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읽고 쓰기

570. 舌禍와 筆禍

마치 5공으로 회귀한 느낌이 든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史官(사관)은 조선시대 역사의 草稿(초고)를 작성하던 관직, 관리를 뜻하며 藝文官(예문관)의 檢閱(검열), 承政院(승정원) 注書(주서)가 사관이다. 사관은 왕의 언행과 정치, 백관의 행정 등 시정을 기록하는 일을 했으며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조선실록, 승정원일기와 같은 역사책이 있는 것이다. 사관이 기록한 史草(사초)는 시비를 가리지 못하고, 고치지도 못했으며, 사관의 기록행위도 면책권이 있어 신분이 보장되었다. 오늘날에는 국회 속기사가 국회의원들이 말하는 모든 것, 심지어는 욕설까지도 기록 하며, 18대 대선 쟁점이었던 NLL문제도 청와대 통치기록으로 남겨진다. 행정부나 회사의 모든 행정업무도 기록으로 보존되니 왜곡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으며 집요한 언론이 조선시대 사관 역할을 대신하고 있어 비밀도 없고 감출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태종4년에 사냥을 좋아하던 태종은 노루를 쫒다가 말에서 떨어졌는데 태종의 첫마디가 ‘사관이 이 일을 알게 하지마라’였으나 ‘하지마라’ 까지 실록에 기록될 정도로 조선시대 기록은 냉정하고 정확했다. 세종 때는 친형인 양녕대군이 서울에 머무는 것에 대해 상소가 빗발치자 이를 불태워 버리라고 했는데 신하들이 상소를 태워버리라 해도 사관이 모두 기록을 할 터이니 무슨 이익이 있겠냐고 하자 세종은 불태워 버리라는 명을 거두었다. 사관들이 작성한 史草는 정리되어 실록으로 발간되고 史庫(사고)에 보관된다. 왕은 본인에 대한 실록을 볼 수 있는 권한이 없었고 몇몇 왕은 실록을 보려 했으나 신하들 만류로 일부 내용만 사관을 통해 보았을 뿐이다. 이는 왕이 본인에게 불리한 기록을(역사를) 바꾸려는 시도를 막는 장치였다. 이렇게 제도를 엄격하게 운영해도 사관을 껄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귀양가는 사관도 있어 속칭 筆禍(필화)를 당하기도 했다.


舌禍

예전 차장시절, 사보에 게재된 제 글을 보고 사장님께서 직접 전화 하셔서 저녁에 초대하셨다. 글의 내용은 아마도 疏通(소통)과 관련된 내용이었을 텐데 굳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내용도 가물가물하다. 당시 회사 이슈는 노동조합과의 임금협상으로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어 사장님께서 골치아파하셨는데, 분명 사장님께서 저에게 노사관계와 임금협상에 대해 의견을 들어보고 싶어 하실 것으로 짐작 했다. 식사 하면서 사장님께 드린 말씀이 위원장과 목욕을 같이 해보시라. 남자들끼리 벌거벗고 이야기하면 서로 솔직한 이야기가 오고갈 것이니 해결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갑자기 찬바람이 코끝을 지나가는 분위기가 되었다. 순간, 말을 잘못 꺼냈다는 판단을 했으나 이미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이것은 분명히 舌禍였다. 가뜩이나 노사문제로 골치 아파 하시는 사장님께서 마음의 위로를 받고자 저를 불렀는데 사장님께 솔직해지시라는 말씀을 드렸으니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사장님 말씀을 먼저 듣고 화제에 맞는 의견을 피력해야 하는데 듣는 능력은 부족하고 입이 빨라 벌어진 舌禍였다.

찬바람이 싸늘히 불자 머리는 하얗게 되었고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정신없이 허둥대기만 한 것 같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아무에게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한참 젊고 애송이였던 차장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고 오랜 기간 사장님을 뵈면 가슴이 콩닥거리는 울렁증이 생겼다. 내가 자초한 舌禍였기에 울렁증을 하소연 할 데가 없었다.


筆禍

아끼는 후배가 筆禍에 휩싸였다. 회사 업무에 대한 所懷(소회)를 기록해 놓은 자료를 모아 限定版(한정판)으로 인쇄하여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에게 배부했다. 나에게도 한권을 주고 가서 책을 뒤적거려보니 내용이 공개되면 후배가 곤란해질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얼마 있지 않아 후배가 사관이 기록한 실록을 임금이 보지 못 하게한 사유를 몸소 알게 되었다. 역사에도 영광의 역사가 있고 치욕의 역사가 있듯 회사도 영욕을 겪으며 좋은 사례도 있고 나쁜 사건도 있으니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은 좋은 사항을 본받고 나쁜 사항은 반면교사로 삼자는 것이 후배의 의도였는데 책자화 된 기록들이 공개되니 나쁜 사례로 거명된 사람들의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태종이 사냥 중 낙마한 것은 위신에 관련되는 일이니 기록하지 말도록 지시 했기에, 태종은 그러한 상황이 실록에 기록되는지 모르고 눈을 감아 문제가 없었지만 선배들이 현직에 서슬 퍼렇게 앉아 있는 상태에서 내용이 공개되니 불편한 사항이 벌어진 것이다. 후배는 책자발간과 배부경위에 대한 감사실 조사를 받았으며 책을 받은 나도 확인서를 썼다. 확인서를 쓰는 짧은 시간,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나에게 있었던 舌禍사건도 스쳐지나갔고 후배가 본인 돈으로 책을 만든 것은 회사를 사랑해서 한 것인데 조사 결과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른다면 나는 후배에게 어떤 도움을 줘야할까? 나는 매주 회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회사 게시판에 올리는데 나도 이야기를 그쳐야 할까? 내가 올리는 이야기는 회사전반에 대해 은유법이나 예시법을 사용하니 괜찮은 것인가? 나도 筆禍를 입기 전에 글쓰기를 중단해야 하나?

세종이 上疏文(상소문)을 태워버리라 했지만 기록을 없애지 못한 것처럼 결국 후배의 책은 모두 회수되어 파기되었지만 영욕의 세월 속에 숨어 있는 뒷이야기는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주 글을 올리는 곳이 몇 군데 된다. 사내에서는 친한 동료들에게 편지로 보내고, 사내 게시판에 올려놓고, 이곳 종합기술원에서는 조직내 게시판에 글을 올린다. 개인적으로는 메일로 친인척, 친구들, 교육을 같이 받았거나 인연이 있는 사외 지인들, 제가 등단했던 출판사 홈피에 등록하니 개인적 비밀은 없는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편지를 먼저 받아보는 집사람의 사전 검열을 받아 ‘그런 내용을 올리면 회사 내에서 논란이 될 테니 글을 내리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있는 경우에는 사내에 배포하는 내용과 사외 배포내용이 다른 경우가 발생된다. 설화, 필화, 사전검열 이야기를 하니 마치 5공으로 회귀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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