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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5. 교토커피(심재범著, 디자인이음刊)

화보집인지 카페기행집인지 착각할 정도

by 물가에 앉는 마음

저자는 아시아나항공 선임사무장이자 커피 전문가로 커피 관련 서적을 여럿 저술했으며 주간조선에 커피칼럼을 연재했다. 이 책은 일본 교토지방 유명 카페를 기행 하며 카페의 풍경, 커피 머신, 커피 맛을 소개한다. 카페 근처 문화와 역사유적지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어쩌면 화보집인지 카페기행집인지 착각할 정도로 글보다 사진이 차지하는 공간이 더 많다. 머리말 없이 훅 들어와 머리말을 열심히 찾았다. 나가는 말도 없다. 작가의 의도가 궁금했다기보다 책을 접하면 습관적으로 머리말과 나가는 말을 먼저 읽는다. 아마도 먼저 발간했던 “동경커피”에 작가의 의도가 나와 있을지 모른다.


맛있는 카페라테를 마셔본 기억이 드물다. 커피와 우유가 겉도는듯한 맛, 한쪽이 부족하거나 넘치는 맛으로 인해 카페라테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의 글을 읽고 아라비카(ARABICA KYOTO)에서 카페라테가 마시고 싶어졌다. 시각과 미각으로 느끼게 커피를 표현했으니 전문가답다.

“강렬한 강배전 블렌딩 에스프레소가 중심에 맹렬히 위치하고 우유와의 궁합이 단단하고 치밀하다.”


3. 오카페(OKAFFE KYOTO)

교토 커피의 자랑 오카다 씨의 오카페를 찾은 시각은 마감 직전인 저녁 8시쯤이었다. 오카다 씨는 관서 지방의 첫 일본 바리스타 챔피언이다. 오카페는 시조역 번화가 안쪽의 건물에 있었다. 좁은 진입로 때문에 초행길에는 찾기가 어렵다.

매장에 들어섰을 때 오카다 씨가 에스프레소 머신을 정리 중이었다. 마감 시간이었음에도 배려를 해준 덕에 자리에 앉았다. 짧은 순간이지만 오너 바리스터가 머신을 꼼꼼하게 정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머신의 위생과 유지보수는 의외로 커피 맛에 큰 영향을 끼친다. 쟁쟁한 매장들도 머신의 유지관리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쉽게도 대부분 끝이 좋지 않았다. 커피도 인생도 마무리가 참 중요하다.


매장 입구에 원두 추출기구들의 매대가 있고, 안쪽으로는 한평 넓이의 일본식 정원이 있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차분하고 오랜 기간 손님을 맞아온 노련한 매장 느낌이 물씬 풍긴다. 일본 특유의 혼네가 숨겨진 과장된 친절이 아니고 진심 어린 여유가 묻어 나왔다. 머신과 그라인더의 세팅이 최신식이지만 사람이 먼저 드러나는 서비스 매장이다.

블렌딩커피는 커머셜과 스페셜티 등급의 경계에 있다. 싱글오리진은 파나마 에스메랄다 게이샤까지 구색이 다양하다. 가격은 500엔에서 1000엔까지 형성되어 있다. 주문은 파나마 에스메랄다 게이샤 싱글오리진 브루잉, 최고 생두의 향미와 입체감, 스윗니스, 애프터 밸런스가 풍부한데 반해 로스팅이 조금 아쉬웠다. 역설적으로, 오카다 바리스타의 퍼포먼스가 더욱 인상적이었다. 손님을 맞이하는 자세와 커피를 표현하는 쇼맨십에서 최선을 다하는 프로 모습이 잘 드러났다.

이어서 파나마 게이샤 싱글오리진 라테를 추가하였다. 다양한 향미의 게이샤 커피와 밀크의 균형이 적절했다. 마지막으로 매장 시그니처인 아이리시 커피가 인상적이었다. 오카페는 위스키가 함유한 아이리시 커피를 재패니즈 위스키 히비키와 궁합을 맞췄다. 야마자키와 함께 일본 위스키를 상징하는 히비키는 깔끔하고 우아한 목 넘김과 청정한 느낌이 주도적이다.

오카페의 아이리시 커피는 청명한 목 넘김의 스탠더드 히비키 위스키와 강배전 블렌딩의 강렬한 베이스 커피, 차가운 크림이 입안에서 맴돌며 술래잡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단순하고 직선적인 아이리스 커피가 섬세하고 아름답고 청명하게 변화되었다.


4. 아라비카(ARABICA KYOTO)

매장에 아침 햇살이 가득한 시각, 매장 앞 벤치는 외국인커플이 차지하고 앉았고, 전면으로 아라비카 커스텀 슬레이어 머신과 그라인더 등이 눈에 띄었다. 사이드 커피바에 1그룹 슬레이어 머신이 추가로 비치되었으며 안쪽으로 독특한 열풍머신이 보였다. 브루잉 추출용 우버 보일러가 두 개 있었고, 매장 분위기가 정갈하고 깔끔했다. 아라비카 커피는 교토에서 시작하여 두바이, 홍콩, 마닐라, 심지어는 파리, 베를린까지 다양한 나라로 빠르게 퍼져 화제가 되고 있다.

아라비카는 라테가 유명한데 원두 종류 역시 많았다. 콜롬비아 샌 어거스틴, 온두라스 페르난데스, 하이엔드 생두업체인 나인티플러스의 켐진과 하치라, 네키세, NP 파나마 게이샤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산지, 농장, 프로세싱, 로스팅디벨로프면트까지 표기되어 있어 커피를 선택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수세식과 내추럴은 깔끔함과 복합적인 스윗니스를 표현하고, 약배전과 강배전은 향미가 부각되거나 쌉쌀함에 영향을 미친다.

온두라스 페르난데스(미디엄로스팅) 커피를 주문했다. 가격은 600엔. 커피는 우버보일러를 통해 융드립으로 케멕스를 서버로 사용했다. 우버보일러의 온수를 적수로 사용하여 추출과정 중 온도저하를 막았다. 커피는 질감이 진득하고 중배전에도 쌉싸름한 성향이 주도적이다. 온두라스 커피 특성이 표현되었고, 모험적인 시도를 과감한 추출 방식을 통해 구현했다. 다만 중배전 성향이 아니고 강배전의 쌉싸름한 맛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커피는 매장의 대표적인 카페라테, 싱글오리진과 블렌딩을 선택할 수 있는데 밀크커피에는 블렌딩이 적절하다. 강렬한 강배전 블렌딩 에스프레소가 중심에 맹렬히 위치하고 우유와의 궁합이 단단하고 치밀하다. 커피가 뜨겁지 않아 좋았다. 우유는 60°C가 넘으면 단백질이 응고되어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튄다.

아라시야마 매장에서는 아이스 라테가 기억에 남았다. 아이스 음료 특유의 좁은 향미 속에서 단단하게 커피를 조여주는 박력이 인상적이다.


마지막으로 교토의 절경을 꼽자면, 서쪽은 천룡사의 아라시야마, 동쪽은 청수사의 히가시야마라고 할 수 있다. 천룡사는 석정의 원형이 되는 정원이 유명하고, 청수사는 교토의 기원이자 일본 최고의 사찰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시사철이 아름다운 곳이다. 히가시야마의 아라비카에 가기 전후 청수사를 둘러보는 것이 좋지만, 혹시 여유가 있다면 육바라밀사를 가볼 것을 추천한다. 공야 상인‣이 역병으로 고생하던 대중을 위하여 고행을 자처하고 설법을 전하던 모습이 기록된 곳이다. 고귀한 신분에도 추레한 모습으로 대중에게 헌신한 공야 상인 비불을 운 좋게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공야 상인으로 표기되어 공야 성인이 아닐까 하여 인터넷을 검색했으나 상인이 맞는 것 같다. 공야는 스님, 비불은 12년마다 한 번씩 공개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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