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에 콩 나듯 ‘좋은 소식’도 나온다.
두 달 전쯤 보내드린 ‘덜 행복해지는 이유’에서 비교하고 서열을 매기는 문화로 인해 덜 행복해진다 했으니, 그 원인인 ‘비교, 서열’을 없애버리거나 반대로 하면 덜 불행해지거나 행복해 질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그리 쉬운가? ‘덜 행복’을 덮어 버릴만한, 삼복 무더위를 식혀줄 시원한 한줄기 비가 내리는 것처럼 행복한 풍경도 찾고 만들어 나가야 살만하고 행복한 세상이 보이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보직을 놓은 후 책임지는 업무가 많지 않으니 얼마나 홀가분한지 모른다. 이해관계 없는 손님들만 찾아오니 이 또한 부담 없고 언제나 반갑다. 비서 역할을 하는 행정원이 없어 예전 막내였던 눈치 빠른 M 대리가 사탕 바구니를 갖다 놓았는데 마르지 않는 화수분이다. 손님용이나 가끔씩 입에 무는 사탕이 여간 달콤하지 않다. 나는 작은 물질에 약한가 보다.
인천에서 같이 근무하던 직원들이 두 시간 거리의 사업장에서 공사 수행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느 비 오는 날, 직원들이 전화했다. ‘오늘 인천으로 올라가려다 상무님이 생각나 나주에서 막걸리 한잔 마시고 내일 아침 올라가려 합니다. 저녁 시간 되시는지요?’ 나주혁신도시에 위치한 삼거리 주막이 오랜만에 떠들썩했다. 모둠전이 유독 맛있었던 것은 비가 왔기 때문은 아니었다.
새벽마다 사무실 청소를 하시는 사모님께서 대나무를 깎아 만든 펜 한 자루를 갖고 오셨다. ‘가끔 만년필을 사용하시기에 갖고 왔습니다. 선물 받은 것인데 저는 필요치 않거든요.’ 잉크를 찍어 써야 하는 대나무 펜을 일상에서 사용할 기회는 많지 않을 것이나 감사히 받았다. 밤색 붓자루 끈에 달린 것은 따뜻함과 사람 냄새였다.
인생 상담을 받으러 오는 후배들에게는 항상 따뜻하게 대한다. 오죽 답답했으면 나를 찾아왔을까? 유능한 카운슬러는 말을 아끼고 장단만 맞춰주면 된다고 했으니 말을 아낀다. ‘아, 그래 마음고생이 많았겠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그러지?’ ‘그래 잘했어. 때로는 화도 내야지. 그런데 이제는 손을 먼저 내밀어 보는 것은 어떨까?’
하지만 업무 상담을 받으러 오는 후배들은 야단맞는 경우가 많다. ‘목적과 방향이 흐릿하잖아. 무엇을 하려고 하냐?’ ‘모든 업무의 최종 목적은 매출, 이익이다. 어떤 효과가 있냐?’ ‘결과물이 나왔다 치고 그 다음에는?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하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업무가 이뤄지게 시스템을 만드는 것인데 이렇게 하면 관리는 쉬우나 업무가 복잡해지는 것 아닐까?’ 내 업무 스타일은 기본과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며 시류에 따른 임기응변과 겉치레를 좋아하지 않는다. 후배들은 내가 묻는 말에 곤혹스러워 얼굴이 벌게지지만 그래도 다시 찾아오는 후배들이 고맙고, 후배들 실력이 늘어 질문 개수가 줄어드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보직을 끝내고 2선으로 물러나는 날, 인천에 같이 계시면 매일 막걸리 받아드리겠다는 농담을 뒤로하고 오래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주로 내려왔다. 인천에 있어도 풍경은 비슷했을 것이나 이 정도면 살 만한 세상, 사람 냄새 나는 직장에 다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는 즐겨보지 않고 24시간 뉴스 채널을 좋아하는데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이 압도적으로 많다. 뉴스에 나쁜 소식이 많은 이유는 사람들이 불행에 대비하게 만들고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라는데 한편으로 수긍되는 주장이다.
내가 뉴스 채널을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뉴스 채널 장점은 거의 같은 내용이 반복되기에 TV를 켜고 건성으로 들으며 책 읽으면, 혼자 사는 기러기가 독방에서 느끼게 되는 적막감과 고독감을 없애주는 것이다. 대부분이 막말과 사건, 사고로 도배되어 있지만, 가뭄에 콩 나듯 ‘좋은 소식’도 나온다. 잃어버린 택배 물건을 찾아주는 경찰, 불우이웃을 돕는 학생들 이야기가 나오면 책에서 시선을 돌려 흐뭇한 뉴스를 보게 된다. 뉴스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작고 당연한 소식이라도 당연한 일을 하는 소시민들이 있는 한 아직 세상은 살만한 것 같다.
길을 헤매는 맨발의 치매 노인을 안전한 곳으로 모셔드리고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준 22세의 여자 바리스타가 있는 한,
차 사고로 불붙은 차량이 폭발할 가능성이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 정신 잃은 운전자를 구조하는 주위 사람들이 있는 한,
중국 프로구단이 3년 연봉 600억 원을 제시했으나 ‘국가대표 주장이 어떻게 중국 팀에’라며 거절한 축구선수가 있는 한,
출연료가 많지 않은 가수지만 45억 원을 기부한 연예인 가족이 화목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한,
‘임금이 있어 백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이 있어 임금이 있는 것처럼 우리 선수들이 있어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것 같다.’라는 U-20 국가대표 감독이 있는 한,
아직 세상은 살만하지 않은가.
논어에서 이상적인 인간형을 ‘군자’로 표현했는데, ‘군자’는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 삶의 중심이 잡혀 있는 사람이며 이타적인 사랑을 실천합니다. 어쩌면 위에 언급한 사람들은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 ‘군자’의 반열에 드신 분들이 아닐까 합니다.
이분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여의도에 계신 분들과 달리 군자는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입니다. 訥言敏行(눌언민행), 말은 느리고 행동은 민첩하다는 뜻인데, 군자의 행동방식은 머리가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라는 것이며 의역하면 ‘말은 적을수록 좋고 행동은 빠를수록 좋다.’가 되겠지요. 이런 분들이 계시는 한 대한민국은 따뜻하고 살만한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