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5. 백년을 살아보니(2)

백년을 살아보니(2) (김형석著, Denstory刊)

by 물가에 앉는 마음

1장 똑같은 행복은 없다.

자기 땅을 가져보길 원하는 농부가 해가 뜰 때 출발해 해가 지기 전까지 밟고 오는 땅을 얻기 위해 전력으로 달려 결국에는 다섯 자 넓이의 땅에 묻혀 죽었다는 톨스토이의 동화가 있다. 적당히 달리면 죽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다. 돈과 재물은 우리를 유혹하며 더 많이 갖고 혼자 가지라 하며 남의 것까지 빼앗으라 한다. 그런 유혹에 빠지면 돈과 재물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게 된다. 심지어는 자신의 인격과 인생을 희생하기도 한다. 가난한 사람도 그렇고 재벌도 그렇다. 형제끼리, 부자끼리 싸워 원수지는 일도 볼 수 있다.

경제적 중산층이 많은 나라는 범죄율이 낮고 빈부의 격차가 심할수록 범죄와 사회악은 심해진다. 내가 항상 가족과 제자들에게 권하는 교훈이 있다. “경제는 중산층에 머물면서 정신적으로는 상위층에 속하는 사람이 행복하며 사회에도 기여하게 된다.” 인격의 수준만큼 재산을 갖는 것이 원칙이다. 과분한 재산을 물려받으면 도리어 화가 된다.


내 자신도 40세가 될 때까지 동생과 가족들을 교육시키고 사느라 가난하게 살았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열심히 일했다. 그로부터 20년 후, 돈보다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에 일하는 삶의 방법과 방향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돈을 위해 일의 가치를 포기한다면 지성인의 도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돈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낮은 차원의 인생을 살게 되어 있으나 일이 귀하기 때문에 일하는 사람은 그 일의 가치만큼 보람과 행복을 더하게 되어 있다. 그로부터 다시 20년 후, ‘일은 이웃과 사회에 대한 봉사’라고 생각해 사람들과 사회에 도움이 된다면 내 돈을 써가며 해야 할 일인 것이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만 하는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된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삶이 귀한 것이며 적게 받고 많이 베풀 수 있다면 보다 행복한 삶은 없을 것이다.


4장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양심과 도덕적 가치와 질서는 설자리가 없어진다. 그래도 되는 것인가. 우리 젊은이들과 아들딸들이 그런 사회에 살기를 원하는지 묻고 싶다. 돈과 경제는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는 관념이 중요하다. 빈곤으로 인해 인간적인 삶을 상실하고 있기에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경제문제 해결이 무엇보다 선결조건이다. 그렇다고 해도 돈과 경제는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위한 수단이며 과정일 뿐이다. 돈과 경제가 인생의 목적이라 믿는 사람들은 그것을 소유하기 원한다. 소유욕은 한계가 없기 때문에 자신은 물론 그 사회도 병들게 된다.

로마가 무너진 원인은 일을 적게 하거나 안하고 부가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도덕성의 빈곤이 로마의 종말을 가져온 것이다.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일을 포기하고 주어진 유산으로 사는 젊은이들이 성공하거나 행복해지는 예는 없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경제적 풍요를 혼자 즐기려하면 부를 유지하지 못하고 경제적 가치를 창조해 내지 못한다. 가난한 이웃을 도와 더불어 잘 사는 것이야 말로 보람 있고 인간과 사회가 발전하는 길이다.


어떤 사람이 보람 있는 선택을 했을까. 다시 태어나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겠다는 신념이 있다면 그가 최선의 인생을 산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학문과 교육이 앞으로도 가장 소중한 우리의 과제라 믿고 있기에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갈 것 같다. 또한 더 이상 일을 할 수도 없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게 되었을 때에 죽음을 맞고 싶다.


그 어떤 사람보다 인류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온 공자, 석가 ,예수, 소크라테스 같은 분들은 평범하게 사신 분들이다. 공자와 석가는 존경받는 스승이었고 예수, 소크라테스는 범죄자의 낙인을 받고 사형 당했으나 우리와 비슷한 인생을 살았다. 평범하게 살았기에 더 많은 사람의 친구가 되고 스승이 되었다. 그분들은 인간다운 인간,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다가 간 분들로 큰 업적을 남긴 바도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을 사랑하고 감사의 대상이 되는 인간으로 만들었는가. 그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을 사랑했다. 그 사랑의 뜻이 너무 컸기에 인간 모두에게 뻗칠 수 있는 사랑이 있다. 인간애의 주인공들이었다.

우리 모두가 져야할 사랑의 짐을 대신했고 모든 인간이 겪어야 할 고뇌의 짐을 대신하려고 노력했던 분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들의 사랑을 잊을 수 없다. 그 분들을 숭앙하고 가능하다면 그 분들과 같은 삶을 이어가고 싶어지는 것이다. 왜 그러한가. 우리는 예술이나 학문의 업적은 남길 수 없어도 이웃에 대한 사랑의 봉사는 할 수 있고 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업적이나 경제적 유산은 남길 수 없어도 가난하고 병든 이웃에게 따뜻한 정과 마음은 나누어 줄 수 있다.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에 대한 대답은 사랑을 나누어 주는 삶인 것이다. 그 보다 위대한 것은 없다. 그 사랑이 귀하기 때문에 더 높은 사랑은 죽음까지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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