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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4. 내가 볶은 커피는 과연 맛있을까?

결국 나만 맛있는 커피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돌이켜 생각해 보니 게으르고 오만했다. 근 10년 정도를 지인들이 로스팅하고 내려준 커피를 당연한 듯 마셨다. 게다가 예의에 어긋나게도 맛에 대한 평가도 했었다. 그렇다고 책을 보고 습득한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한 평가도 아니고 개인적인 호불호와 오감에 의지한 평가였으니 오만하기까지 했었다.

무모한 커피로스팅을 시작하면서부터 로스팅 정도에 따라 커피 맛과 향의 변화, 커피 내리는 방법에 따른 맛과 향의 변화 등 많은 시행착오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이전에도 집에서 내려먹는 커피에 대해서는 적정분쇄도와 커피 추출량에 대한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으며 몇몇 變數(변수)들을 常數化(상수화) 시킨 적이 있었다.


집에서 내리는 coffee brewing, 아마 모든 사람들이 비슷한 과정을 거쳤을 듯하다. brewing과 관련된 변수들은 원두의 분량과 분쇄도, 물의 온도, 물을 붓는 속도, 물을 얼마나 사용할 것인가? 커피 1인분을 기준으로 얼마나 추출할 것인가? 조금 추출해 희석할 것인가? 커피를 추출하는 시간을 기준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추출양을 기준으로 할 것인가? 드리퍼는 어떤 것을 사용할 것인가? 물론 언급하지 않은 變數들도 많을 것이다.

우리 집 brewing 變數들은 Ethiopia Yirgacheffe와 Kenya AA에 맞춰져 常數化 되어 있다. 원두 거래처와 주문하는 원두 품종이 수년간 같았기에 모든 변수들을 커피에 맞게 常數化 시켰다. 아마 부지런한 커피애호가는 원두 종류에 따라 분쇄도를 조정하고 물 온도와 양을 조절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게으른 편에 속한다. 변수들을 常數化 시켰다고 해도 같은 원두로 내리는 커피도 매번 맛이 다르다. 사람의 감정은 常數化시키지 못하는 변수다.


로스팅을 시작하며 각종 변수들을 기록하고 있다. 원두별 적정 로스팅 포인트를 찾아 일정한 맛과 향을 내려는 목적이며 로스팅 온도, 시간, 중량 등을 常數化시키는 과정이다. 하지만 로스팅을 하면 할수록, 공부하면 할수록 목적은 멀어지는 느낌이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용 중인 Roaster의 한계와 로스팅 기술이 미숙해 같은 생두로 매번 맛이 다른 원두를 생산하고 있다.

Roaster의 한계와 로스팅 기술 미숙 때문만은 아니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변수들이 무궁무진하다. 생두 이름에는 원산지, 생산지역, 농장이름, 품종, 가공방법 등이 표기된다 물론 일부만 표기되는 경우도 많다. 생두 이름이 같아도 판매하는 회사마다 가격과 맛과 향이 다르다. 이름이 같은 생두라도 크기가 다르면 가격, 맛, 향도 다르다. 특성을 파악하지 않고 가격이 헐하다고 구매하면 안 된다. 회사마다 고유의 품종을 취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같은 품종을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 가격차이가 있다면 구매자가 파악하지 못한 것이 있다는 것이기에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로스팅을 덜하면 산미가 높고 더하면 단맛과 쓴맛이 올라가는 정도로만 생각했으나 로스팅 정도에 따라 생성된 맛과 향이 소멸되고 없던 맛과 향이 생긴다. 한 가지 생두로도 수많은 맛과 향을 만들어낼 수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다른 맛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같은 맛을 만들어내는 것이 더 어렵다.

생성된 맛과 향이 소멸되고 존재하지 않던 맛과 향이 생기는 것은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 때문이다. 생두에 열을 가하면 1500가지에 달하는 아미노산과 당분이 반응하여 커피의 향과 맛을 만드는데 로스팅온도와 시간에 따라 변한다. 누가 세어봤는지 모르겠지만 1500개의 성분이 변해 오만가지 맛이 나온다는데 로스팅할 때마다 다른 맛이 나오는 이유라고 치부하기로 했다.


brewing 變數들을 常數化 시켰다고 했지만 로스팅과정을 미적분에 빗대어 이야기했듯 brewing과정에 미적분을 적용하면 常數化 시켰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 變數들이 常數化 된 것이 아니라 입맛이 길들여졌을 것이다.

원두에 따라 brewing 變數들을 조정해야 하지만 홈브루잉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라인더의 분쇄도, 물의 온도와 양, 추출하는 시간은 본인만의 고유한 常數가 있다. 표현만 점잖게 했을 뿐이지 원두의 종류에 따라 常數를 變數로 만들어 분쇄도를 조정하고 물 온도와 양, 추출시간을 조정하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roasting과 brewing이전 나름의 기준(常數)에 따라 원두를 평가하고 常數에 맞는 생두를 구입한다. 常數란 입맛에 따른 것이다. 산미가 있어야 하고, 바디감은 가볍고 부드러워야 하고, 향이 깊어야 한다. 입맛에 맞게 조금 덜 roasting 하고, 입맛에 맞게 거칠게 갈아 낮은 물온도로 brewing 한다. 결국 나만 맛있는 커피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 그리스 여행기에 담겨있는 관련된 커피이야기다. ---------

2024년 가을 네덜란드와 그리스여행을 다녀왔다. 물과 물온도, 그라인더와 드리퍼, 물주전자도 바뀌었다. 같은 것이라고는 로스팅한 원두뿐이며, 작은아이가 사용하는 하리오 드리퍼와 핸드밀, 종이필터만 가져갔다.

물 건너간 커피맛은 조금 달랐다. 분쇄도, 물온도, 드리퍼가 달라지니 커피맛이 확연히 달라졌다. 부드러운 밀크초콜릿 맛이 나야 하는 Guatemala Maracaturra와 일반초콜릿 맛이 나는 Ethiopia Abaya Geisha에서 다크초콜릿 맛이 난다. 온도계가 없어 물 온도를 대충 맞혔더니 물 온도가 높았나 보다.

작은아이 집에서 Ethiopia Abaya Geisha G1 Natural, Mild flavour의 맛을 봤었다. cupping note는 밀크초콜릿, 라즈베리, 복숭아지만 한국에서 마시던 맛과는 전혀 다른 맛이 나와 고개를 갸우뚱했었다.

핸드폰 계산기를 이용해 85~90˚C로 물온도를 맞췄다. 펄펄 끓는 물 400CC,에 상온수 100CC를 넣으면 85˚C가 된다. 물주전자도 없고, 주스컵을 서버로 사용해 눈금이 없었으므로 30초 뜸 들이고 2분 30초 동안 추출하는 식으로 맞췄다. 2분만 내려야 잡내가 따라오지 않으나 하리오 드리퍼는 한국에서 사용하던 케멕스드리퍼보다 커피 내려지는 속도가 빨라 2분 30초 동안 추출했다. 공정을 표준화하자 한국에서 마시던 커피맛에 근접했다.



주의 및 경고 1: 커피에 대해 일자무식인 생초보가 좌충우돌하며 로스팅하는 이야기이므로 따라 하면 무조건 실패한다.

주의 및 경고 2: 로스팅은 생각보다 번거롭고 시간이 소요된다. 취미를 붙이지 못할 때는 로스팅된 원두를 구입하는 것이 맛있고 저렴하다.

주의 및 경고 3: 앞으로 계속되는 커피이야기는 전문적이지 못하므로 커피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전문서적 구입 또는 전문 학원을 다니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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