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가에 앉는 마음 Apr 22. 2022

588. 철들지 못한 耳順(이순)

사람은 지독할 정도로 주관적 동물이라는 말이다.

 나이의 異稱(이칭)으로 보면 실제로는 耳順을 넘어 還甲(환갑)을 맞았지만 ‘還甲’이 갖는 구닥다리 이미지로 인해 제목을 바꿨다. 귀가 순해져 듣는 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의 ‘耳順’은 논어에서는 ‘경륜이 쌓여 사리판단이 성숙하고 남의 말을 받아들이는 나이’를 말한다. 나이 40이 不惑(불혹: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다.)이며, 나이 50이 知天命(지천명: 하늘의 뜻을 깨닫는다.)으로 ‘판단이 옳고’, ‘하늘의 뜻을 아는 것’만 해도 대단한 데 유교에서는 ‘남의 말을 받아들이는 경지’를 ‘하늘의 뜻을 아는 것’보다 높게 평가했다. 물론, 나이 70인 從心(종심)이 ‘뜻대로 행해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나이’이니, 나이 60은 아직 함부로 행동(경거망동)해서는 안 되는 어린 나이지만 ‘옳으면서도 객관적 판단이 가능한 나이’로 인정한 것이다. 


 ‘나이 60이 되어야 남의 말을 받아들인다.’라는 것을 다르게 표현한다면 사람은 지독할 정도로 주관적 동물이라는 말이다. 물론 사람은 자기주관이 있어야 하지만 사회생활은 객관적 판단을 요구하므로 자기주관을 담금질해야 한다. 담금질은 물론 공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터득되는 것은 아니다. 심성을 맑게 하여 자기주관을 뚜렷이 하되 객관을 벗어나지 않도록 공부해야 한다. 뜻을 세우고, 올바른 판단을 하며, 하늘의 뜻을 아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라 50년을 공부한 결과이다. 

 주관적이 나쁘고 객관적이 좋다는 식으로 들린다면 언어와 문장구사력의 한계를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면 ‘正義(정의)’란 그 사회에서 궁극적으로 실현해야 할 규범 및 가치를 말한다. 여기에서 객관적 정의란 인간의 상호관계, 사회관계에서 옳고 그름을 말하는 것이다. 주관적 정의는 옛날부터 덕으로서, 인간의 성정으로서의 정의를 말하는 것으로 주관적 정의는 객관적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성정을 말한다. 


 도입부가 너무 길었다. 사실 ‘나이 60’은 실감 나지 않는, 현실이 아닌 상상 속의 나이였기에 막상 닥치고 보니 내심 당황스러운 나이다. 막연하나마 상상 속 60의 모습은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고상한 은발의 간달프 같은 賢者(현자)였는데 현실은 달랐다. 실망스럽게도 내 60은 여전히 앵그리 버드 내지는 싸움닭 모습에 가깝다. 지인들의 60 축하연에 여러 번 참석했지만 ‘내 나이 60’은 준비되어 있지 않기에 당황스럽고 생소하기만 하다. 

 예전, ‘인성검사, 페르소나’라는 제목의 이야기에서 신뢰할만한 인성검사 이야기를 했었는데 검사 결과 “객관적인 사고, 신중성, 현실적 사고, 다중 업무수행 기피, 엄격한 자기통제, 타인에 대한 긍정적 시각, 통찰력, 성찰력, 세밀한 업무 선호”는 정상범위를 초과하여 아주 높았다. 

극히 높은 객관적인 사고에도 불구하고 내 주관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철 침대만큼이나 견고하고 강하다. 남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객관적 사고를 하려고 노력하지만, 주관적 가치판단 기준을 벗어난 사항에 대해서는 귀를 닫아버린다. 또한, 상대방이 강하게 나오거나 강요하는 수준이면 내면에 잠자고 있던 앵그리 버드가 깨어나 치열한 싸움닭이 된다. 이런 성격을 고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많이 미흡하다. 아직 듣는 기술이 부족하고 남의 말을 받아들이는 경지에 다다르지 못한 탓이니 ‘耳順’이란 나이가 낯선 것은 당연한 것 같다.


 최근, 오랜 기간 친하게 지내던 社友(사우)가 벌인 행동이 상식적이지 않다고 판단되어 그들과의 관계를 주식시장에서 손절매하듯 정리했다. 물론 주관적 가치판단 기준 하에 내린 결정이다. 내게 직접적인 손해를 입히지는 않았다 해도 사회규범이나 상식에 어긋나는 언행을 하는 사람과는 같이 어울리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적치된 회비도 남아있으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막걸리 한잔하는 정도야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하는 지인의 조언도 있었지만 내 판단 기준과는 맞지 않는듯하다.

 耳順이 의미하는 ‘남의 말을 받아들이는 경지’가 되지 못한 것이니 이것 하나만 보더라도 나는 아직 나잇값을 못하고 있는듯하다. 그래서 아직도 耳順이 낯설고 생경하기만 하다. 오늘은 공부하려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