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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Apr 16. 2022

592. 제2의 전성기, 다시 시작하면서

별빛 좋은 밤에 다시 시작한다.

 60 이후, 일선에서 물러나면 가진 능력을 사회에 환원하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필가 김형석 교수님은 장수 하셨기에 나이에 대해 관대하셨고 그만큼 현역생활을 오래 하셨다. 

‘정신적 성장과 인간적 성숙은 그런 한계가 없으므로 인생의 황금기는 60에서 75세 사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므로 성장이 정체되는 75세를 기준으로 보면 늙기 시작하는 것은 75세부터이고 80세가 되면 노년기에 접어들게 된다.’ 

 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이나 인생의 황금기라고 해석하는 것은 관점에 따른 문제이기는 하나 60이 변곡점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제1의 전성기를 정신없이 보내느라 아득하게 멀리 보였던, 아니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던 60살이 되었다. 還甲(환갑)은 태어난 해로 다시 돌아왔다는 뜻이니 다시 시작하는 나이라고 해석할 수 있으니 제2의 전성기가 시작된 것이다. 


 내 버킷리스트에 두 나라가 있다. 집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곳은 온타리오와 퀘벡주가 있는 캐나다 동부다. 예전 회사 업무차 4개월간 머물렀던 지역으로 광활한 대지와 깨끗하고 원형 그대로 보존된 자연, 그리고 여유로운 삶이 있는 곳이다. 내가 가고 싶은 나라는 포르투갈로 축구를 좋아해서 가고 싶은 것은 아니며 호나우두 열성 팬도 아니다. 왜 그런 상상을 하게 되었는지 몰라도 포르투갈은 조용하면서도 인간적인 삶을 살 것 같은 나라였다. 관광으로 유명한 나라 스페인 옆 동네 포르투갈, 여행을 준비하는 집사람의 ‘포르투갈? 뜬금없다.’라는 표현에 동의한다.


 나라 면적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고 인구는 1천만 명에 2016년 기준 국민소득은 2만 불이니 경제력 면에서 우리나라와 비교되지 않는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종합적인 보고서 중 하나인 ‘Expat Insider 2017’ 에 따르면 외국인으로부터 가장 삶의 질이 높다고 판단된 국가는 포르투갈이라 한다. Expat Insider 2017는 188개 국가 12,500명을 대상으로 ‘외국인에게 가장 좋은 나라와 나쁜 나라’, ‘삶의 질이 높은 나라’, ‘가족생활에 적합한 국가’, ‘개인 재산 및 생활지수’, ‘외국인에게 안전한 나라’, ‘외국인에게 관대한 나라’별 순위를 작성했다. 의외로 포르투갈이 종합 1위였고, 대만, 스페인, 싱가포르, 체코, 일본, 오스트리아, 스위스, 코스타리카, 독일이 뒤를 이었다. 조사항목(factor)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지만 다른 조사기관의 발표를 봐도 포르투갈의 ‘삶의 질’은 상위에 있다.

 영국의 대학교수가 건강, GDP, 교육 등 3가지에 대한 조사결과를 보면 나라별 행복지수에서 부탄이 8등, 경제 대국 일본이 90등, 우리나라가 102등을 했다. 행복의 척도 기준을 ‘경제력’에 놓는다면 부탄은 당연히 하위권에 있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돈이 많고 물질적인 풍요가 행복하다는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과 한국은 돈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돈이 더 많아야 한다.’는 강박으로 인해 행복해하지 않다는 것이다.


 버킷리스트의 한 줄이 포르투갈에서 살아보기였으므로 목적지는 내가 정했고, 세부 계획과 일정은 여행을 좋아하는 작은 아이와 집사람이 책임졌다. 머리 식히고 새 출발을 하기 위해 가는 길이니 걸맞은 역할분담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보고, 먹고, 체험할 것인지 전혀 모르고 떠난 여행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 몰랐다, 재미있다기 보다는 하루하루가 서프라이즈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酒黨(주당)이니 포트와인으로 유명한 포르투(Porto)의 와이너리체험이 빠질 수 없다. 포도주는 지하창고 오크통 속에서 향긋하고도 콤콤한 냄새를 머금고 익어간다. 포트와인은 포도주에 70도의 브랜디를 붓기에 도수가 높고 저장성이 좋은 것이 특징이다. 오크통 냄새가 진하게 배어있는 빈티지 포도주 맛이 일품이고, 취기 오른 얼굴만큼이나 붉게 물드는 노을이 평화롭다.

 점심과 저녁은 전통음식인 문어요리, 정어리구이, 감바스, 스테이크를 먹지만 아침 식사는 동네 빵집에서 주민들과 같이 빵을 먹는다. 천연발효 빵 가격이 한국의 1/10밖에 하지 않아 굶어 죽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저녁에 먹을 간식을 준비하러 장을 봐도 터무니없이 낮은 물가가 사람을 당황하게 한다. (크로아티아에서 바비큐를 하려고 구매한 소고기, 돼지고기, 버섯, 마늘, 양파, 맥주 가격이 2만 원이다. 우리나라는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모터보트를 타고 관광하는 알부페이라 해식동굴,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도 소개되었던 신기한 풍경이다. 보트를 운전하는 젊은이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회사에 다녔는데 업무에 쫓기며 사는 것이 더 이상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 새로 가진 직업이 보트 선장이란다. 관광객들을 싣고 묘기 부리듯 동굴을 드나드는 일상에서 행복을 찾았다는데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다. 

 모두가 행복할 것으로 보이는 포르투갈에서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행복한 직업을 찾은 젊은이를 만났다. 한편으로 반성했다. 나는 60년 헛살았다. 젊은 친구가 저렇게 적극적으로 생각하는데 나는 너무 소극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다. 헬조선이라 이야기하는 젊은 세대들의 행복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모두 다섯 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산속 외진 곳, 옆집 닭 우는 소리에 잠이 깨어 마실 나가니 농부들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하다. 울타리 작업을 하는 농부에게 양해를 구해 마당에 들어서니 적은 수의 칠면조, 닭, 오리, 개, 고양이, 말을 키우는데 규모는 크지 않고 살림살이는 초라할 정도로 소박하다.

 대서양 너머 해가 진 후, 산속 외진 곳 별빛은 유난히 밝았다. 어릴 적 보았던 수많은 별이 어디 갔나 궁금했었는데 멀리 이곳까지 왔나 보다. 무엇엔가 쫓기듯 사느라 밤하늘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제2의 전성기를  별빛 좋은 밤에 다시 시작한다.


* 2년 반이나 지난 이야기 이며 포르투갈이야기는 별도로 썼기에 중복되는 내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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