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팅사부들에게 감사인사 전한다.
무모하게 시작한 로스팅이야기를 모두 풀어놓았다. 사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라기보다는 무식해서 용감하고도 무모하게 시작한 로스팅의 복습이자 실수와 실패를 교정하는 과정이므로 철저히 나를 위한 글이었다.
커피로스팅과 브루잉에 관한 교육과 훈련을 받지 않았기에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초짜를 벗어난 후 커피 관련 서적 10여 권을 읽고는 시작할 때 읽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완벽을 추구하지 않았으며 취미로 생각하기에 앞뒤가 바뀌어도 무방했다. 사업이었다면 신중하게 체계를 잡아 시작했을 것이다.
학원신세를 지지 않은 것은 성격 탓이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 출석해 강의받는 것은 구속받는 느낌이라 싫어한다. 또한, 룰과 루틴이 정해지면 그것을 쉽게 깨지 못하는 성격이기에 학원에서 교육받은 내용은 그대로 해야 한다. 이런 성향으로 인해 학원교육은 오히려 실험정신과 창의력을 없앨 가능성도 있었다.
season2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에서 커피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한다. 이제는 입맛에 맞는 생두를 골라 적당하게 로스팅할 수 있는 下手단계로 자진 승격했다. 당분간은 커피 내리고(Brewing), 완전히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는 Blending 등 즐기는 것에 치중할 예정이다. 수없이 많은 커피 생두 중에 맛보지 못한 새로운 생두를 찾아다니는 일은 당분간 하지 않으려 하며, 커피 내리고 즐기기에 흥미를 잃어 새로운 재미가 필요할 때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려 한다.
커피 Brewing도 기술이므로 바리스터학원을 다니며 배우는 것도 좋겠지만 그간 좌충우돌하며 Roasting과 Brewing을 했기에 갈고 다듬고 체계화시키면 될듯하다. 또한 내가 배우고자 하는 Brewing은 핸드드립에 국한되어 있으므로 굳이 학원수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Roasting과 Brewing의 중요도를 판별하기 어렵다. 또한 어느 쪽이 더 높은 기술을 요하는 분야인지도 확실치 않다. 굳이 이야기하라 하면 모두 중요하고 떼어 놓을 수 없는 바늘과 실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좋은 생두를 기가 막히게 로스팅하여, 질 좋은 원두를 생산했다고 해도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부터는 바리스터의 영역이다. 원두 양과 분쇄도, 커피 내리는 속도, 물 온도, 드리퍼 종류, 커피 내리는 시간과 양 등의 각종 변수가 커피맛에 영향을 준다.
바리스터 학원 교육방법은 모르겠지만 여러 변수들을 조정해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기 입맛에 맞는 常數(상수)를 찾아내는 것 또한 재미로 여기면 된다. 원두 분쇄도와 커피 내리는 시간 등 각종 변수들 중에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한 가지만 변해도 커피맛이 달라진다.
각각의 변수들은 독립적이지만 연관성을 갖고 있다. 기본적인 원리를 알고 본인만의 조합을 찾는 것도 좋다.
원두 분쇄도를 높이면(곱게 갈면) 잡미까지 추출되며, 거칠게 갈면 커피 유효성분이 적게 나온다.
물 온도가 높으면 잡미까지 추출되며, 낮으면 커피 유효성분이 적게 나와 밍밍해진다.
드리퍼 종류에 따라 커피 내려지는 속도가 달라진다. 속도가 늦으면 잡미까지 추출되며, 빠르면 커피 유효성분이 적게 나온다.
커피 내리는 시간이 길면 잡미까지 추출되며, 빠르면 커피 유효성분이 적게 나온다.
약 2년, 50kg을 볶았으니 250번의 로스팅 경험이 쌓였다. 그렇다고 숙련된 것은 아니며 아직 中手(중수)조차 되지 못했다. 약 40종 커피를 로스팅했으며 로스팅할 때마다, 그리고 브루잉, 블렌딩 할 때마다 맛과 향이 달라지는 수제커피 특성상 매일 다른 커피 맛을 음미하고 있는 중이다.
로스팅 후유증도 있다. 아내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주문하지 못한다. 우리 집 커피보다 맛이 없을게 분명하니 말이다. 역설적으로 이제는 내 입맛에 맞춰 생두를 고르고, 생두에 맞게 로스팅하고, 입맛에 맞게 커피를 내리는 수준이 되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두 번째 직장까지 퇴직한 후 시간이 남아도는 시기에 새로운 놀거리를 찾고 있었으며 부부가 좋아할 만한 취미가 무엇일까 생각 중 떠오른 것이 로스팅이었다. 무작정 로스팅을 할 수 있도록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역할을 해준 이들은 로스팅사부들이다.
본인들이 로스팅한 커피맛을 수년동안 보여줬으며, 커피공방에 놀러 가면 자연스럽게 로스팅하는 모습을 접하게 되었다. 사부들로 인해 너무 쉽게 로스팅 해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겁 없이 로스터와 생두를 구입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명언은 아닐지라도 가끔 필요한 말이라고 판단된다. 무식하고 용감하게 만들어준 로스팅사부들에게 감사인사 전한다.
* 2024년 5월부터 몸으로 부딪친 커피이야기를 60회 넘게 끄적거렸다. 이론적인 뒷받침 없이 끄적거린 것이니 부정확하거나 오류도 있을 것으로 판단되나 초보과정을 벗어나는 과정을 그린 것은 팩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