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에 대한 문제
유교를 신봉하는 학자들은 도교와 불교는 실제적이지 않고 형이상학적인 공허한 학문이라며 虛學(허학), 유교에 대해서는 진실하고 현실적인 실천의 학문이라는 의미로 實學(실학)이라 칭한다. 제목은 ‘고전이 어려운 이유’라 했지만 논어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이다.
四書三經(사서삼경)을 처음 구경한 것은 중학생시절 아버님 서재에서 였다. 당시에는 원본에 충실한 번역본이라 도무지 흥미를 가질 수 없었고 고리타분한 고전을 읽는 사람도 드물었으며 선친께서도 고전 읽을 것을 권하지 않으셨다.
고전은 100년 이상 심지어는 기원전시대 이야기이므로 요즘과 시대상황이 매우 다르다. 하지만 시대상황까지 친절하게 설명한 번역본이 넘쳐나므로 이는 장애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또한, 시공을 초월하고 관통하여 살아남아야 고전이라 칭하니 요즘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이 고전이다.
당대에만 한정적으로 적용되는 철학이나 이념, 문학은 고전이 될 수 없다.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사멸되니 전승조차 되지 않는다. 고리타분하며, 시대상황에도 맞지 않고, 어렵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으나 공부해보니 고전이 어려운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1. 불친절과 느림의 문제
속도 경쟁시대에 살기에 자판기처럼 즉시 빼내어 쓸 수 있는 자기계발서에 익숙해져 있다. 자기계발서는 인스턴트 음식처럼 즉각적인 행동지침을 알려 주는 반면 고전은 친절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가마솥에 며칠씩 고아 만드는 슬로우 푸드와 같다. 대유법, 비유법, 의인법으로 포장된 내용을 곱씹어 자기 것으로 만들고 이를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하는 습관화의 오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같은 책이라도 읽을 때마다 해석을 달리할 수 있어 자기 것으로 만드는 시간이 오래 소요되며 습관화까지는 하품 날 정도의 세월이 필요하니 느긋한 성격이 아닌 경우에는 중도에 배움을 포기 하게 된다. 고전 공부를 시작할 때 이러한 불친절과 느림을 각오하지 않는다면 책 한권을 떼기 어렵다.
인내심을 키우되 많은 지식을 얻으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중국 북송의 명 제상 조보는 “논어를 반만 알아도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고 했다. 조보는 지방 아전출신인데 전쟁터를 전전하느라 가방끈이 짧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곤란한 문제가 생기면 논어에 나오는 말씀을 거울삼아 판단을 내렸다. 태종이 임종할 때 조보는 신에게 논어 한권이 있사온데 반으로 태조를 도와 천하를 도모했고 나머지 반으로 폐하를 도와 천하를 다스렸다고 고백했다.
고전을 반만 읽고도 명제상이 된 사람도 있다. 많이 읽는 것도 필요하지만, 책 한권이라도 제대로 읽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실천에 대한 문제
동양고전을 좋아하니 격주로 보내드리는 책을 요약한 내용에 君子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이를 읽은 후배님들 답장 대부분은 ‘내용은 좋으나 실천하기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연한 현상이며 손과 발이 움직이는 실천은 누구에게나 어려운데 마음까지 움직여야 하는 고전은 더욱 어렵게 다가온다. 책 읽고 공부만 해서 세상이 밝아진다면 온 세상 사람들은 눈이 부셔 살아가기 어렵다. 세상은 공부하는 학자에 의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조그만 것이라도 실천하는 행동가에 의해 혁신된다.
중국에서 이상적인 인간형이 논어에서 말하는 ‘군자’라면 우리조상들이 꿈꾸었던 가장 이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은 ‘선비’였다. 끊임없는 배움,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옳고 그름을 보는 객관적인 시각... 욕심을 자제할 줄 아는 사람 즉, 배운 것을 실행하는 사람이 군자이며 선비이다. 머릿속에 지식만 들어있는 사람을 군자, 선비로 호칭하지 않는다. 고전에서 배운 것을 행하는 사람이 군자이며 선비이다.
논어에서는 주변을 이롭게 하는 배움인 爲己之學(위기지학)의 모습을 군자라 했다. 명문대 출신임을 과시하거나 자랑하려는 의도의 배움을 爲人之學(위인지학)이라 하여 잘못된 배움이라 했다. 배움을 仁과 義로 실천해야 하니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나를 변화시키는 것도 조그마한 실천에서 시작된다.
3. 양심의 문제
천하의 고승들도 공부하다 졸고, 양심적인 사람이라도 주위에 사람이 없다면 조그마한 Rule을 깨기 쉽다. 속도위반 스티커를 받지 않은 탈법, 범법하지 않는 아주 양심적인 대한민국인은 운전면허가 없는 사람이다.
고전이 어렵게 다가오는 마지막 이유는 철저한 자기관리를 요구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大學, 中庸에서 愼獨(신독: 군자는 혼자 있을 때 더욱 신중하고 조심한다.)의 자세를 가르치고 있는데 이것은 남이 보지 않을 때에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으로,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더욱 잘 처신해야 한다는 愼獨은 우리를 편하게 놓아두지 않는다.
하늘과 땅을 속일 수 있다 해도 자신을 속일 수 없다는 이야기는 불경에도 나온다. 남을 속일 수 있어도 나를 속일 수 없다. 물론 눈 질끈 감고 선을 넘을 수 있지만 무의식적으로 양심에 거리끼는 행동을 하기 전 주위를 살펴보는 것은 아직 우리에게 愼獨의 정신이 남아있다는 증거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면 ‘군자’, ‘선비’의 반열에 든 것이나 고전을 공부하게 되면 하늘을 우러러볼 빈도가 많아지게 된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고전을 공부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기원전 법가사상을 기반을 둔 정책을 펼친 진시황시절의 분서갱유는 자신의 정책에 반기를 든 학자들을 생매장하고 유교관련 책들을 불태웠다. 진시황시절 ‘맹자’도 禁書였다. 사서삼경의 내용이 후대 왕들은 선대 성왕들의 덕치를 따라해야 하고 귀족들도 자기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것이었으므로 껄끄럽기 그지없는 책이었다. 특히, 맹자에는 임금이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지 못하면 바꾸어도 무방하다는 혁명적인 생각이 들어있었기에 명나라 때도 ‘맹자’는 금서였다.
오래전, 영광스럽게도 한전KPS인상을 받았다. 당연히 업무도 잘 해야 하지만 불법을 저지르지 않았으며, 청렴하고 방정한 태도 등이 선정기준인데, 솔직히 상을 받기 전 그리 방정하지 않았으며 상에 견줄 만큼 모범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신 없다. 대신 상을 받은 후 불법을 멀리하고 여자 있는 술집 출입을 금한다는 나만의 기준을 만들었다. 청백리와 청상과부 같은 금욕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지만, 후천적으로나마 한전KPS인이 되기 위해 허벅지를 송곳으로 찌르는 노력이 필요했다. 愼獨의 자세를 견지한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었지만 이미 상을 받았기에 감내해야할 몫이었다. 20년이 지나고 되돌아보니 愼獨이 내 삶을 지탱해준 버팀목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620회를 이어가며 여러분들에게 드리고 싶었던 말씀은 ‘출근이 기다려지는 직장’, ‘사람 냄새 나는 조직’을 만들어가기 위해 ‘양보, 배려, 역지사지’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람직한 조직문화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기 어렵고 우리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바람직한 조직문화 속에서 존경받는 선배와 사랑받는 후배의 관계는 화목한 가정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직장 분위기가 마치 사는 집같이 편안하고, 선, 후배가 한 가족같이 사랑으로 맺어졌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쉽게 극복할 수 있을 듯합니다.
35년 전 생소한 곳에 입사한 나는 이방인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김홍일, 민병운, 한균석, 고진환, 유민준, 권오형, 유승봉, 태성은, 김오 여러 선배님께서 제 옆을 지켜주셨고, 기술기획처, 고리, 한울, 한빛원자력사업처, 전력사업처. 플랜트서비스센터, 종합기술원 등 수도 없이 많은 동료와 후배들 역시 제 옆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옆에 서 있다는 것!
이것 하나만으로도 커다란 용기이며 위안이었습니다.
든든함이었고 안심이었습니다.
여러분으로 인해 행복했습니다.
** 퇴직하며 남긴 마지막 편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