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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6. 조그만 성공과 성취부터

작은 일을 할 때도 그 의미의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졸업 후 입사한 첫 직장에서 어떤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내 자신도 교육과 실습을 거쳐 하나하나씩 업무기술을 습득해 나갔을 텐데 시간이 많이 흘러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분명 그랬을 것이다. 다행히 훌륭한 멘토를 만나서 보고, 따라 할 기회가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입사하자마자 현장 설비들을 설명해주신 분은 퇴사 후 사업을 하고 계신 김홍일 사장으로. 부지런과 성실함을 따라갈 사람이 없었던 좋은 멘토였다. 부서배치 후 업무기술을 가르쳐 주신 분은 민병운 부장으로 독하게 공부를 많이 시킨 분이다. 말 없는 성실함과 꾸준함은 고진환 부장님, 업무 지식 면에서 전력 업계 최고라던 유민준 처장님에게서는 전략적 사고를, 푸근한 마음의 한균석 처장님으로부터 바른 길과 형님 리더십을 배웠다. 시간이 흘러도 빛나는 멘토들이다. CEO 재임 3년 동안 성과를 재촉하지 말라는 발칙하고도 당돌한 제의를 흔쾌히 받아주셨던 태성은사장님 또한 훌륭한 멘토셨다. 이외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을 모실 수 있었던 것은 ‘운빨’만 좋은 것은 아닌 것 같고 貴人(귀인) 만나는 재주는 분명 타고 난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분들은 조그만 일부터 성취를 맛보게 해준 분들이셨다. 물론 직급과 경력과 능력에 맞게 조그만 일부터 시작해 크고 복잡한 업무들이 주어졌겠지만 절묘하게 내 능력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의 과제를 부여해준 것 같았다. 포기하지 않고 허덕대며 따라갈 수 있을 정도의 과제들을, 과했다면 포기했을 테고 수준이 낮았다면 자만심이 생겼을 텐데 적정했다고 판단된다.

갓난쟁이가 어떻게 기어 다니고 비틀거리며 걸음마를 배우는 과정을 생략할 수 있겠는가? 또한, 멘토들은 업무가 실패로 끝나지 않도록 나를 이끌어주어 업무를 배우는 과정에서 성취감을 맛보게 해줬다. 적어도 실수는 있었지만 커다란 실패가 없었던 것은 선배들의 코칭 덕분이었다.


좋은 직장의 정의는 주관적 판단에 의한 것으로 ‘워라밸’, ‘정당한 대우’, ‘9 to 6’, ‘복지제도’, ‘고용 안정성’ 등 여러 조건이 있을 것이다. 소위 ‘신의 직장’이라는 공기업에 근무하고 있지만 여러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된다. 우스갯소리로 하는 ‘신이 숨겨둔 직장’에서는 모두 구현 가능한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러 설문조사를 봐도 ‘일이 재미있는 곳’,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직장선택의 우선 조건이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곳은 응답 비율이 현저하게 낮았다.

철없던 시절, 솔직히 더 이상 공부하기 싫었고 돈을 많이 주는 직장이라 하여 입사했으며 꿈을 이뤘다. 당시 우리 회사 보너스는 900%였고 기술직 연봉 수준 국내 10위 이내로, 해운대에 13평짜리 아파트 두 채를 구입할 수 있는 금액이 신입사원 연봉이었으니 꿈을 이룬 것이다. 많게는 1년에 20번씩 월급봉투를 받았으니 35년간 6~700번의 봉투를 받았지만 기억에 남는 봉투가 있었는가? 묻는다면 명쾌하게 ‘없었다!’라 답하겠다. 기억에 남는 것들은 멋지게 성취했던 업무들뿐이다. 월급 많이 준다 하여 입사한 것은 맞지만 월급 때문에 35년간 일했던 것이 아니라 성취감. 성취로부터 얻는 만족과 행복 때문에 일을 했다는 것이 정확한 이야기일 것이다. 사람은 성취감을 느낄 때 직무만족도가 높아지며 행복이 커지고 능률도 높다. 그러니 ‘성취감으로 일한다.’라는 말이 과장은 아니므로 일을 시키는 멘토와 상사는 이 부분을 눈여겨봐야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죄수에 대한 형벌은 한 가지 일을 반복시키는 것 즉, 구덩이 파고 되묻기를 반복적으로 시키는 것이다. 아무런 의미 없는 일을 무한 반복으로 시킬 때 사람은 꿈도 희망도 용기도 가질 수 없고 좌절과 고통을 주게 된다. 이러한 형벌은 그리스신화에도 등장한다. 신들을 기만했던 시지프스에게 신들은 가장 엄한 형벌을 내렸다. 있는 힘을 다해 커다란 바위를 산 정상에 올리면, 아침에 출근한 신이 다시 바위를 산 아래로 굴린다. 굴러 떨어진 바위를 산 정상에 다시 갖다 놓아야 하는 형벌. 조그만 성취가 커다란 성공을 불러오며, 조그만 성취는 꿈, 용기, 희망을 가져올 수 있는데 형벌로 이것을 없애버린 것이다. 사람에게서 꿈, 용기, 희망을 빼앗는다면 어떻게 될까?

시지프스 콤플렉스, 되풀이되는 인간의 불행을 비유하여 시지프스의 신화로 표현한다. 회사 내 조직도 실패했다는 사실을 은폐하거나 실패를 부정하고 싶은 구성원들의 잘못된 편견 때문에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원인을 분석하여 대안을 찾는 과정을 갖지 않으면 작은 실패는 더 큰 실패로 이어진다. 실패에서 배우려 하지 않거나 배울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다면 거듭된 실수로 인해 조직의 생존마저 위협받는 큰 위기를 만날 수 있다.


‘시지프스 콤플렉스’를 ‘실패의 반복 또는 실패의 습관화’로 표현한다면, 우리는 반대의 길로 가야 한다. ‘이기는 습관’, 이기는 것도 습관인데 이기지도 못해본 자가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조그마한 성과라도 냈던 사람이 성취감을 맛보며 이것이 반복되어 습관화된다면 커다란 성과를 만들 수 있다.

작은 일을 할 때도 그 의미의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모르고서는 일을 통해 성장할 수도 없고 즐거움을 얻을 수도 없다. 따지고 보니 직장생활 35년은 조그만 성공과 성취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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