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6. 일하는 행복

재미있는 일을 찾아야지, 네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by 물가에 앉는 마음

사근사근하다는 서울태생이지만 무뚝뚝한 경상도 사내를 닮아 가족과의 대화가 길지 않다. 네덜란드를 삶의 근거지로 삼으려는 작은 아이가 한국을 떠나는 날, 쉽지 않은 주문을 했다.

‘재미있게 놀아라!’

‘일하러 가는데 일이 재미있을 수 있어요?’

‘재미있는 일을 찾아야지, 네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작은아이가 ‘돈을 많이 주는 기업’보다 ‘보람과 성취가 있는 기업’을 택해 ‘일하는 행복’을 느꼈으면 한다.

고도성장시대에서 죽도록 일한 기성세대들은 살아남기 위해, 가족들을 위해 일 했기에 ‘일하는 행복’을 늦게 깨달았다. 간혹 늦는 분들은 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일을 그만두게 될 때 비로소 알게 된다. 그런데도 많은 분이 ‘재미있는 일이 어디 있냐? 노는 것이 재미있지!’ 하겠지만 정년퇴직을 경험해 보신 분들은 ‘일하는 행복’을 알고 계실 것이다.


학생 신분일 때는 몰랐지만, 사회의 쓴맛을 보기 시작하면 비로소 공부할 때가 행복했던 것을 알게 된다. 참새 방앗간이었던 정문 앞 선술집을 뒤로하고 입대하던 날, 훈련소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뭔가 잘못되어가는 느낌이었고 진흙 구덩이에 제대로 엎어진 기분이었다. 불행하게도 예감은 틀리지 않아 첫날부터 진흙밭에서 좌로 우로 굴러야 했다.

제대 후 한 달간은 재미있었지만 취업 준비하느라 도서관에 들어서는 느낌은 훈련소 정문을 통과할 때와 다르지 않았다. 군대라는 소속감도 없이 생소한 세상에 내팽개쳐진 느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실업자 생활은 안개 낀 밤길같이 불투명하고 답답하며 불확실하기에 차라리 다시 군대에 가고픈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술을 끊고, 친구도 끊고, 신물 나게 책만 봐야 했던 시간, 인생의 암흑기 같았다.


입사시험 합격자 발표 날, 그간 신물 나게 공부하던 책들과는 이별이다. 하지만,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일하기 위해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기도 전에 공부가 시작되었다. 어느 회사나 신입사원에게는 공부가 일이지만 우리 회사는 유독 교육을 많이 시켰다. 입사하자마자 2주간의 오리엔테이션에 이어 3달간 원자력 계통교육 등 하드 트레이닝과정이 끝나고 사업소에 배치되자마자 독한 부장님을 만나 독하게 공부했다. 6개월간 자료실에 가득 찬 O&M Manual을 독파하면서 ‘왜 이 회사는 일은 시키지 않고 공부만 시킬까?’ 하는 의문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후 품질보증업무를 담당했으니 품질관리학을 공부하고, 교육훈련업무를 담당하며 교육학, 본사 업무를 하며 기획론, 경영학, 안전공학, 기술기획, 인문학을 공부했다. 좀처럼 포기할 줄 모르는 성격 때문에 지겨울 정도로 공부도 많이 하고 일도 많이 했다. 언제부터인가 의무감과 지겨움을 넘어섰다. 일과 공부에 재미를 붙인 까닭은 모르겠으나 그냥 일과 공부가 즐겁고 일하고 공부할 때가 행복하다.


얼마 전, COVID 19가 전국을 공포에 몰아넣었을 때 진도가 나가지 않던 책 ‘총, 균, 쇠’ 한 권 들고 2주 정도 예방 차원의 자가격리에 들어갔었다. 첫날 식료품 쇼핑을 해서 餓死(아사)에 대비하고 바이러스와 상관은 없을 것 같았지만 대청소를 했다. 하지만, 계획했던 ‘총, 균, 쇠’ 완독은 실패했다. 750Page이니 이틀 정도면 읽을 줄 알았으나 책 읽기 리듬이 깨져서 그랬는지, 좁은 공간에 갇힌다는 압박감 때문인지, 아니면 지루한 내용과 문체인지 모르겠으나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독서의 행복’을 찾지 못했기에 다른 소일거리를 찾아야 하는데 방 한 칸짜리 오피스텔 크기는 예전 근무했던 보안사령부 서빙고 대공분실 유치장과 비슷했다. 현관 들어서면 침대가 있다. 침대를 지나면 유치장에는 세면대가 있었으나 오피스텔은 바깥이 보이는 창문이다. 창문 넘어 보이는 커피집도 손님이 없는 적막강산이라 바깥 풍경에도 흥미를 잃었다. ‘코로나바이러스’와 ‘대장균’과는 사돈의 팔촌 관계도 아닌데 보름 동안 거의 매일 욕탕 청소를 했다. 흐르지 않는 시간을 빨리 가게 만들기 위해 소일거리를 만든 것이다. 빨래, 걸레질, 욕탕 청소를 하다 보니 시간도 빨리 가고 소위 ‘청소하는 행복’이 생겼다.

교도소 시계는 더디 간다. 예전 이(머릿니 蝨, 슬로 읽는다)가 많았을 때, 교도소 수감인들은 소일거리가 없으니 시간 보내기 위해 이를 잡아 경주를 시켰다고 한다. 출발선에 머리에서 잡아낸 이를 세우고 피니쉬 라인을 통과시키는 競馬(경마)아닌 競蝨(경슬)을 한 것이다. 물론 상품이 걸려 있어야 흥미진진해지니 때로는 불법 반입물인 담배내기 아니면 합법 영치물인 과자내기를 했다고 하는데 시간보내기 위해 만들어낸 ‘청소하는 행복’이나 ‘競蝨(경슬)하는 행복’이 ‘일하는 행복’을 능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자가격리 기간에 격려 메시지와 전화, 私食(사식)은 ‘옆에 누군가 있다는 안도와 행복’을 줬기에 Corona Blue를 극복하는 힘이 되었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 사는 향기’ 나는 사회와 조직은 위기에 당황하겠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고 이를 극복해 낸다. ‘청소하는 행복’을 잃어 숙소가 지저분해졌지만, 다시 ‘일하는 행복’을 느끼게 해준 여러분께 늦은 감사 드린다.

Corona는 이제 시작인지 모른다. 모두 조심해야 하겠지만 지나친 걱정과 우려는 더욱 치명적인 Corona Blue를 싹틔운다. 효과적인 제도나 치밀한 방역도 좋지만 언제나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하며 따뜻함과 희망과 사람 사는 향기로 이를 극복해야 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616. 어떻게 행복하게 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