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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4. 공부하는 이유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 정상화합니까?

by 물가에 앉는 마음

학교나 기업에서 강연할 때마다 “어떤 위기의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공을 키우는 법”을 알려달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공부하는 학생으로서의 대답은 “당장 써먹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공부 그 자체를 즐기는, 삶의 호흡이 깊어지는 공부를 하라는 것”이다. 공부는 지식체계를 풍성하게 하고 생각하는 법을 길러주며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방황하지 않고 스스로 인생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똑같은 실패를 겪어도 공부하는 사람과 공부하지 않는 사람의 미래는 완전히 다르다. 그러니 하루하루를 더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면 공부를 멈추지 마라. 그러면 인생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즐겁게 흘러갈 것이라고 말한다. - 내가 공부하는 이유(사이토 다카시著, 걷는나무刊) -


언젠가부터 인문학 열풍이 불었지만, 대다수 사람은 인문학이란 놈을 어디에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그 쓸모가 모호하다고 생각하며, 마냥 어렵고 막연하며, 할 일을 하고 난 다음에 여유 있을 때 한번 공부해 볼 만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사실입니다. 인문학을 하는 목적은 지식을 갖추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문적 활동을 할 수 있는 힘, 인문적 통찰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철학과에 입학했다는 것은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것, 즉 생각하는 힘을 갖추기 위함으로 힘을 가지려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했는가를 알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선진국으로 진입하느냐 진입하지 못하느냐의 문제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인문학이 중심기능을 하는 사회로 진입하느냐 진입하지 못하느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어요. 한국은 오랜 기간 “독립적 주체”로서 사고를 해본 경험이 별로 없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미국의 덕택으로 해방을 맞다 보니 미국적 이데올로기가 최근까지 한국인의 의식을 지배했습니다. 언젠가부터 한국사회 전반에서 상상력과 창의성을 가장 중요한 화두로 제기합니다. 그런데 상상력과 창의성은 어디에서 공급되나요? 바로 인문학적 토양에서만 가능한 작업입니다. - 인간이 그리는 무늬 (최진석著, 소나무刊) -


‘한전KPS에서 근무하고 있고 10년 목표로 공부하다가 능력이 부족해 10년을 연장했으며 12년째 공부하는 학생’이라고 소개하면 ‘무엇을 공부하세요?’라는 질문이 되돌아온다. ‘인문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면 더 이상 묻지 않는 경우가 많다. ‘왜 인문학을 공부하죠?’라는 질문이 나와야 대화가 이어지나 그런 질문은 가뭄에 콩 나듯 하다. ‘왜 쓸모없는 인문학을 공부하죠?’라는 반문 하지 않는 것이 다행이기는 하나 ‘인문학’이 인기 없는 것은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회사업무와 접목을 시도하기 위해 인문학 서적을 뒤적이다 재미를 붙인 후 공부하기 시작했고 이후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이고, 행복이란 무엇일까?’라는 의문부호가 생기기 시작해 공부 속도가 붙었다. 그러니까 ‘회사업무를 잘 하기 위해’ 인문학 공부를 시작했는데 공부하는 과정에서 공부하는 이유를 알았고 공부의 목적이 바꿨으니 체계적이지 못하고 뒤죽박죽인 공부를 한 셈이다. 내가 공부하는 이유’의 사이토 다카시 교수와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최진석 교수를 일찍 만났다면 체계적인 공부가 가능했을 텐데 내 삶이 그렇듯 공부도 그리 체계적이거나 계획적이지 못했다.


퇴직 즈음 되어 후배들에게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앞으로의 경쟁력이란 ‘새롭고 뛰어난 생각을 해내는 창의력’과 ‘사물과 현상을 꿰뚫는 능력인 통찰력’으로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전’에서 ‘창의력과 통찰력’을 배양할 수 있는 구절은 찾아내기 어렵다. 오히려 고전은 ‘기본과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어 공부가 지루하고 답답할 수 있으나 어느 순간 ‘기본과 본질’을 넘어 ‘창의력과 통찰력’이 생기기 시작한다. 나는 이 순간을 threshold(문턱 값:일정수준 이하에서는 발현되지 않다가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발현되는 값)라고 부르는데, 책을 100~200권 정도 읽게 되면 도달되는 경지나 수준으로 생각한다. 과거 책을 많이 읽었다면 100권 정도 읽은 후에 그와 같은 능력이 발현될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200권 정도 읽으면 발현하게 된다.

공부했지만 threshold를 넘지 못한다면 ‘지식’수준에 머무르는 것이며, ‘창의력과 통찰력’이 생기며 응용하고 예측할 수 있다면 threshold를 넘었다고 할 수 있다. 소위 눈이 밝아진 것이지요.

우리 회사는 발전정비회사이며 설비에 문제가 발생하면 정상화하는 것이 業으로, 영어로 Maintenance는 Restore to original condition으로, 설비에 문제가 발생하면 원래 상태로 복구하는 것이 정비이다. 정비하려면 O&M Manual, Code & Standard, Drawing, 전공 서적 등의 기술자료나 서적을 봐야 하고 생소한 문제에 관해서는 해당 분야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야 한다. 다른 분야 종사자도 마찬가지겠지만 제대로 정비하려면 공부해야 할 것이 많다.


사회생활은 타인과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며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은 대부분 인간관계다.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요? 여기에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가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인간관계 개선과 리더십 함양’이다.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 정상화합니까? 정상화하는데 필요한 O&M Manual, Code & Standard, Drawing 등의 자료나 서적을 갖고 계시나요? 정비에 관한 생소한 문제에 관해서는 해당 분야 전문가의 조언을 받았는데, 인생을 살다가 막히는 경우, 인간관계의 생소한 문제에 대해서는 정신과 의사, 부모님, 목사님, 스님 등 조언을 해주실 전문가그룹이 있으신가요?


정비원이 탄생하기까지 많은 교육을 이수해야 하고 OJT 과정을 받아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회인이 탄생하려면 ‘인문학’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요즈음 다행스럽게도 공영방송과 케이블TV에서 다양한 인문학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으며 유튜브, 관련 서적이 많아 막막함을 덜 수 있다. 인간관계의 문제가 있을 때마다 의사, 목사님을 찾아 상담할 수 없으니 기본적인 사항들은 본인이 해결해야 한다. 인문학 속에 해결방법이 있다.

인문학을 공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상대방뿐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게 되며, 조직의 리더로서의 리더십뿐 아니라 자신을 리딩할 수 있는 리더십이 생긴다. 자신을 제어하고 리딩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리더십이 발현되어 조직과 나라를 이끌 수 있는데, 이는 저의 어설픈 주장이 아닌 고전에도 나와 있는 이야기다. 사서삼경의 한 권인 大學에 ‘修身齊家治國平天下: 자기 자신을 바르게 가다듬은 후에 가정을 돌봐 안정시키고, 나아가 나라를 다스리며 천하를 평정한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천하를 평정하려는 자는 먼저 자기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

초급간부가 된 직원, 승격해서 팀장이 되거나 소장으로 발령 나는 후배들의 고민거리 중 하나는 ‘내가 과연 저 조직을 잘 이끌 수 있을까?’이다. 물론 같은 고민을 했었는데 조직원들이 마음속으로 나를 리더로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관점을 바꿔보자. ‘내가 과연 저 조직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내가 리더로써 직원들에게 어떤 모범을 보여야 할까?’. 요즘 세상에 통하지도 않을 ‘군림’에서 선배로서의 ‘봉사’로 관점을 수정한다면 ‘권위’, ‘대접’, ‘서열’, ‘의전’ 등 많은 거추장스러운 것들이 떨어져 나간다. 대신 ‘조직원들이 마음속으로 나를 리더로 인정’하는 자연스러운 리더십이 따라온다.

요즈음 지인들에게 추천하거나 선물로 보내는 책은 ‘인간이 그리는 무늬(최진석著, 소나무刊)’이다.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잘 정리되어 있다. 10여년전 인문학 공부를 시작할 때 이 책을 봤었다면 시간도 절약할 수 있었고 체계 잡힌 공부를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또는 억울함이 있다.

이 책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대목이 있다. ‘지식은 무엇을 이해하는데 머물러 있는 것이 되어선 안 되며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모르는 곳으로 넘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지식도 예측할 힘을 주지 않는 것이면 모두 가짜입니다. 어떤 지식인도 예측할 능력이 없다면 그가 가진 지식은 모두 허구입니다.’

말로만 떠들고 반대 논리만 펴는 지식은 아무 쓸모가 없는 죽은 지식 이라는 거죠. 실행능력과 대안 제시 능력을 갖춰야만 살아 움직이는 지식이자 지혜인데 이는 우리가 인문학 공부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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