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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7.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사이토 다카시著, 루비박스刊)

by 물가에 앉는 마음

글 쓰는 능력은 독서능력과 관련 있으나 요즘 젊은 세대들 중에는 글 잘 쓰는 사람이 드물다. 글을 못 쓴다고 일상생활에 커다란 불편은 없으나 대학생이 되면 논문과 리포트, 사회에 나가면 기획안과 보고서 등 다양한 글을 써야 하지만 글쓰기 연습을 하지 않는다. 문장력을 키우면 독서능력이 향상될 뿐 아니라 현대사회에서 필요한 ‘생각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그러므로 문장력을 기르는 것은 결국 생각하는 훈련이다. 연습을 하지 않아도 원고지 세장정도는 쓸 수 있으나 열장은 어렵다. 글을 쓰기 전 개요나 줄거리를 만들어 전체적 구상을 해야 열장을 채울 수 있는데 이는 훈련을 해야 가능하다.


글쓰기 연습에서는 양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나 문장의 질은 개개인의 독서체험이나 인생경험, 재능에 따라 좌우되기에 하루아침에 향상되지 않는다. 하지만 질은 양이 선행되어야 향상을 꾀할 수 있으므로 원고지 열장 쓰는 훈련을 하다보면 어휘력도 늘어나고 질도 향상된다. 원고지 열장, 처음에는 쉽지 않은 분량이지만 자신이 술술 풀어 써나갈 수 있는 흥미로운 주제를 선택해 작문 연습을 해야 분량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다.


글은 구성물이다.‘ 많은 프로 작가들은 구성 작업을 마친 후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글쓰기에 서툰 사람은 필히 구성 작업을 해야 한다. 그리고 말하기와 글쓰기는 완전히 다르다. ’이야기하듯이 쓰면 된다.‘는 말은 자연스럽게 쓰라는 취지이다. 뱉은 말은 그 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글로 쓴 말은 시공을 초월해 영원히 남기에 공공성을 의식해야 한다.

컴퓨터를 사용하면 쓰고 싶은 것을 아무렇게나 입력했다가 나중에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고 문장 배열을 바꿀 수도 있다. 이처럼 컴퓨터로 글을 쓰면 구성력을 효과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컴퓨터를 사용하면 글 쓰는 속도와 생각하는 속도가 비슷해 더욱 많은 글을 쓸 수 있으며 편집과정에서 다음에 쓸 두어 가지 테마를 얻을 수도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이 쓰고 있는 문장이 얼마만큼 의미를 잘 표현할 수 있는지를 항상 의식하면서 생각을 정리해가는 작업이다. 좋은 문장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방대한 양의 책을 읽는다. 우리는 무언가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있기에 글을 쓴다. 내용 전달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글을 적절히 구성해야 한다, 논리적이면서도 생명력이 넘치는 글은 개인적 체험이냐 객관적인 내용이냐 하는 것보다 잘 구성된글인지 여부에 달려 있다.

글을 쓰는 것은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내는 행위이며, 곧 가치를 창출하는 일이다. 그러나 가치를 높이고,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위대한 작품은 엄청난 의미를 함축하고 있어 천재적인 작품에는 한 사람이 평생을 들여도 흡수하기 어려울 만큼의 깊은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소설이나 에세이, 혹은 평론 등 대부분의 글 쓰는 일은 많든 적든 소재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어떤 것을 소재로 글을 쓸 때는 거기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창조해야 한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하며 무턱대고 읽는 것이 아니라 추후 글을 쓸 때 참조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 효과적으로 독서할 수 있다. 책을 읽다가 새로운 영감을 얻는 경우가 많기에 나에게 읽기와 쓰기는 하나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이다. 하지만 반드시 책을 끝까지 다 읽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책을 멀리하게 되는 원인이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읽을 필요가 없다. 내가 글을 쓸 주제와 관련된 부분만을 골라 읽는 편이 글 쓰는 데는 훨씬 효과적이다. 목차를 활용해 필요한 부분을 체크해 선택적으로 읽는 것도 효과적이다.l


인용은 글의 분량을 매우 효과적으로 늘릴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다. 나 역시 다른 글을 인용하고 거기에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는 방식을 많이 이용하고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영화에 대해 써보는 것도 좋은 연습이다. 물론 예리한 평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우의 의상이나 배우의 표정등 사소한 부분이라도 열심히 쓰는 것이 중요하다. 인용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더 객관적이며 구체적인 형태로 만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에 타인이 쓴 문장을 하나의 소재로 포함시켜서 글 쓰는 실력도 향상시킬 수 있으며 자신이 쓴 문장은 아니지만 글쓴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잘 나타낼 수 있다. 단, 인용된 글에는 인용부호로 표시하고 출처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글을 쓰기 전 우선 무엇을 쓸 것인지 key word를 설정하여 메모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모든 재료를 종이 위에 꺼내 놓는 것이 첫 번째 작업이다. 10장의 원고지를 채우기 위해서는 3개 정도의 key word가 필요한데 예를 들어 근성, 기력, 의욕이란 key word는 의미가 거의 비슷하여 글을 폭넓게 쓰기 어렵다. 한편 마음, 기술, 몸이란 key word는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간단히 표현하기 어렵다. 따라서 사람마다 key word를 연결하는 방법이 상이하고, 더 나아가 신선하고 더욱 가치 있는 글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key word가 정해지면 요약서(resume)를 작성한다. key word마다 무엇에 대해 쓸 것인지 백자이하로 미리 적어둔다. resume이 완성되면 글쓰기의 골격과 기본적인 근육이 다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 다음 내가 글에 넣고 싶은 자료를 넣는다. 이미 resume이 작성되었으므로 자료 찾는 일도 간단해진다.


글을 전체적으로 구성하는 작업을 할 때 key word를 key phrase로 만들어 가면 훨씬 효율적이다. key word를 ‘무엇은 무엇이다.’라는 식의 key phrase는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함축한 것으로 key phrase를 서두에 제시 후 그것이 무슨 뜻인지 설명하는 문장들로 이어진다. key phrase는 결코 평범하지 않아야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서로 비슷하지 않은 세 개의 key word를 얼마나 잘 연결시키느냐는 전적으로 글쓴이의 능력과 재능에 달려 있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연결해가는 작업이기에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잘 썼다고 느껴지는 글은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요소들을 잘 연결한 글이다. 세 개의 key word를 삼각형으로 그려 상호 관계를 그려본 후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문장으로 옮기면 많은 훈련이 된다.


원고지 열 장의 벽을 넘으면 스무 장이든 서른 장이든 거뜬히 쓸 수 있다. 열장의 벽을 돌파하면 뭔가가 보이기 시작하며, 그 벽을 뚫고 나온 사람만이 기쁨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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