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7. 걸어볼 만한 철학의 길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대로가 행복한 삶인가?’

by 물가에 앉는 마음

새벽에 천둥 번개 치며 비가 많이 왔다 덕분에 기온은 내려갔다, 사진으로 올라온 손녀옷차림을 보니 우리나라는 늦가을인데 교토는 한여름이고 모기도 많다. 어제만 세방 물렸다 아침에 일어나 세븐일레븐에서 현금을 인출했다. 일본으로 출국 전 백만 원을 환전했기에 남을 줄 알았으나 형편없이 부족하다. 료칸에서 카드로 계산하면 5%를 추가요금을 받는데도 다시 현금을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억울하지만 카드로 계산했다.

사찰은 현금만 받는다. 올해 초 남해 금산 보리암 입장료를 카드가 아닌 현금 또는 계좌이체만 가능하다고 불평했는데 일본 사찰과 비교해 보니 아무것도 아니다. 보리암 관계자에게 사과의 말을 전한다.

사찰 입장료는 보통 5~9천 원이며, 4명이 식당에서 간단한 것 먹으면 10만 원, 조금 무거운 것 먹으면 20만 원이니 현금 백만 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현금 내고 일원, 오원, 십원, 오십 원, 백 원, 오백 원짜리 동전을 챙겨야 하는 아날로그적인 번거로움도 오랜만에 느껴본다.


숙소에서 정원이 일품이라는 쇼렌인까지 10분도 안된다. 정원뿐 아니라 미닫이문과 병풍에 꽃을 수놓은 자수가 매우 아름답고 일본적이다. 툇마루에 앉아 정원을 한참 바라보았다. 쇼렌인에서 난젠지(南禪寺: 남선사)까지 20분 소요되나 가는 길에 옛날 철길이 있다. 옛 철길을 걸어보기 위해 걸었다.

난젠지도 매우 커다란 절이다. 청수사 규모를 보고 놀랬는데 난젠지 규모도 엄청나다. 특이한 구조물도 눈에 띈다. 일본은 물이 많은 동네인데도 이탈리아처럼 교량형 하늘 수로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현재도 상당한 수량이 빠르게 흐른다. 용수의 사용여부는 모르겠다. 표고가 꽤 되는데도 절안을 흐르는 작은 도랑에 민물게가 산다. 탐나는 자연환경이다.


난젠지에서 은각사까지는 30분 정도 걸어야 하는데 철학의 길로 걸어가면 운치가 있다. 작은아이와 예비사위하고 떨어져 가면서도 경로 검토를 덜했다. 내 불찰이다. 경내를 벋어나자마자 오른쪽으로 가야 하는데 감각에 의존해 큰 도로를 따라 걸었다. 더운 날 일본 도로를 땀나게 감상했다.

은각사는 아담하고 소박했다. 경내 둘레길 조경을 잘해 놓았다. 청수사보다는 덜 유명한지 사람도 덜 붐비고 가게도 적다. 청수사가 규모에서 압도적이지만 은각사는 조용하고 아담하며 정감 가는 사찰이다. 건물 크기도 위압적이지 않으며 사찰 뒤 둘레길에 오르니 시야가 시원하다. 규모는 남양주 수종사보다 조금 크게 보인다.

난젠지에서 은각사까지 땡볕을 걸어오느라 더웠다. 은각사 앞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녹차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여행 오지 않았다면 맛볼 수 없는 맛, 작은 아이스크림 한 개지만 여행이 선사하는 자유이자 선물이다. 아이스크림을 핥고 있자니 손주 유모차를 미는 할머니가 손주가 귀여워 죽는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같은 풍경이다.


은각사 구경 후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철학의 길’을 걸었다. 맑은 개천 따라 벚나무가 줄지어 서있다. 아직은 철이 일러 벚꽃 단풍이 조금 들었다. 진해에도 개천 따라 벚꽃 길이 있는데 이곳처럼 물 맑은지는 모르겠다 사실 철학의 길에는 특별난 구경거리가 없다. 개천변에 벚나무가 줄지어 있으며 개천에는 맑은 물이 흐른다. 공기 좋고 물과 하늘이 맑으니 깨끗한 환경이 볼거리이자 관광경쟁력인지 모른다.

철학의 길, 약 2킬로미터 사람이 많지 않아 조용하게 걷기 좋다. 길을 따라 카페와 음식점도 몇 개 있는데 분위기가 차분하고 조용한 것이 철학의 길과 동네 분위기가 닮았다. 약 30분 정도 한적하고 꽤 기다란 길을 천천히 걸으며 생각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대로가 행복한 삶인가?’를 생각했다 철학의 길이라 생각한 것이 아니라 매번 생각하는 것이지만 철학의 길이 아주 조용해 사색하기 좋았다. 유명한 명소인데 왜 이리 관광객이 적은 것인지? 일반적으로 사찰이 17시에 관람종료다. 철학의 길을 걸어 은각사나 난젠지를 관람하기에는 늦은 시간이다.

관광일정 경로를 잘못 잡아 많이 걷고 있기는 해도 한산한 철학의 길을 걷는 행운과 행복도 생겼다. 세상만사는 양은 음이 되고, 음은 양이 되기도 하나 보다. 한 가지 현상에도 양면성이 존재하여 좋은 것이 항상 좋지만 아니하고 나쁜 것 일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반대로 나쁜 것이 항상 나쁘지만 아니하고 좋은 것 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주역에 나오는 陰中陽 陽中陰(음중양 양중음) 이야기다.


철학의 길, 난젠지를 거쳐 숙소까지 걸어갔다. 오늘은 18킬로, 25000보 일본 와서 최고로 많이 걸은 날이다. 철학의 길을 걸으며 雜(잡) 생각도 했다. 일본 관광의 힘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조용한 동네 개울가를 ‘철학의 길’이라는 명칭을 부쳐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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