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묵은 소금으로 간한 대구탕
여행 마지막 날이다. 동해바다 수평선 위로 만리장성 같은 구름이 낮게 깔려있지만 전반적으로 맑아 일출은 볼 것 같다. 금일 일출시각은 5시 27분으로 일주일 전 양양의 일출보다 9분이 빨라졌다. 하지로 갈수록 일출시간이 하루 일분씩 빨라지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조금 더 빨랐다. 오늘은 바람이 자서 파도소리 차분하다. 구름에 걸려 올라오는 일출을 눈 편하고 예쁘다. 아내를 깨웠다.
여행 갈 때 경추베개를 갖고 간다. 숙소에 있는 푹신한 베개는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고 잠을 부르지 않는다. 또 새벽같이 여는 커피숍이 없어 이번 여행에는 드립커피세트와 커피 3종을 갖고 왔다.
Ethiopia Guji Gelana Gesha G1 Natural Special Reserve
Guatemala New Oriente Finca La Bella Villa Sarchi Washed
Costarica Tarrazu Tirra Estate Natural
3종을 블렌딩 해서 내리지만, 집에서보다 물 온도가 높아 조금 진한 맛의 커피가 내려진다.
커피 한잔 하며 바라보는 바다가 한층 평화롭다.
오늘 계획은 삼척번개시장에 가서 아침을 먹고 장구경과 어물쇼핑 후 영동고속도로를 통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7번 국도가 직선화되어있어 고속도로 같이 도로상태가 좋으며 삼척까지 1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번개시장은 아침에 잠깐 열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시장 안에 위치한 ‘우리집 식당’은 조그마해도 곰치국을 잘한다고 소문난 집이다. 아내가 곰치국을 맛보지 못했기에 곰치국을 주문했으나 준비된 곰치가 없단다. 곰치를 사 갖고 오면 끓여주겠다고 하지만 식당 들어오며 생선가게를 봤으나 곰치를 보지 못했다. 맞다, 곰치는 한겨울에 잡히는 생선이며 겨울철에 먹었던 생각이 났다.
메뉴를 추천해 달라고 하자 매운탕을 먹으려면 장치, 맑은 탕을 먹으려면 대구가 좋다고 한다. 김치를 숭숭 썰어 넣고 끓인 곰치탕을 선호하지는 않으니 맛으로 따지면 대구맑은탕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해본다. 장치는 끓여놓으면 모르지만 비주얼이 예쁜 생선은 아니다. 맛도 중요하지만 비주얼을 따지는 아내를 위해 대구맑은탕을 주문했다.
식탁을 둘러보니 간장, 식초, 고추냉이(와사비)가 없어 대구탕이 나오면 달라고 할 참이다. 대구맑은탕이 나왔다. 국물 한 숟갈 뜨니 목젖을 강하게 찌르는 청양고추의 맛, 대구탕 먹을 때 국룰인 간장, 식초, 고추냉이가 없는 이유가 있었다. 대구맑은탕 작은 것을 주문했으나 대구가 서울의 두 배는 들어가 있고 매우 싱싱해 대구살에 무지갯빛이 영롱하다. 국물 한 숟갈 먹을 때마다 ‘하아~’ 소리가 절로 난다. ‘하아~’ 소리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15년 묵은 소금으로 간한 대구탕을 먹는 할배의 감탄사다. 수십 번의 ‘하아~’ 소리와 함께 그 많은 대구탕을 다 먹었다.
아침시간이 지났기에 가게가 한가해졌으며, 주인은 커다란 양푼에 먹음직스럽게 밥을 비벼 아침을 먹는다. ‘음식이 매우 맛있고 특히 국물이 시원합니다. 육수비법이 있나요?’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콩나물, 무, 파, 미나리, 청양고추, 대구를 넣고 소금간만 합니다. 특별한 게 있다면 소금이 15년 묵은 겁니다. 소금이 좋으면 다른 재료 없어도 국물이 달고 좋습니다.’
‘맞아요. 영광원자력에 근무할 때 젓갈집에 갔더니 소금 파는 가게같이 소금이 많아 주인에게 물어봤어요. 소금을 오래 묵힐수록 젓갈맛이 짜지 않고 구수해진다고 하더군요.’
어제 비바람이 인해서인지, 아니면 시간이 늦어서인지 시장에는 상인도 몇 안되고, 생선도 별로 없다. 물가자미, 대구, 백골뱅이가 전부인데 반해 물가자미, 참가자미, 임연수어, 열기를 꾸득하게 말린 생선은 많이 있다.
‘우리집 식당’에서 대구맑은탕을 맛있게 먹어서인지 생대구를 구입했다.(덕분에 집에 와서 생대구 맑은탕을 3일간 질리게 먹었다.) 백골뱅이 한 바구니와 바삭하게 구운 생선을 좋아하는 손녀를 위해 임연수어 말린 것을 구입했다.
귀경길에 영월 미탄집에 들러 매콤한 메밀전병을 사줄까 했더니 대구탕을 맛있게 먹어 아무 생각이 없단다. 이제는 여행계획을 마무리하고 집에만 가면 된다. 내비게이션을 찍어보니 삼척에서 분당까지 3시간밖에 소요되지 않는다.
백수가 되니 좋은 점이 여러 개지만 대표적인 것이 여행 다닐 때 도로가 막히지 않는 것과 붐비지 않아 어깨 부딪칠 일이 없는 것, 식당에서 대우받는 것이다. 분당으로 가는 길은 막히지 않고 빠져나오는 길은 정체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