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정의란 무엇인가(1)

정의란 무엇인가(1) (마이클 샌델著, 김영사刊)

by 물가에 앉는 마음

모태신앙이니 어려서 성경을 접했다. 빛과 어둠, 땅과 물, 식물과 물고기, 새와 동물, 사람을 만들어 아담이라 칭하고 갈비를 빼 하와를 만드셨다. 여기까지는 동화책 수준이라 좋았는데 아담이 가인을 낳고 아벨을 낳고 셋을 낳았으며 930세에 죽었다. 가인은 에녹을 낳고 에녹은 이랏을 낳고…. 섹은 105살에 에노스를 낳고…. 구약성서 창세기를 읽다 질렸다. 사실 핑계 같지만 서양 철학, 문학 등을 좋아하지 않게 된 계기가 아니었나 한다. 아무튼,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이 책을 출간 10년 차에 읽게 되었다. 원래 공부 못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핑계가 많다.


오랜만에 서양 사람이 저자인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느끼는 점이 있다. 토론식 교육의 우월성이다. 이 책은 ‘학생들에게 정의를 다룬 뛰어난 철학서를 소개하고, 철학적 문제를 제기하는 오늘날의 법적, 정치적 논쟁을 다루는 수업내용’으로 하버드의 교육방식을 소개했다. 초격차 (권오현著, 쌤앤파커스刊)에서는 스탠포드의 교육방식을 소개했다. ‘그동안 어떻게(how)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만 교육을 받았으나, 왜(why)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for what)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깨우쳐주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공자도 제자들과 문답/토론식 교육을 했으나 일제 식민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how)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만 교육받았다. 왜(why), 무엇을 위해(for what)를 알려주지 않았으니 응용력과 창조력이 뒤떨어지고 배운 것을 현업에서 활용하지 못하는 인력만을 양산했다.

현실비판은 뒤로하고 본문으로 들어가 보자.


마이클 샌델은 27세 최연소 하버드대학 교수로 정치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의 정의(Justice) 수업은 20여 년 동안 최고의 명강의로 손꼽히고 있다. 학생들에게 정의를 다룬 뛰어난 철학서를 소개하고, 철학적 문제를 제기하는 오늘날의 법적, 정치적 논쟁을 다루는 수업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10강 정의와 공동선


시민의 정체성을 도덕적, 종교적 신념에서 분리하라는 요구는, 정의와 권리를 놓고 공개 담론을 할 때 자유주의적 공적 이성에만 충실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는 선에 관한 특정 견해를 지지하지 말아야 하며, 시민은 정의와 권리를 토론할 때 자신의 도덕적, 종교적 신념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익히 들어온 두 가지 정치문제를 생각해 보자. 문제의 근본인 도덕적, 종교적 입장을 정리하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낙태와 배아줄기 세포 연구문제다. 어떤 사람은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는 낙태를 금지해야 한다고 한다. 다른 사람은 발달 중인 태아의 도덕적 지위는 날카롭게 대립하는 도덕적 종교적 문제로 정부는 중립을 지키고 여성 스스로 낙태를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후자는 만약 발달 중인 태아가 사실상 아이와 마찬가지라면 낙태는 영아살해나 마찬가지이므로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잉태된 순간부터 인간이라는, 태아의 도덕적 지위에 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이 틀렸다고 암묵적으로 단정하는 셈이다.

그 가르침을 인정한다고 해서 낙태금지에 찬성한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중립성과 선택의 자유만으로 낙태 권리를 인정하는 근거로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여성 스스로 낙태를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태아도 인간과 마찬가지라는 주장이 잘못임을 증명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법은 도덕적, 종교적 문제에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만으로 충분치 않다. 그렇다고 낙태를 허용하자는 주장이 금지하자는 주장보다 더 중립적이라 할 수도 없다.

줄기세포 연구 논란도 마찬가지다. 반대하는 사람은 인간은 잉태 순간부터 생명을 얻는다고 믿기에 배아 파괴연구는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찬성하는 사람은 당뇨병, 파킨슨병, 척수손상을 치료할 길이 열릴 수 있다는 의학적 혜택을 거론하며 종교적, 이념적 간섭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낙태 논쟁처럼 배아줄기세포 연구 허용문제도 어느 순간부터 인간인가에 대한 도덕적, 종교적 입장을 정리하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다. 아무리 의학적 전망이 밝아도 인간의 사지를 절단하는 행위를 정당화 할 수 없으니 연구에서 파괴되는 착상前 배아는 아직 인간이 아니라는 답이 필요하다.


낙태와 배아줄기세포 연구에서, 근본적인 도덕적, 종교적 문제를 다루지 않고서는 법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두 경우 모두 중립은 불가능하다. 문제가 되는 행위가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가, 아닌가가 논란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는 도덕적 정치적 논란은 흔치 않다. 따라서 자유주의적 중립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낙태와 줄기세포 논란은 특별한 경우라며, 인간이 정의를 내려야 하는 문제를 제외하고는 도덕적, 종교적으로 어느 쪽도 편들지 않고 정의와 권리에 관한 논쟁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역시 옳지 않다. 동성혼의 논란을 생각해 보자. 국가가 결혼과 관련해 채택할 수 있는 정책은 세 가지다.

1. 이성혼만 인정한다.

2. 동성혼과 이성혼을 인정한다.

3. 혼인을 인정하지 않고 사적인 영역으로 돌린다.

미국은 2003년 메사추세츠가 최초로 동성혼을 인정했다. ‘3번’은 자유 이상주의의 이상적 해결책이나 적어도 미국에서는 순전히 가설이다. 칼럼니스트 마이클 킨슬리는 이 정책이 결혼을 둘러싼 대책 없는 논란에서 빠져나올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이 전적으로 사적인 일이라면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판사나 시민이 결혼의 목적과 동성혼의 도덕성에 관한 도덕적, 종교적 논란에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동성혼 반대에 선 사람 중 혼인제 폐지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비교적 소수지만 결혼의 목적과 결혼을 규정하는 선을 놓고 도덕적, 종교적 논란을 벌일 수밖에 없다. 메사추세츠 대법원 ‘굿리지 대 공중보건부’(2003)동성혼 재판에서 마셜 대법원장이 판결문에 쓴 사려깊고 의미심장한 견해를 살펴보자.

많은 사람이 혼인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으로 한정되어야 하며, 동성 간의 행위는 부도덕하다는 뿌리 깊은 종교적, 도덕적, 윤리적 신념을 갖고 있다.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이 동성끼리도 혼인할 권리가 있으며, 동성애자도 이성애자 이웃과 다르지 않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강한 종교적, 도덕적, 윤리적 신념을 갖고 있다. 그 어느 관점도 우리 앞에 놓인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우리 의무는 모든 사람의 자유를 정의하는 것이지, 우리만의 도덕률을 명령하는 것이 아니다.

마셜이 보기에 혼인은 합의된 두 사람의 사적인 약속이라기보다 공적인 인정과 승인이다. 혼인은 출산이 목적이 아니기에 동성혼은 이성혼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정의와 좋은 삶

어떤 이는 정의란 공리나 행복 극대화,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 말한다, 어떤 이는 정의란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라 말하고, 마지막으로 어떤 이는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공리주의적 이해방식은 첫 번째, 정의와 권리를 원칙이 아닌 계산의 문제로 만들고 두 번째, 인간 행위의 가치를 획일화하여 질적 차이를 무시한다는 단점이 있다. 자유에 기초한 이론들은 첫 번째 문제를 해결하지만 두 번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다.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이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가꾸어야 한다.

하나의 원칙이나 절차가 있어 소득, 권력, 기회를 정당하게 분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 원칙을 찾을 수만 있다면, 좋은 삶을 토론하는 과정에서 생기게 마련인 논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나 불가능하다. 정의에는 어쩔 수 없이 판단이 끼어든다.


구제금융이나 상이용사 훈장, 대리출산이나 동성혼, 소수집단 우대정책이나 군 복무, 최고경영자의 임금이나 골프 카트 이용권을 두고 어떤 논란을 벌이든, 정의는 영광과 미덕, 자부심과 인정에 관한 대립하는 어떤 개념과 밀접히 연관된다. 정의는 올바른 분배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올바른 가치측정의 문제이다.


공동선의 정치

정의로운 사회에서는 좋은 삶을 다 같이 고민한다고 하자. 그러면 어떤 정치 담론이 우리를 그 방향으로 이끌지를 묻는 문제가 남는다. 도덕적이고 영적인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는 정치를 구상하고, 더불어 그런 문제를 성이나 낙태만이 아니라 경제와 시민의 관심사라는 폭넓은 영역으로 정치를 구상하는 일인데 이 방면에서 가장 주목할 인물은 로버트 케네디였다. 그에게 정의는 단순히 국민총생산의 규모와 분배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더 높은 도덕적 목적과 관련이 있었다. 케네디는 1968년 3월 18일 캔자스 대학 연설에서 베트남 전쟁, 미국 내 폭동, 인종 불평등, 미시시피지방의 빈곤을 이야기했다. 그는 명백히 정의와 관련된 이런 문제들을 언급한 뒤에 미국이 그릇된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 GNP는 8000억 달러가 넘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대기오염, 담배광고도 포함됩니다. 문을 잠그는 특수 자물쇠와 이것을 부수는 사람들을 가둘 교도소도 포함됩니다. 삼나무숲이 파괴되고 무섭게 뻗은 울창한 자연의 경이로움이 사라지는 것도 포함됩니다. 네이팜탄과 핵탄두와 도시 폭동 제압용 차량도 포함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팔기 위해 폭력을 미화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포함됩니다. 그러나 GNP에는 우리 아이들의 건강, 교육의 질, 놀이의 즐거움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의 아름다움과 결혼의 장점, 공개 토론에 나타나는 지성과 공무원의 청렴성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해학과 용기도, 지혜와 배움, 국가에 대한 헌신과 열정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 그것은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측정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왜 자랑스러운가를 제외하고 미국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해줄 수 있습니다.


케네디는 부당함을 바로 잡으려면 삶에 안주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국가에 대한 미국인의 자부심을 일깨우며 공동체 의식을 호소했다. ‘물질적 빈곤을 없애려고 아무리 노력한들 더 어려운 일은 따로 있습니다. 우리 모두를 괴롭히는 (...)만족의 결핍에 맞서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는 석 달이 지나지 않아 암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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