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숙제가 남았었는데 저절로 해결되는 것 같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2008년 1월에 시작하며 10년, 500번을 계획했었는데 뜻하지 않게 12년 600번을 넘기게 되었다. 칸트만큼 정확하지는 않지만, 루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생활습관이 있어 편지 쓰는 것이 일과가 되었기에 햇수 12년은 의미도 없어 보이고 그저 ‘질기다.’ 정도 느낌이다. 오히려 편지 쓰는 일이 일과를 흐트러지지 않게 지켜준 것이니 고마운 일이다. 더불어서 책 읽기를 병행하며 비었던 지식창고를 채웠고 행복한 삶에 대한 생각도 깊어졌다. 멀리 있으면 마음도 멀어질 수 있는 친지들을 그나마 가냘프게라도 연결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준 것도 편지이니 이도 고맙다.
사실 매 순간의 감정이야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지나놓고 보니 고맙지 않은 일은 없었다. 시간 지나 생각하고 기록하는 과정이 없었다면 고마움도 덜 했을 터이니 겸손의 지혜와 감사의 마음을 선물해 준 것도 편지쓰기였다.
세상과 격리된 공간에서 기계만 쳐다보며 살아가는 발전소 생활이 한편으로 두려웠지만, 발전소 안의 기계들은 거짓도 없고 관심과 사랑을 쏟은 만큼 잘 돌아가니 한편으로 위안이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같은 작업복을 입고 오직 지식과 기술만으로 승부하는 발전소생활은 정직하고 단순한 사람이 살아가기 적합한 理想鄕에 가까운 세계인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변화 없는 단조로움을 싫어하는 내 적성은 본사근무가 적합한 듯 했다.
일상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해지는 발전소 생활이 길어질수록 두려움이 커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단순한 발전소 생활이 한편으로 두려웠던 것은 어쩌면 언젠가는 경험해야할 발전소 밖의 세상이 두려웠는지 모른다. (당시 발전소 식구들 사이에서는 세상과 격리된 공간에서 오픈된 공간으로 나간다 하여 출감이라고 표현했다. 장기수는 바깥세상을 그리워하지만 한편으로 바깥이 두렵다.) 그렇다, 기계가 아닌 복잡 미묘한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일은 버거운 일이다. 바깥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기술서적을 내려놓고 인문학 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렵고 복잡했던 세계가 열리면서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책 읽기를 지속시켜 준 것도 편지쓰기 덕분이니 이 또한 고마운 일이다.
편지를 쓰기 시작한 초창기에는 매주 쓰는 것이 숙제 같아 한편으로는 강박을 갖게 했으나 적당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역할도 했기에 그 긴장감을 즐겼다. 퇴직 즈음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두 가지 숙제가 남았었는데 저절로 해결되는 것 같아 다행이다.
첫 번째는 초급간부들에게 5년간 인문학 서적 100권을 읽히는 것이다. 5년간 초급간부 누적 인원은 전체 직원의 약 10% 선이며 이들을 5년 동안 공부시킨다면 커다란 미래자산이 될듯하다. 편지에서 소개한 책들을 같이 읽고 공부하는 후배님들의 기량이 일취월장하는 것을 보고 생각한 것이다.
회사에서 전 직원들에게 매년 일정 금액의 독서 포인트를 주고 읽고 싶은 책을 보게 하는데 만화책과 기술사 수험 서적을 사보는 직원도 있다. 물론 만화책과 수험 서적이 나쁜 것은 아니다. 회사에서 추천하는 도서 100권을 정해 5년에 걸쳐 읽게 하고 토론의 장을 만들어주기만 해도 효과 있을 것이다. 개인 역량은 회사 역량인데 사고의 폭과 깊이를 넓히고 깊게 해주는 방법은 본인 노력에 의한 성찰보다 좋은 방법이 없는 듯하다. 물론 길을 제시해주고 약간의 코칭은 효율적으로 길을 가게 해줄 것이다. 유명강사의 Off-JT도 효과적이고 유익하겠지만, 본인이 노력해서 읽고 고민하고 사색해야 자기 것이 된다. 다행스럽게 종합기술원 조직문화 증진을 위한 전담반 활동을 하면서 인문학 서적 100권을 읽히는 프로젝트를 슬그머니 끼어 넣었다.
두 번째는 Maintenance Engineering Handbook을 번역하고 싶었다. Maintenance Engineering Handbook의 수준이 높고 신기술이 수록된 것은 아니며 수준은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낮다. 話者(화자)에 따라 Maintenance Engineering의 정의와 수준이 달라지는데 이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KPS가 Maintenance 전문 기업이니 Maintenance Engineering에 대한 정의와 우리나라와 회사의 정비기술 수준에 관해 이야기하면 믿어야 하는데 정부와 학계 일부에서는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했고 근거제시를 요구했다. 전문가라는 그들이 제기하는 의문은 사실 전문적이지 않고 오히려 근거가 없다. 우리나라의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지만 ‘교수’라는 단어에 현혹되어 만들어진 결과다. 그들은 Maintenance Engineering을 전공하지 않은 기계공학과 전기공학을 전공한 교수로 그들의 눈에는 우리가 비전문가이다.
비전문가가 공자 이야기를 하면 코웃음 치지만 原典(원전)을 인용했다는 표기를 하면 토를 달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Maintenance Engineering이 외국기술이기에 사전 격인 Handbook에 나온 이야기라면 토를 달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Maintenance Engineering에 대한 정의, 국내외 수준과 관련된 질문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며, 한편으로 ‘Maintenance’ 비전문가인 그들을 설득하기 위한 근거가 필요할듯하다. 이것은 최근 후배들이 해결하고 있다. Maintenance Engineering Handbook을 번역하고 있으니 조만간 번역본이 출간될 것이다.
홀가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