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맹무상(群盲撫象): 장님 코끼리 만지기
어릴 적 읽었던 동화 ‘장님 코끼리 만지기’는 재미있었다. 코끼리는 뱀이 되기도 했고 기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 들어서도 일부만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니 마치 이솝우화처럼 교훈적인 동화였다.
이것을 유식하게 이야기하면 ‘일반화의 오류’라고 한다. 대부분은 부족한 지식과 경험에서 발생되며, 흔히 드는 예시가 ‘군맹무상(群盲撫象): 장님 코끼리 만지기’이다. 코를 만진 이는 ‘뱀 같다.’ 하고, 다리를 만진 이는 ‘기둥 같다.’한다. 코끼리의 일부만 더듬어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결론 내리니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일상생활에서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에도 ‘일반화의 오류’는 내재되어 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라고 곧잘 이야기하는데 이번 네덜란드와 그리스 여행도 그렇다. 한 달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얕은 지식과 경험으로 많은 판단을 내렸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이며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비가 없고 날씨 좋은 나라
그리스 이야기가 아니다. 오 년 전 암스테르담만 봤을 때도, 이번에는 10일 이상 네덜란드를 돌아다녔지만 비를 만나지 못했다. 작은 아이는 거의 매일 흐리고 비가 자주 온다며 가혹한 환경의 네덜란드라고 하지만 내게는 매일 맑은 나라가 네덜란드였다.
네덜란드 도착하기 전날 비가 왔었고 머무는 동안 쾌청했다. 그리스로 떠난 다음날부터 네덜란드에는 폭풍을 동반한 비가 쏟아졌단다. 크레타에서 네덜란드로 돌아오는 날, 네덜란드는 오전까지 비가 왔고 우리는 오후 3시경에 도착했다. 또다시 네덜란드에 머무는 동안 맑은 날이 지속되었으며 토요일 한국으로 떠나자 네덜란드에는 일요일부터 비가 왔단다.
네덜란드 날씨에 대해 불만이 많은 막내를 위해 날씨 요정을 네덜란드에 두고 올 것을... 깜박했다.
물의 도시가 베네치아라면 물의 나라는 네덜란드
네덜란드에서 제일 부러운 것은 물이 많은 것이었다. 작은 아이 집도 수로 속에 아파트가 있어 집에서 낚싯대를 드리워도 될 정도다. 물론 治水(치수)를 못하면 물은 재앙이다. 몇 번의 재앙을 겪은 네덜란드는 治水에 성공했으며 수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도심을 떠나 외곽으로 가면 네모반듯한 초지에 소, 양이 뛰어놀고 있으며 초지 경계는 좁은 수로다. 1년 내내 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암스테르담 뿐 아니라 위트레흐트에도 유람선이 다니고 작은 아이가 사는 동네에도 유람선과 개인 보트가 오간다. 로테르담에서는 수로 일부구간에서 인공파도를 일으켜 서핑을 즐기고 있었다.
수질도 좋아 냄새도 없고 수로에는 유람선뿐 아니라 쓰레기 치우는 배가 여럿 보인다. 쇠갈퀴를 배 앞에 달고 유람하듯 다니면 쓰레기가 갈퀴에 걸린다. 수로를 유람하고 다니는 행복하고도 좋은 직업이다. 수질이 좋으니 백조와 물닭, 오리들 천국이다.
물의 나라는 태국이라는데 아직 태국에 가지 못했으므로 이 또한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이다.
교통문화 하나만 후진적인 그리스
제목부터가 코끼리 만지기이니 이 내용도 일부의 모습이다. 그리스 본토는 밟아보지도 못하고 기껏해야 미코노스, 파로스, 크레타 3개 섬만 다녀와서는 그리스 교통문화를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인지 모른다. 낯선 곳, 게다가 도로사정 좋지 않은 곳에서 관광객들이 속도 내어 운전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규정속도도 지켜야 하며 목적지를 찾으려면 속도도 낮춰야 한다.
현지인들은 벌벌기는 관광객들과 보조를 맞추려면 약속시간이 늦을 수도 있으며 현지사정이 밝으니 과감하게 운전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오토바이 운전자를 포함한 운전자와 보행자가 종합세트처럼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는다면 관광객들은 움츠러들고 더욱 서행을 하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깨끗하고 풍광 좋은 자연,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씨, 맛있는 음식, 오랜 역사와 유적 등 세계인이 부러워할만한 모든 것을 갖고 있는 그리스지만 옥에 티는 운전문화였다. 그리스에서 운전하는 내내 고속도로에서는 뒤차가 따라붙는 것이 신경 쓰였다. 사실 승용차나 픽업이 따라붙는 것은 견딜 수 있으나 오토바이는 좌로 또는 우로 추월할지 모르는 폭탄 같았기에 무척 신경 쓰이는 존재였다. 시내운전에서는 불법주차차량 사이에서 보행자가 나오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
제목이 ‘코끼리 만지기’였으니 운전했던 그날, 그 장소에서만 교통법규를 위반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