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지도(1) (에릭 와이너著, 어크로스刊)
프롤로그: 행복하지 않아서 불행하다고?
짐도 싸고 식량도 챙겼으니 모험준비가 끝났다. 어느 늦여름 오후, 탐험 중에 행복을 조금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서 친구 드루를 억지로 끌고 신세계 탐험에 나섰다. 나는 모퉁이만 돌면 바로 행복이 있을 거라고 옛날부터 믿고 있었다. 그러니 그 모퉁이만 찾으면 된다.
여행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드루는 안절부절 못했다. 나더러 돌아가자고 애원했지만 나는 앞길에 무엇이 놓여있을지 궁금해 계속 가야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앞길에 위험이나 마법이 있는지 알아야 했다. 그날 내가 가고자 한 곳이 어딘지 몰라도 그곳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나는 지금도 믿고 있다. 볼티모어 경찰이 커다란 대로의 갓길은 다섯 살짜리 아이 둘에게 어울리는 장소가 아니라고 결론만 내리지 않았더라면.
후천적으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날 때부터 역마살이 낀 사람도 있다. 내 여행병은 정말로 병인지도 모르지만 그 여행병은 드루와 탐험에 나섰다가 좌절된 후 오랫동안 잠복기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대학을 졸업한 후 다시 나타났다.
전국공영라디오(National PublicRadio)해외특파원으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인도네시아를 다녔다. 불행한 나라들이었다. 손에는 수첩을 들고 어깨에는 녹음기를 둘러맨 채 전 세계를 배회하며 우울하고 불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너무나 불행한 나라에 사는 불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훌륭한 기사거리라 사람들을 울렸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이미 다 가본 분쟁지역이 아니라 아무도 소식을 전한 적이 없는 행복한 나라들을 찾아본다면 어떨까? 우리가 행복이라는 영양가 넘치는 스튜에 반드시 필요한 양념이라고 생각하는 돈, 즐거움, 영적 깊이, 가족 같은 것을 한 가지 이상 갖고 있는 나라들을 찾아본다면? 세금이 없는 나라에서 산다면? 실패가 장려되는 나라에서 산다면? 지나치게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나라에서 산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할까?
나는 스마일 상징이 등장한 1963년에 태어났다. 웃는 표정의 노란 얼굴은 내게 마법을 부리지 못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 아니고 행복했던 적이 없다. 인류역사를 찾아보면 나 같은 사람이 정상이었던 때가 대부분이다. 이 지구상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신과 소수의 행운아들뿐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누구나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현대의 독특한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행복하지 않음의 불행’이라고 표현되는 질병이다.
푹푹 찌던 어느 날 나는 짐을 꾸려 집을 나섰다. 다섯 살 시절에 시도했던 여행만큼이나 바보스럽기 짝이 없고 헛수고가 될 것임이 뻔한 여행을. 에릭 호퍼가 이런 말을 했다. ‘행복탐색이야말로 불행의 주요 원인중 하나다.’ 그건 괜찮다. 난 이미 불행하니까. 밑져야 본전이다.
에필로그: 아직 멀었어요?
여행하며 앞뒤 맞지 않은 일들을 많이 만났다. 스위스인 들은 틀에 박힌 삶을 사는데도 행복하다. 태국인들은 느긋하며 행복하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흥청망청 술 마시는데서 기쁨을 찾고, 몰도바인 들은 오로지 불행밖에 보지 못한다. 혹시 인도인이라면 앞뒤가 안 맞는 이 모든 현실을 소화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 머리로는 어림도 없다. 나는 속이 상해 유명한 행복학자중 하나인 존 헬리웰에게 전화를 건다. 어쩌면 그는 답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간단합니다. 행복에 이르는 길은 하나가 아니에요.’
탄소는 단단하게 배열되면 다이아몬드가 되고 헝클어놓으면 검댕이가 된다. 배열방법이 커다란 차이를 만들듯 장소도 그렇다. 각각의 장소에 존재하는 여러 특징보다는 그것을 어떤 비율로 어떻게 배열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배열방법에 따라 스위스가 되기도 하고 몰도바가 되기도 한다, 균형을 제대로 잡는 것이 중요하다. 카타르는 돈이 지나치게 많고 문화는 부족하다. 아이슬란드는 행복해질 권리가 없는 나라인데도 행복하다. 균형을 제대로 맞춘 덕이다. 작은 나라지만 분위기는 국제적이다. 어둡지만 않고 효율적이고 느긋하다. 미국의 진취성이 유럽의 사회적 책임과 결합했다. 완벽하고 행복한 조합이다
유토피아라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좋은 곳’이라는 뜻과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 그럴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은 낙원의 담 바로 앞에 있는 것 같다. 완벽한 사람과 함께 살면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되듯이 완벽한 곳에서 사는 것도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다. 우리는 다양한 곳에서 행복을 찾아낸다.
내 여권은 다시 서랍 속에 들어가 있다. 나는 집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하나씩 발견해가는 중이다. 매일 아침 같은 침대에서 눈을 뜨는 소박한 기쁨. 익숙함이 경멸뿐만이 아니라 만족감을 낳는다는 기분 좋은 깨달음.
하지만 여행을 하며 배운 것들이 가끔 뜻밖의 순간에 고개를 내민다. 며칠 전 아이팟이 깨지는 바람에 2000곡 이상 저장된 음악을 모두 잃어버렸다. 예전 같으면 길길이 날뛰었을 텐데 이번에는 화가 스르르 사라져 버렸다. 게다가 놀랍게도 태국에서 배운 ‘마이펜라이(신경 쓰지 마, 잊어버려)’라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낭패를 보더라도 옛날처럼 심하게 절망에 빠지지 않는다. 겨울 어두운 하늘에서도 아름다움을 찾는다. 신선한 과일과 채소도 새삼스레 음미하며 먹는다.
특별히 기억나는 부탄의 학자이자 암을 이기고 살아남은 카르마 우라가 이렇게 말했다. ‘개인적인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행복은 철저히 관계 속에 존재해요.’ 그 때 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간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카르마의 말을 문자 그대로 이해한다. 우리의 행복은 전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관련되어 있다. 가족, 친구, 이웃 그리고 사무실 청소원 가지도 모두. 행복은 명사도 동사도 아니고 접속사다.
그럼 행복까지의 거리가 아직도 먼 걸까? 나는 행복을 찾아낸 걸까? 난 지금도 터무니없이 많은 수의 가방을 갖고 있으며 갑자기 중병에 걸린 것 같다는 걱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일쑤다. 그래도 가끔 행복한 순간이 있기는 하다. 내가 100퍼센트 행복한 건 아니다. 아마 50대 50에 가깝다고 말하면 될 것이다. 모든 걸 고려했을 때 그 정도면 그리 나쁘지 않다. 그래 결코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