처장님을 보고 배워 내 자신도 몰려다니는 것을 삼갔기에 기피 인물이 되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런 짓 하지 않는다. 몰려다니는 것은 깡패들이나 하는 짓이다.’가 ‘君子周而不比’와 같은 뜻이란 것을 안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존경 받으려면, 아니 존경이 부족한 시대이니 욕먹지 않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적어도 욕 먹지 않으려면 부끄러운 일을 하지 말아야 하고 이성과 멀어지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