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없기도 하지만 난감한 상황이다.
얼마 전 ‘君君臣臣 父父子子(군군신신 부부자자)’라는 글에서, 책속에서 길을 잃었다고 이야기 했었다.
100권은 결코 적은 독서량이 아니다. 한국 성인 평균독서량(조사기관마다 차이가 있지만 연간 1~2권 수준)으로 따지면 평생 읽을 분량이다. 장자는 생활이 빈한해 소유한 책이 많지 않았으나 친구 혜시는 책이 많았다. 男兒須讀五車書(남아수독오거서)의 주인공이 혜시인데 당시의 책은 대나무를 쪼개 만든 竹簡(죽간)에 쓰인 것으로 오거서는 현대 책 100권도 되지 않는 분량이니 장자시대 최고 지식인만큼 읽은 것이다. 아무튼 100권을 읽자 어느 정도 감이 잡히고 다시 100권을 읽자 세상 이치들이 눈에 들어오는 듯 했다. 속칭 도를 트기 위해 다시 백 권을 읽자 아이러니 하게도 책속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정말로 길을 잃었으니 어처구니없기도 하지만 난감한 상황이다. 세상 사는 길을 찾고자 열심히 책을 읽었는데 오히려 책속에서 길을 잃다니... 10년 넘게 공부해서 어느 정도 감이 잡히고 눈에 들어온 세상 이치들은 도로 나무아미타불이 되었다, 더욱 난감한 것은 어느 지점에서 길을 잃었는지 도대체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이다. 논어를 좋아해 여러 번 읽었으니 아마도 논어 속에서 길을 잃은 것 같기는 하나 확실하게 어디에서 길을 잃었는지 모르니 거꾸로 거스르기도 어렵게 되었다.
2018년 어느 날인가, 채근담, 논어, 맹자 등 어떤 동양고전을 읽어도 결론을 똑같이 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동양고전의 주된 내용은 타인에게는 양보하고 배려하며, 자신에게는 엄격하여 교만하지 말며 사치와 향락을 멀리하며 수양에 힘쓰고 담담한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이야기다.’로 결론짓고, 후배들에게 ‘양보, 배려, 역지사지해야하며 실천 없이 입으로만 해서는 이루어지는 것이 없고 리더십도 생기지 않는다.’라고 이야기 한다, 글쓰기 논조도 비슷했다.
아둔하게 이런 현상을 접했는데도 눈치 채지 못하고 오히려 공부 욕심도 나고 신이 났다. 착각의 도가 지나쳐 ‘先人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눈이 맑아진다고 했던가?’하며 눈이 나빠지도록 책을 읽었다. 도를 더욱 넓히기 위해 다시 백 권을 읽자 아이러니 하게도 책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맞다. 나는 눈이 맑아진 것이 아니라 자만심으로 인해 눈이 먼 것이지 맑아진 것이 아니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인데 익지 못한 쭉정이가 이를 몰랐던 탓이다. 세월과 노력이 아깝지만 누구를 탓하랴. 본인의 자만이 초래한 문제인 것을.
학창시절, 시험공부를 열심히 했으나 막상 시험지를 받아드니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경험을 해봤을 듯하다. 하지만 이런 경우 White Out현상이 지속되는 시간은 길지 않다. 하얘진 머릿속은 금방 정돈되어 문제를 읽자마자 답이 툭툭 튀어 나오게 된다. 이런 현상은 긴장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나 내 경우는 오래 지속되었다.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갖고 책을 읽었으니 행간의 정확한 의미를 읽어내지 못했고 읽어냈다 하더라도 고정관념과 선입견이 의미를 덮어버리는 현상이 벌어진 것 같았다. 이것이 편견으로 발전했다면 공부를 안 하니만 못한 것은 아닐까?
10년 공부 도로 나무아미타불, 10년 넘게 공부한 노력이 허사가 되고 말았다면 허망한 노릇이다. 고전을 천천히 읽고 뜻을 음미하고 실천하려 노력하면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수많은 시험을 치른 세대답게 고전의 의미를 함축하고 엑기스를 뽑아내다보니 사단이 벌어진 것은 아닐까 한다. 각개 고전이 추구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도 않은 것이며 고매함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보다 단순하고 쉽다. 하지만 고전이 권장하는 행동을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생각으로 요점정리를 하다 보니 너무 줄였고, 쉽고 이해하기 좋게 치환하다보니 너무 주관적이 되었다.
‘타인에게 양보, 배려, 자신에게 엄격하여 사치와 향락을 멀리하고 수양에 힘쓰고 담담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며 백 마디 말보다 실천을 중시해야 한다.’
실천을 중시해야 한다니 너무 우습게 보일 수 있지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三歲孩兒雖道得 八十老翁行不得(삼세해아수도득 팔십노옹행부득)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비록 세살 먹은 아이라도 도를 얻을 수 있지만 팔십 된 노인이라도 행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고승에게 깨우침을 받기 위해 물어봤다.
‘어떤 것이 佛法의 大義입니까?’
‘나쁜 일 하지 않고 좋은 일 하는 것이다.’
너무 평범하다. 실망해서 다시 물어봤다.
‘그것은 세 살짜리 아이도 알 수 있습니다.’
‘三歲孩兒雖道得 八十老翁行不得’
아무리 쉬워도 행함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어찌 세치 혀의 현란함만으로 얻으려 하는가.
독서가인 동원그룹 김재철회장님은 직원들에게 문학 300권, 역사 200권, 철학 100권을 읽으라 했고 본인도 실천하신 분이다. 하지만, 600권을 읽기도 전에 길을 잃었으니 이번에는 길을 잃지 않도록 한권의 책을 헤지도록 봐야할 듯하다. ‘도’는 多讀(다독)에 있지 않고 熟讀(숙독)에 있는지 모른다.
송나라 재상 조보는 죽기 전 이런 말을 했다. ‘신에게 논어 한권이 있는데 그 반으로 폐하를 도와 천하를 도모할 수 있었고 그 반으로 폐하를 도와 천하를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논어를 절반만 읽어도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했으니 아마도 조보는 논어를 헤지도록 읽고 읽은 후 갈아 마셨을 듯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책 읽기가 지겹지 않은 것이다. 다시 공부해 길을 찾아 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